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11
캐릭터는 귀엽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그렇다. 미키마우스나 키티 류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점령하고 있던 시절, 캐릭터 디자이너 박의식은 시대와 동떨어진 장수 캐릭터로 용감한 출사표를 던졌다.
장수캐릭터는 우리나라 고대 장수들을 그리고 있다. 우리 역사지만 우리가 외면했던 치우천왕에서부터 위인전기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익숙한 광개토태왕, 강감찬, 이순신 장군 등이 주인공이다. 캐릭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금은 엉뚱한 상상력으로 캐릭터전문회사 ‘장수’의 대표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지금까지 그는 한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반만년 우리 역사속에 실존했던 위대한 장수만을 만드는 캐릭터전문회사를 창립해 유행을 거부하며 독창적인 캐릭터 사업으로 독특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가상징디자인공모전에 출품한 장수캐릭터가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을 수상해 그 진가를 인정받기도 했다.
“우리의 소재로 세계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꿈은 동방문명의 부활이죠” 라고 말하는 그의 뚝심과 다부진 체격은 장수를 닮았다.
확고한 원칙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장수’캐릭터의 디자이너, 박의식 씨를 만나보자.
정리/인터뷰 | 김미진 기자( nowhere21@yoondesign.co.kr)
정글 : 캐릭터라고 하면 ‘귀엽고 예쁜’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장수’라는 진중한 컨셉 자체가 굉장히 낯설다. 장수라는 컨셉으로 캐릭터를 제작하게 된 계기와 개인적인 신념이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캐릭터는 예쁘고 깜찍한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캐릭터"하면 반드시 귀여워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웅의 캐릭터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던 장수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그들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국내 회사의 캐릭터들조차 우리의 소재로 캐릭터를 제작하지 않는다. 우리 정서에 맞는 캐릭터, 나아가 이를 응용한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의 혼,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소재로 장수를 선택한 것이다. 특히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처럼 서구의 전통이나 신화가 근사한 문화컨텐츠로 변신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면, 우리의 전통소재를 이용한 대표적인 문화상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더욱 굳어진다.
흔히 중국의 삼국지, 일본의 사무라이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컨텐츠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의 장수 중에서 더욱 위대한 장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못했다. 장수 캐릭터를 통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아가 세계 최고 장수의 반열에 올리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글 : 우리역사 속의 장수이미지, 대한민국의 문화이미지를 추구하는 캐릭터전문기업, 장수의 창립배경이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둔 성과라면?
98년 졸업 후, 장수 일러스트를 그리다가 2000년, 장수캘린더를 홍보용으로 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캐릭터 사업에 관심갖게 됐다. 그래서 2001년 장수캐릭터 기업을 설립하고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 캐릭터페어에 참가해 첫해 호응이 굉장히 좋았다.
2002년에는 컨셉이 맞았던 모 음료회사와 함께 장수캐릭터를 제품에 이용하는 공통 마케팅에 참여했다. 하지만 회사내부사정으로 8개월간의 작업이 수포로 들어가고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큰 경험이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는 영화 황산벌의 프로모션 캐릭터 제작에 참여했다. 황산벌은 다분히 남성적인 영화였기 때문에 주요 관객인 여성들을 잡기 위한 흡인요소로서 장수 캐릭터가 사용되었다. 사이트와 프로모션물에 사용되었고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현재 진행중인 사안으로는 “디오라마스튜디오(http://www.dioramastudio.org)”와 장수캐릭터를 모델로 모형을 제작하는 공동작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실물모형 제작은 이재성씨가 담당한다. 그밖의 사업으로는 버디버디의 아바타와 출판, 문화상품, 기업과의 공동마케팅도 추진중이다.
캐릭터라는 것이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사업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여러 상황과 맞물려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2000년부터 장수캐릭터를 개발한지도 벌써 횟수로는 5년이 지났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끈질기게 한 발짝씩 장수를 알려나갈 것이다.
장수는 남성적이고 무거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영화 황산벌은 코믹영화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왔던 위대한 장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대중적이고 친근감 있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누구나 호감이 갈 수 있는 캐릭터로 두 주인공의 개성(성격,사투리,억양 등)을 고려하며 다양한 응용동작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캐릭터별 기본 칼라는 두 장수의 대결구도에 맞게 대립되는 칼라이다. 또한 3등신의 정형화된 캐릭터로 표정과 인상에서 장수 본연의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장수캐릭터는 15명이고, 총 60여 개가 개발되었다.
최초의 장수는 97년 '판막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판막이'는 씨름판에서의 승리와 방어를 뜻하며 옛장수를 일컫는 순수한 우리말. 2000년 사업화를 결정하면서 홍보용 캘린더로 제작된 것이 광개토태왕, 강감찬 장군이다.
다음해 캐릭터페어를 준비하면서는 연개소문, 장보고, 을지문덕, 고선지 등이 나왔고 이어 이순신, 견훤대왕, 온달, 양만춘, 설죽화 등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2003년에 드디어 오래 전부터 고대하던 치우천왕을 제작했다.
