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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올드독(OLDDOG)’의 소.심.한 세상읽기

2006-04-18


얼마 전 한 대형 서점의 만화 코너에서 한눈에 쏙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블랙 & 화이트의 심플한 커버 디자인이 시선을 끄는 데 단단히 한 몫 하기는 했는데, 첫 장을 넘기며 읽어 내려 가는 순간, 풍선에 바람 빠지듯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단 번에 그 자리에 서서 반은 읽어버렸고 다음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만화가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말았다.
‘소심한 낙천주의자의 도시 잡상(雜想)’을 늘어놓는 생활만화 『올드독』의 작가는 바로 정우열. 그가 창조해낸 이 캐릭터는, 무료보험을 가입하라는 광고 전화를 매정하게 끊지 못하는 주인을 향해 “그런 건 그냥 필요없어요! 그러고 탁 끊어야 돼! 들어주기 시작하면 악착같이 달라 붙는다니깐!” 이라며 핀잔을 늘어놓는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 늙은 개가 늘어놓는 일상에 대한 온갖 잡다구레한 생각은 폐부에 스며들며 웃음을 자아내기 일쑤다.
너무나 친숙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재발견’ 되는 소소한 잡상을 늘어 놓는 올드독의 작가 정우열, 그를 만나 보았다.

취재 | 박현영 기자 (hypark@jungle.co.kr)


『올드독』을 보다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진짜 작가의 실존 개를 모티브로 한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정우열은 말한다.
“ 처가댁에 14년 된 개가 있어요. 물론 그 개를 모델로 했죠. 성격이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사람이 밥을 먹을 때도 처음에는 기다리다가 자기가 충분히 기다린 것 같은데도 안주면 애원하는 투가 아니라 마치 호통을 치듯이 짖어요. (웃음) 그런 다소 건방진 개의 모습을 모티브로 삼긴 했죠.”

‘귀차니즘’ 에 빠진 고양이 ‘스노우캣’과는 묘하게 대립되는 이 ‘올드독’은 소심한 캐릭터로 낙천주의자인데 작가는 냉소주의적인 면모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아주 차가운 냉소가 아닌 물을 탄듯한, 약간 희석된 냉소랄까.

이를 테면, TV 홈쇼핑 광고의 싫은 점을 나열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은 포섭당하곤 합니다” 라며 며칠 전 농수산 TV에서 산 캘리포니아 호두(454g x 4팩 + 보너스 1팩)를 맛있게 먹고 있는 올드독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이나, 냉방의 은총(?)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 도서관에서 부족한 자리로 인해 의례 메뚜기족이 서식하기 마련인데, 스스로 메뚜기족이 된 것도 아닌데 옆사람이 메뚜기족인 것까지 불안해하는 올드독의 소심한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올드독의 캐릭터를 창조해낸 정우열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8년간 시사만화를 그린 경력을 지니고 있다. 시사만화를 그리던 그가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hhoro/)에 틈틈이 그려낸 ‘올드독’으로 네티즌들에게 사랑을 받고 그 것을 엮어 첫 작품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올드독은 <일일꼼지락> 을 비롯해 씨네21의 <올드독의 tv감상실> 과 nkino의 <올드독 극장견문록> , 경향신문의 <올드독의 고충상담실> 등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와 다양한 접촉을 시도한다.
생활 속에서 발굴해낸 에피소드들은 어찌 보면 ‘특별할 것’ 도 없는 소소한 일상이며 이러한 평범한 소재를 유머러스한 사건들로 꾸며 마치 친한 친구에게 수다를 떨어놓듯 공감을 자아낸다.
소소한 일상의 ‘귀납적 깨달음’을 주는 올드독의 화법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못 훈훈하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천편일률적인 흥행 드라마 법칙을 따르는 수많은 트렌디 드라마를 비판(?)하는 소심한 올드독의 행동조차 그 어느 비판론보다 설득력 있고 유머러스하다.

드라마에서 회장님은, 늘 멋대로 정해버린 예비사돈 집안과의 자리를 만들어놓고 말 안듣는 아드님을 불러낸다.
“ 저녁 때 시간 비워둬라!”
그러면 그 자리에 억지로 참석한 아드님은 반항기질을 내뿜으며 “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하면서 자리에 박차고 일어난다.

좋든 싫든 멋대로 짝지으려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먼저 실례하는 아드님의 분노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올드독은 비록 박차고 일어서는 자태를 빛내줄 아르마니 슈트도 없고 밟는 즉시 시속 100km로 달아나 줄 페라리도 없지만, 리모콘으로 TV를 꺼버리는 초라한(?) 실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곧 올드독은 자리에 앉아 다시 TV를 보고 있다. 밖에 비가 온다는 변명을 둘러대지만, 올드독의 이런 소심한 반항심은 그대로 웃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극적인 드라마 구조가 아니라 생활 속의 일상적 에피소드와 단상을 늘어놓는 친숙함과 소심함이 올드독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독특한 화풍을 꼽을 수 있다.
마치 낙서를 하듯 그의 표현대로 ‘얼버무리듯’ 그려낸 이 그림체는 단순한 컬러 사용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정통만화의 그림체를 거스르는 듯한 올드독의 화풍은 일기장에 써놓은 듯한 정우열씨의 친필과 함께 묘한 통찰력으로 응집된다. 가히 ‘올드독체’라고 명명해도 될 만큼 동글동글 가는 필체는 올드독과 참 많이 닮아있다.

초반에 던졌던 ‘실존개’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올드독』을 보면서 작가에게 들었던 궁금증 하나.
바로 올드독은 그와 얼마나 닮아있을까?
혹시 정우열 그를 대변하는 화자가 아닐까?
이에 대해 사람들은 100% 닮아있다고 의례 생각하는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닮아 있다는 것이 솔직한 그의 대답.
그는 소심한 A형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B형이며 올드독처럼 귀엽지도 않다고 말한다.(웃음)
그리고 그가 풀어내는 늙은 개의 수다는 남성적 색이 강하다던가, 반대로 여성을 대변한다던가 하지 않고 중성적인 색채를 띈다.

그러면 올드독은 수컷인가? 암컷인가?
이에 대해 그는 말한다.
“ 아무래도 남자화장실을 가는 것을 보면 수컷이겠죠? (웃음)”

그에게 올드독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는 독자보다 위에 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보다 아래에 위치한 올드독이 그 이유라고 했다.
독자는 자신을 마치 가르치는 듯한 투로 전달하면 불쾌해하거나 웃음을 주기 어렵다는 것.
이에 반해 올드독은 건방지게 사람을 가르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소심하며 실수연발인 것이 웃음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즐겨보는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형식을 나름 차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올드독은 마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와 닮아 있다는 것.
캐리는 주간신문 뉴욕 스타의 섹스 칼럼니스트로 칼럼을 쓰지만 실제 연애에 있어서는 실패를 거듭하는 캐릭터. 올드독도 '난척'하지만 실은 소심하고 실수를 연발한다.
올드독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캐리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독자들이 올드독을 보고 조금은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아주 소박하게 말하는 정우열. 이를테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잘 씻지 않는 사람도 올드독을 보고 조금은 더 손을 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좋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더 하게 되고, 나쁜 것은 조금은 더 지양하게 되는…

이렇듯 세상을 크게 바꾸고자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일상 속의 잡상을 꺼내어 웃음과 함께 공감을 불러 일으켜 작은 ‘환기’를 시키는 것이 바로 올드독이 가진 매력이다.
앞으로 정통만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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