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18
우리 영화계에서 조폭 코미디가 관객의 호응을 얻는 것에 대한 무조건 적인 비판은 보수적인 평단의 몫이거나, 지독하게 전투적인 일부 관객들의 몫이 아닐까요?
여전히 ‘가문의 영광’이 대박을 내는 영화계의 현실을 보면, 비평가들이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쓰레기라고 치부해 버리는 문화 상품에 오히려 관객이 몰리는 아이러니를 종종 발견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설마 관객 또한 쓰레기 취급 하는 퇴행적 문화 우월감을 자극하려는 의도는 더욱 아니겠지요? 어떤 매체든 간에 새로운 트랜드 출현에 갈증을 호소하면서도, 정작 그 기득권 세력의 두텁고도 고리타분한 이데올로기를 허물기란 개발자들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폭 코미디에 대한 고리타분한 시시비비만 봐도 이쯤 되면 대중문화의 주체가 정녕 대중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캐릭터 개발의 출발점은 결국, 대중의 기호에 편승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스타일을 전개할 것 인가에 대한 문제 입니다. 이것은 물론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오만한 역설에 의해 탄생한 논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평소의 주관대로 시선은 일관성 있게, 시각은 다양성으로 그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에는 기존의 접근방법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힘주었던 눈의 근육을 풀고 필자와 함께 그 다양성을 체험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강영민 작가는 홍대 희망시장에서 티셔츠에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 팔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영민앤퍼니를 가보면, 키치 성향으로 가득한 그의 캐릭터를 만나 볼 수 있는데요, 익히 우리가 보아 왔던 캐릭터 스타일의 통념을 뒤엎는 그의 작품들은, 캐릭터 이미지의 럭셔리를 추구하는 몇몇 디자이너들에게는 이질감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한 인상을 갖게 합니다. 물론,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어필할 것이냐, 일부 매니아 계층에게만 열혈 지지를 얻을 것이냐는 오랜 시간 동안 지켜 봐야 할 일이겠지만 말이지요.
[미디어씨티 서울2000]展의 일환으로 선보였던 을지로 3가의 ‘서브웨이 코믹 스트립’이 한국에는 생소한
<문화테러-반달리즘>
논란을 불러 일으킬 만큼 시끄러웠던 걸 보면, 캐릭터가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 아직까지는 나름대로의 엄격한 규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화테러-반달리즘>
4년 전인 1999년 일본에서는 ‘당고 3형제’의 품절로 인한 폭행 사건이 뉴스에까지 보도되며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NHK의 어린이 프로그램이 제작한 ‘당고 3형제’동요는 청소년과 어른에게까지 그 파급력을 선보이며 급기야 300만장에 가까운 음반 판매고를 올립니다.
이에 ‘당고 3형제’ 캐릭터를 등장시킨 삽화형식의 애니메이션은 그 해 애니 차트 1위에까지 오르며 당고 3형제의 인기에 기름을 붓게 되지요. 동요로는 유례가 없는 음반 판매의 대박, 게다가 사회적 신드롬에서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이어진 당고 3형제의 파워는 국내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음식 ‘당고’를 프랜차이즈 시키는 상상초월 프로세스의 파급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의 발 빠른 상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례라고 간단히 단정 짓기엔 ‘당고 3형제’의 성공이 유독 부러운 것은 매체와 캐릭터간의 자연스러운 유기성과 흡착력 때문입니다.
‘우정’이라는 감성적 메타포를 개연성있는 타겟 설정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독특한 캐릭터 컨셉팅을 보여준 카이 홀맨은, 21세기에 뚜렷이 나타난 특징 중 하나인 CI(기업이미지통합)에서 BI(브랜드이미지통합)로 전문성을 더해가는 캐릭터의 위치를 한층 부각시킨 경우입니다.