정글 : 장수 캐릭터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처음 캐릭터라는 선입견 때문에 귀엽게 디자인하려고 했다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장 장수다운가?’를 중심에 두고 작업했다. 친근감은 있으나 힘이 느껴지고, 위엄이 있어 우러러 볼 수 있는 그런 영웅의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장수캐릭터는 표정이 없다. 장수는 생사의 순간에, 아니면 민족과 나라를 위해 전장의 한 복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처음 작업에 들어갈때는 실물에 가까운 캐릭터를 만들면서 시각적으로 다음의 3가지를 중요시했다.
첫째, 강한 어깨와 굵은 팔뚝, 짧은 목.
이것은 남성에게 있어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힘을 상징하는 이미지이다.
두번째는 작고 가느다란 눈이다. 요즘 성형수술로 인해 우리의 모습이 서구화되고 있지만 인종적, 풍속적으로 원래 한국인의 눈은 작고 가늘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상업적으로 주목 받기 위해 큰 눈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장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장수캐릭터에 있어 특징적인 또 한가지는 소위 ‘숏다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모델의 긴 다리를 부러워하고 짧은 우리의 신체구조에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미인의 개념은 시대별로 변화되어 왔으며, 이러한 열등감은 서구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장수는 철저히 우리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정글 : 홈페이지(http://www.jang-soo.co.kr)에 가면 역사적인 자료들이 많다.
캐릭터를 제작할 때도 이러한 수많은 역사적 고증에 의해 작업하는가?
장수 캐릭터를 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공부를 시작했다. 장수와 관련된 고대 문헌은 물론이고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때로는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유물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지만 그 이전 시대의 자료는 부족하다. 그래서 더욱 폼나고 멋있게 만들기 위해서 상상력을 가미했다.
일단 어떤 장수를 만든다고 목표가 정해지면 그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한다.
이를 바탕으로 디테일한 것은 상상력을 발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장수에 대한 모든 것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온몸으로 느껴야한다. 이러한 ‘체화’가 얼마나 잘 이뤄지는가에 따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그 다음 스케치 작업에 들어가는데, 80% 정도의 완성한 후, 그래픽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계속 수정이 되기 때문에 애초에 모두 그려놓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어떤 때는 완성된 후에도 몇 달 뒤에 다시 수정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
정글 : 가장 좋아하는 장수는 누구인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역사에서 잊혀졌지만 ‘치우천왕’은 인류최초로 금속무기를 만들어 사용한 반만년전 배달국의 제14대 천왕이다. ‘자오지천왕’이라고도 불리우며 중원의 패자인 황제헌원과 탁록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인 우리의 위대한 선조이다.
그리고 가장 부강했던 시대의 왕인 ‘광개토태왕’을 좋아한다. 실존하는 역대 위인들 중에서 그만큼 한민족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
정글 : 개인적인 신념으로 작업하는 것과 비즈니스는 다르다.
흔치 않은 한국적인 분위기의 디자인, 더군다나 캐릭터분야에서 시조와 유행에 따르지 않는 장수 캐릭터는 사업화 단계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어려움은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사람들은 귀여운 캐릭터에 익숙해 있다.
이러한 벽을 뛰어넘기 위해 꾸준히 캐릭터페어에 참가하거나 공동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어느 정도 장수캐릭터에 대한 컨셉이 확고해지고 사업적으로 발전하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수가 추구하고자 하는 원래의 컨셉에 충실할 계획이다.
국가상징디자인공모전에서 수상한 ‘장수SD 버전’은 초창기 실물에 가까운 캐릭터를 바탕으로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다. 기존의 강인한 이미지에서 귀여움까지 표현했다.
정글 : 우리나라에서 롱런 캐릭터는 극소수다. 특히 최근에는 불황의 여파때문인지 몇몇 스테디 캐릭터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캐릭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캐릭터가 장수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유행을 따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변화를 줄 수는 있으나 유행을 초월해야 한다. 요즘 캐릭터 시장의 주타깃이 10대중고생이다 보니 업계에서는 그들의 유행을 쫓아 상당수의 캐릭터가 제작된다. 하지만 유행이란 항상 바뀌고 유행이 끝나면 캐릭터는 없어진다.
세계적인 패션브랜드들도 유행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로 승부하지 않는가?
캐릭터 자체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컨셉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지켜가야 한다.
박의식씨는 99년 출판된 ‘15명의 한국위인여행’에서 ‘광개토태왕’, ‘강감찬장군’으로 데뷔.
쭉 장수에 관련된 작품만을 그려왔다. 특히 마루벌 출판사와 함께했던 ‘아리수의 오리’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북유럽신화’, ‘그리스신화’(현대지성사)
‘광개토태왕’(한국프뢰벨) / ‘을지문덕’(삼성출판사) / ‘바다의 왕 장보고’(교원)
‘칭기스칸’, ‘노예검투사’(유니북스) / ‘다이달로스의 미로’(노벨과 개미)
‘전봉준’(국민서관) / ‘아리수의 오리’(마루벌) /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어린이 중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