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08
<맛있는 캐릭터 트랜드>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근 두어달 만에 새 칼럼으로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사설을 늘어놓기에 앞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더운 여름 속에서도
늘 건강한 여러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의 조건으로 무엇을 꼽고 있으신지요.
물론, 이 질문에는 많은 함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획자와 디자이너 혹은 사업자와 수요자가 저마다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동안 많은 교육기관과 캐릭터 개발 업체는 캐릭터의 산업적 가치를 상품성과
고부가 가치의 극대화 즉, 비즈니스와 수익창출의 소기 목적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토종 캐릭터에 대한 선호도가 50%에 이르며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국산 캐릭터의 시장 점유율을 3-40%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마시마로의 성공을 전환점으로 기존의 관습화 된 매뉴얼과 도식적인 프로세스에서 벗어나
국산 캐릭터들은 다양한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IT 강국답게 개발.홍보.유통의 프로세스가 인터넷을 통해 보다 간결하고
초고속 모드의 직접 전달 방식으로 확대 되었고, 디자이너 스스로가 마케터가 되어
네티즌과 직접 소통하며 캐릭터를 프로모션 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의
트랜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건, 캐릭터는 자본을 창출하고 상품성을 띠어야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의 조건은 무조건 상품 활용의 가치가 높고,
많이 팔리는 것이 최우선일까요?
그것은 독자 여러분들의 개인적 노하우와 경험적 피드백에 일단 맡기겠습니다.
각설하고, 본 칼럼에서 제가 다루고자 한 것은 캐릭터가 갖는 산업적 가치 이전에
한번쯤 중요하게 재고해 봐야 할
‘캐릭터의 문화적,사회적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며 초고속 경제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문화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인프라 구축을 뒤로 미루며, 산업 성장만을 제일 주의로 삼아온 게 사실이고 그에 따른 구조적 모순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장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이제 캐릭터 산업 역시 경제성의 논리로만 따져 보지 말고
캐릭터가 갖는 사회적.문화적 파급력을 분석하고 이를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용시켜 보는
개발자들의 포괄적인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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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을 넘어와 국내에서도 선풍을 일으킨 캐릭터 ‘캔디’를 기억하시겠지요?
캔디는 원래 미즈키 교코의 하이틴 소설 주인공이었습니다.
들창코에 주근깨 투성이지만, 그 어떤 역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캔디는
75년 이가라시 유미코의 만화로 재탄생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첫 선을 보인 캔디는 그 시대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고
가장 이상적으로 꿈꾸는 우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내 이름은 캔디.’
주제가에서처럼 캔디로 상징되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정서는 그 시대 여성들의
자아 실현과 주체성 확립의 욕구를 대리 만족 시켜주기에 충분 했을 겁니다.
동 시간대 2-30대 여성 시청자 60%를 강하게 빨아 들이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
그 인기의 정점에는 남정은(정다빈)이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혼전 동거의 사회적 이슈를 풀어 나가는데 있어 희생양처럼 그려지던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논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남정은의 눈물은 기존적 가치관에 맞서 싸워야 하는 21세기 한국 여성들의
답답한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한 웃음을 보여주는 또순이 남정은의
사랑과 일에 대한 주체적.능동적 사고는 캔디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80년대의 캔디는 대리 만족으로 만족해야 하는 동경의 대상에 머물러 있었다면
2000년대의 남정은은 충분히 실생활에서도 발견 가능한 현실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적 구성상 필수 불가결했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성만 배제해 본다면,
‘옥탑방 고양이’에서 발견하는 캐릭터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 발견은
분명 즐거운 관심거리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을 시대 착오라고 과감하게 목소리를 낸 ‘옥탑방 고양이’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는, 현재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어두운 이면을 경쾌하게
풀어내는 방식의 차이 였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다지 썩 바람직하지 못했던 예도 있습니다.
엽기 열풍을 주도하며 졸라맨이 먹힐 수 있었던 2002년 월드컵 이전의
우리 사회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한국이 직면한 총체적인 위기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우려의 시선과는 달리,
그 당시 우리 사회는 말초신경을 자극시키고 1차원적인 사고를 즐기는데 전혀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부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대 국민 선진 의식이
현실의 괴리감을 은폐하고 샴페인을 터뜨리도록 방관했기 때문입니다.
졸라맨 뒤에는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나름대로의 무거운 주제가 있었지만,
졸라맨은 이것을 슬랩스틱 코미디로 희화 시켰습니다.
결국 정의 사회 구현 주제는 사라지고, 웃기고 황당한 막대 인간 졸라맨 만을
우리는 기억할 뿐입니다.
캐릭터는 분명, 상품성을 확보하고 비즈니스의 정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보태 사람들의 뇌리와 정서에 끊임없이 회자 될 수 있는 그 캐릭터만의
아우라(aura)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시대를 관통하거나 신경향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획력 확보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땅의 많은 디자이너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관료화된 사회 시스템에
적응 받기를 강요 당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컨텐츠 비즈니스에 의해 저당 잡힌 채
일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산업을 국가 산업으로 지정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거듭 논의되고 인지되고 있음에도
정작 문화 산업 전반에 걸친 인프라 구축과 인력 관리에 적절한 비전이 제시되고 있지 못한다면,
결국 국산 캐릭터 점유율 35%의 고속 성장은 안개 속에서 눈 앞에 열린 열매만 따먹으며 걷고
있는 형국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옥탑방 고양이’의 남정은이 선택적인 기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캔디 만큼이나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캐릭터가 되지 못하고 마네킹이 되어버리는 캐릭터 개발에서 탈피해 보고 싶다면…
장식 가득한 1차원적인 작위적 스토리로 오히려 캐릭터를 묻어 버리고 싶지 않다면…
특이한 이미지 뽑아 내기에만 급급해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펜이나
마우스를 놓아 버리고, 한번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사고의 장을 포괄적으로
넓혀 보는 건 어떨는지 요.
그보다 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싶다면…
스크린 혹은 브라운관 앞에서 돋보기를 든 분석쟁이가 되어 보는 건요? ^^
그럼…다음 칼럼에서 뵙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그때까지 건강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