홀맨이 비기(BIGI)와 다른점은, 광고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처럼 카이(KHAI) 브랜드로써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독립된 캐릭터 프로세스를 펼친다는데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조앤과 홀맨의 러브스토리나 우정은 정의롭고 건전한 10대의 또 다른 이면을 나타내며 감성적 캐릭터 마케팅을 선 보였습니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홀맨의 이미지 설정은 신비모드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 시키고, 홀맨의 순수함과 정의로움은 광고를 통해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써 친숙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홀맨은 매체 속의 소품이나 데코레이션이 아닌 독립된 자아로써의 일관된 캐릭터 컨셉팅을 전개했고,그 자체가 메타포를 지닌 스타 플레이어 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은, 카툰밴드 고릴라즈가 멤버들의 프로필을 이면에 감추고 2D, Murdoc, Noodle, Russel 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여 어느 정도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도 확대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사이버 가수가 아닌 실제 현존하는 뮤지션이 캐릭터를 차용하여 밴드의 이미지와 음악을 어필한다는 것은 새로운 형식의 BI(브랜드 이미지 통합)로써 그 새로운 시도를 엿 볼 수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뮤직비디오에 캐릭터가 등장하고 캐릭터가 스토리를 전개하며 가수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캐릭터만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한 ‘무사이’가 있습니다.
캐릭터 가수라는 새로운 프로모션 전개를 보여준 ‘무사이’는 가수가 대중과 호흡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며 ‘무사이’ 캐릭터의 기능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경우입니다. ‘무사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요정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로써, ‘무사이’가 현재까지 대중의 반응과 결과 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접근 방식에 있습니다.
오소영의 ‘기억상실’ 뮤직비디오 또한 ‘아추’를 등장시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좋은 예입니다.
트랜드는 소수 계층의 전유물로 변질되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대중적 확산의 중심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4천만 인구 중에 단 4백만 명이 향유하는 엔테터이먼트를 나머지 90%가 공유하지 않았다 해서 매니아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90%의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오락을 단 10%가 외면한다고 해서 비교우위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하는 것은 너무 성의 없고 무책임하게 자행되는 이분법 적인 사고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천장에 원인 모를 한 방울의 물이 새어 나온다면, 그것이 천장을 흠뻑 적셔 뚫어 버리기 전에 어떠한 파급력과 효율적 기능성을 내재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돈나가 논란의 중심 축에 있으면서도 그녀의 존재를 간과 할 수 없었던 데는, 우리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쓰레기 감성의 저급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관음증을 그녀 스스로의 상품성에 저절로 까발려 졌다는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영민의 캐릭터에 가해진 문화 테러는, 다양성 인정의 피폐한 반격을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격렬한 논쟁을 스스로 한번 증폭시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울러 ‘당고 3형제’에서 보았던 기가 막히게 발 빠른 매체 전략 이랄지, 홀맨이나 고릴라즈, 무사이에서 감지할 수 있었던 캐릭터와 대중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캐릭터 트랜드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주기에 미미하나 미약하지 않은 소량의 가치를 훌륭히 제공했다고, 감히 말해 봅니다.
그 이유는, 캐릭터와 캐릭터가 접속하는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세상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다다다’ ‘방화범 밤돌이’ ‘서늘한 미인’ ‘배고픈 돼지’ ‘이불맨’ ‘숑카’ 등 그의 캐릭터는 초창기의 팝 스타 마돈나와 같이 하위문화를 직선적이고 도발적으로 표현 하는데 혈안이 된 것처럼 전혀 여과 없이 현실을 풍자하거나,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엑기스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받아 먹고 살찌우는데 익숙한 돼지가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며 굴어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밭을 가는 ‘배고픈 돼지’나, 군밤이 되는 것이 목표인 알밤이 제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르는 ‘방화범 밤돌이’는 당혹스럽지만 나름대로 메시지 전달엔 충분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장 죽게 생긴 돼지가 호미를 쥐게 되었을 때 고급의 칼라와 세련된 이미지 쉐이프는 그 자체가 코미디일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디자인은 팬시풀과 데코리에션에 치중하는 다른 아트웍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