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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영상문화시대의 시각문법을 보는 방법

2011-03-09


인간의 물리적 시각구조와 역사적 심성구조에 따라 “시각구조물”을 디자인하는 시각문법과 “영상상업주의”를 간파하는 시각적 통찰력을 다룬 정병규 씨(북디자이너, 정디자인 대표)의 강연이 지난달 26일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1강의실에서 열렸다. 인간이 눈으로 대상을 보고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과 인간의 시각조건을 반영한 디자인 시각문법을 알아보고, 인간의 무의식에 침투해 새로운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고 협박하는 영상상업주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글 | 강우성 정글리포터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인간은 모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대상과 상황을 보고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생각과 말을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인간의 시각 근거는 기억이고 기억은 교육을 통해 인간의 몸과 마음에 자리 잡는다. 눈의 시각구조는 같지만 기억과 문화를 토대로 같은 대상과 상황을 서로 다르게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부터 보이고 특정한 색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처럼, 기억은 즉각적이고 무의식적이다.
인간의 눈은 부정확하다. 눈은 뇌의 작동에 따라서 대상을 본다.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보기도 한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이기 때문에 때때로 눈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는 눈에 의한 시각적 요인에 의해 작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시각적, 심리적 조건을 파악하고 그 조건을 시각구조물에 반영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디자인이다.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시각문법은 무엇인가? 시각문법은 “시각적 의미 Visual Meaning”를 토대로 구조물간의 위계질서를 세우고 독자에게 정보를 한 눈에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강의에서 언급한 기본적인 시각문법은 다음과 같다.

1. 영향력이 큰 이미지의 힘과 방향이 이어지는 다른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2. 이미지의 외적 크기와 내적 크기의 의미는 다르다. 패키지와 알맹이의 차이다.
3. 이미지의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으면 텍스트도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어야 한다.
4.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설명은 오른쪽이면서 아래에 위치해야 한다. 이성적인 것은 감성적인 것의 오른쪽에 배치해야 한다.

위의 법칙은 편집디자인 기본 이론이지만 현대 뇌과학은 위와 같은 법칙에 대한 시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뇌과학은 인간이 대상을 보고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을 수치화하여 인간의 시각구조를 밝히게 되었으며 막연한 신념과 신화에 의지하던 것들을 과학적인 근거가 대체하게 되었다.

“시각 구조물을 볼 때 그 이미지에 바로 빠지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구조를 살펴보라. 그 구조가 우리를 배려하고 있는지 아닌지, 한국 문화를 반영했는지를 아닌지를 보면 구조를 만든 집단과 그 집단의 성향까지 보인다. (...) 공간을 조작하고 디자인 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마음의 공간도 디자인해야 한다. 사진 속 인물의 시선에 따라 텍스트를 배치하는 것은 상식이다. (...) 이것이 우리 삶의 시각적 질을 하나씩 높여가는 과정이다.”


정병규 씨는 디자인을 배우고 익힐 때 처음 10년은 암기과목처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생존 조건을 암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암기한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은 시각적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그는 자율을 강조하는 최근 디자인 교육은 상식을 벗어난 디자인이 난무하게 만든다고 한다. 강의 내용에 따르면 디자이너는 적당히 장식하는 장식전문가가 아니라 상식을 바탕으로 시각적 의미구조를 만드는 사람인데 한국디자이너가 시각적 의미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까닭은 박정희 시대부터 디자이너가 수출에 도움이 되는 장식전문가 취급을 받았고, 국가는 계획없이 디자인 교육기관을 만들고 디자이너를 배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한 해 대학을 졸업하는 디자이너는 3만 2천 명 정도라고 한다.

“디자인은 철저히 이데올로기다. 디자인은 인간을 세뇌한다. 디자인이 무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히틀러는 빨간색과 검정색을 강조했고 밤에 불빛을 쏴 올리는 퍼포먼스로 당원들의 눈과 마음을 장악했다. 디자인은 조작적이고 상품화이다. 무시무시한 체계다. (...) 우리는 조작된 세계에 살고 있다. 상식에서 벗어난 디자인은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황폐하게 만든다.”

우리 눈은 무의식적이고 부정확한 만큼 광고와 특정 대상에 취약하다. 영상문화는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눈을 자극하는 기술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소비 패턴을 만들어 조금 더 쉽게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시각체계-영상문화-자본주의’의 관계에서 이 세 가지를 이용하는 집단이 결탁하여 인간을 상품세계의 소비자로 몰아넣고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광고의 협박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세상에 산다. “영상문화의 기본 전략은 인간을 파블로프의 개로 만드는 것이다.”

디자인은 조작적이기 때문에 비열하게 상품구매욕만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영상문화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광고는 상품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해 상품의 단점은 감추고 장점을 과장한다. 이런 광고가 어떤 시각문법으로 인간의 눈과 마음을 자극하는지 파악해야 당하지 않는다. ‘새롭다’는 말 때문에 계속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류가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시각 독해력”이 높아질수록 우리를 기만하는 광고는 사라질 것이다.

“신문지는 광고를 24시간 싣고 있다가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가고 말지만, 만약 디자이너의 작업이 성공했다면, 그 광고가 전달한 이미지와 의도는 우리의 머릿속에 잠복하여 욕망과 기회가 적절히 만나는 순간 우리의 의식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 모든 동물 가운데 상징을 만드는 것은 사람뿐이다. (...) 상징은 이성과 기억의 기초 단위이니, 의도적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려는 상징을 주입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또 잔인한 일이다. 그렇게 주입된 의미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고 분류해낸 뒤로도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오랫동안 그 상징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접근하는 모든 시각 정보를 사전에 걸러내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 나는 우리 사회가 시각 독해력이 높아질수록 소비자의 선택을 기만적으로 조종하기 위한 과도한 시각 이미지의 남용을 거부할 것이라고 믿는다. (...) 디자이너들에게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소비 행태, 약물 중독이 아닌, 세계에 정말로 필요한 생각을 널리 퍼뜨리는 데 힘이 될 직업적인 권위와 설득의 능력, 지혜가 있다.”
-데이비드 B. 버먼(지음), 이민아(옮김),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혁명',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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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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