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6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A cut을 위해 버려지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 중에서 디자이너에게 B cut을 골라달라는 일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깨무는 과정이었다. 창작에 순서를 매기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손이 더 많이 가서 애잔한 디자이너들의 ‘내 새끼’들을 골라봤다.
에디터 | 이상현, 정윤희, 이안나
<천차만별 콘서트>
포스터 타이틀
천차만별>
디자인 캘리그래피스트 박병철
www.orogi.com
클라이언트 에이프릴
자유롭고 개성 있는 젊은 음악가를 위한 국악의 창작실험무대이기에 ‘국악은 우리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이 시대의 자유로운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한 콘셉트에 맞춰 작업한 결과물 중 국악 리듬처럼 창의적인 모습의 사람모양을 한 ‘천’과 ‘차’의 ‘ㅊ’의 어울림, ‘별’자의 별모양 등 국악창작실험무대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잘 드러낸 A컷이 최종 결과물로 선택되었다. A컷보다 선의 동작이 화려하고 가독성은 높지만 개성 있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영화
<리튼>
포스터
리튼>
디자인 박동우(프로파간다)
www.propa-ganda.co.kr
클라이언트 인디스토리
비밀이 적혀있는 듯한 붉은 색 종이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어둠 속 남자의 실루엣 위로 ‘끝은 내가 쓴다’는 카피가 매우 강렬하다. 마치 담배 한 개비를 피고 나면 끝장을 낼 태세라는 듯 파격적인 영상이 눈에 띈다. 하지만 비주얼이 흡사 사이코드라마나 여름 호러영화를 연상시키는 공포 분위기 때문에 많은 내부 관계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나 결국 최종 탈락했다.
영화
<보이a>
포스터
보이a>
디자인 윤나리(그림커뮤니케이션)
클라이언트 구안
세상에서 버려진 소년, 어두운 계단 끝의 BOY A를 블랙과 옐로우로 극대화했다. 커다랗게 찍힌 낙인 같은 BOY A. 작은 영화가 힘을 얻으려면 매니아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어야 한다. 영화는 쓸쓸한 소년의 뒷모습을 잡아 포스터에 박았고, 광화문 거리를 걷던 외로운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쓸쓸해 보이는 소년의 목덜미는 한 번 쓸어주고 싶은 뒷모습이다. 단관 개봉임을 고려해보면, 놀라운 수의 관객을 동원한
<보이a>
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사실은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사는 운명인 듯 보인다.
보이a>
현대카드 웹사이트
일러스트 이경돈
www.goldenbusiman.com
클라이언트 현대카드
카드가 모든 일상 생활에 편의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로 진행된, 현대카드 홈페이지 리뉴얼 프로젝트다. B컷의 경우 거의 모든 페이지가 일러스트로 연동되는 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이었다. 진행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도시의 모습보다는 카드사용자들의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진 시안이 결정되었다.
QOOK & SHOW 포스터
일러스트 홍원표
www.tok-tok.co.kr
클라이언트 KT/QOOK & SHOW
광고는 대개 몇 가지의 시안이 들어가게 된다. 그 중 한가지가 채택이 되는 것인데 QOOK & SHOW 일러스트는 아쉽게도 채택이 안되고, 사진이 채택되었다. 다행히(?) 로고 부분은 쓰기로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업이다.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었고, 오랜 시간을 공들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광고주의 선택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더욱더 정이 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순간들』 표지 일러스트
일러스트 이경돈
www.goldenbusiman.com
클라이언트 문학동네
신기하게도 소설 표지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내가 거주하는 동네게 주인공들도 살고 있는 경우가 두 번 있었다. 이번에는 마포대교에 서서 강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을 표지에 실으려 했다. 나도 주인공처럼 그랬던 적이 꽤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욕이었을까. B컷의 경우 7,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주인공치고는 꽤나 ‘꽃미남’이라는 이유로 아쉽게 탈락된 시안이다. 최종적으로 좀더 우직한 주인공의 모습과 함께 당시 한강의 모습을 표현한 시안이 최종 선정되었다.
송지오 옴므 웹사이트
디자인 박창용(byul & associates. Co)
byul.org
클라이언트 송지오 옴므
약 2달 정도는 업로드 되어 있었다. 파리에서 첫 번째 프리젠테이션을 끝낸 ‘송지오 옴므’를 위해 아주 특별한 캐릭터로 접속하는 유럽인들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웹사이트 전체에 풀 스크린 동영상을 띄웠다. 컬렉션을 볼 때든 텍스트를 읽을 때는 2008 봄/여름 프리젠테이션에 쓰였던 동영상이 돌아가는 형식이었다.
풀 비디오 웹사이트가 (그것도 30여분 짜리다!) 흔치 않았던 당시엔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한 2008 봄/여름 프리젠테이션 컬렉션 컷을 보는 것도 각각의 컷마다 이미지 작업을 추가해 영상과 컬렉션과 웹사이트가 유기적인 느낌으로 전달되도록 했다. 나쁘진 않았다. 파리에서 이 사이트가 로딩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빼고…. 컷들을 하나씩 매만졌던 낮과 밤들은 한달 반 만에 나의 외장하드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