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27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상탈출을 꿈꾸는가?
매일 컴퓨터와 씨름하면서 지내는 디자이너들. 그들에게 일상탈출이란 바로 꿈 같은 일일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꿈을 실현할 날만을 기다리면서 나름대로 공상의 세계를 갖는 것도 때론 행복한 상상이 된다.
여기에 일본여행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 주목하라.
개성만점 만화가들이 일러스트와 사진, 글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재기발랄한 도쿄여행기를 출간했다.
디카와 그림 도구가 든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도쿄로 떠난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여행기.
그 보물창고를 소개한다.
취재ㅣ 박현영 기자 (maria@yoondesign.co.kr)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태준과 이우일의 도쿄여행 계획은 홍대앞 어느 선술집에서의 취중담화가 현실이 된 것이었다.
“형, 우리 여행을 가자. 그래, 도쿄는 어때? 여행 다녀온 다음 그걸 책으로 만드는 거야.
그림도 그리고 일기도 쓰고, 엄청 재미날 것 같지않아?”
“응. 재미있겠다.”
그들의 공상은 출판사의 권유로 공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일상의 변덕을 사랑한다는 이우일과 현태준은 가볍게 가방을 둘러매고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들의 여행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만한 ‘컨텐츠’와 ‘재미’가 가득한 기획물이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엮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두 만화가는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서로 다른 탓에 함께 떠났으나 발견하고 느낀 도쿄의 재미는 서로 달랐다.
그래서 공동 작업 대신 각각 다른 장소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여행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로 한 것이다.
만화가이자 장난감 수집가로 알려진 현태준은 도쿄의 중고상가와 프리마(벼룩시장), 파친코 장과 먹거리 기행에, 책과 그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이우일은 도쿄의 아기자기한 재미와 호젓함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숨은 골목길과 책방, 새로운 문화명소가 된 롯폰기 힐스를 중점적으로 여행했다.
그래서 이 책은 두 만화가의 ‘따로 또 같이’ 도쿄 여행기라는 애초의 컨셉을 무난하게 맞추어 갈 수 있었다.
글과 그림의 영역을 정하지 않고 각각 자신만의 문체와 그림으로 보고 느끼고, 즐긴 도쿄의 면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게 된 것. 물론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가진 저자들의 글과 그림을 한 권으로 엮어내면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두 만화가의 개성을 한 권의 책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렸다.
개성 넘치는 만화가인 그들이 담아온 얘기보따리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무게만큼 독자들에게 모두 들려주기란 쉽지 않은 법. 시공사의 이선화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타의 여행책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고군분투한 도쿄여행기의 제작과정과 디자인에 대해 들어보았다.
1. 도쿄여행기의 디자인 특징은 무엇인가?
만화가들의 여행서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림의 화려한 색감과 재기발랄함을 잘 살리면서 텍스트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행장을 길지 않게 했으며 행수도 줄였다. 또한 판형 역시 신국판에 변형을 가해서 작고 아담한 사이즈로 했으며, 본문 종이도 들고 다니면서 읽기 편하도록 가벼운 이라이트지로 선정했다.
디자인상의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기 위해서 ‘현태준 편’에서는 제목을 손글씨로 대체하기도 하고, 먹거리 소개 부분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꼭지를 각각 대표 색을 정해 백그라운드로 깔았으며, 일부 사진의 경우 누끼를 따서 배치하기도 했다.
‘이우일 편’은 글과 그림의 비중이 동일하고 그림의 색감이 화려해서 텍스트 부분은 가능한 심플하게 했으며, 사진과 작은 아이콘 그림 역시 사이즈를 줄여서 배치했다.
2. 다른 여행책과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다면?
일단 이 책은 도쿄의 유명한 지역을 시시콜콜 설명하거나 찾아가는 방법, 그곳에서 꼭 봐야 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한 책일 수도 있으나 현태준 이우일 두 만화가만의 여행 이야기가 궁금하거나 새로운 컨셉의 여행기를 즐기고 싶은 독자들에겐 반가운 책이다.
드로잉이나, 수채화만으로도 여행서를 만드는 외국의 다양한 출판 풍토를 생각한다면 이런 컨셉의 여행기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
3. 표지는 어떻게 제작되었나?
처음에는 이미지가 아닌 제목을 강조하는 ‘타이포’ 중심에 저자들의 캐릭터를 살짝 얹는 컨셉으로 작업을 진행했으나 필름 송고를 하루 앞둔 날 밤에 전격적으로(?) 본문의 그림을 이용한 보다 발랄한 표지로 가기로 했다.
표지의 그림은 이우일 씨가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날의 이야기를 담은 꼭지의 그림으로 도쿄의 상징이랄 수 있는 도쿄 브리지와 대표적인 건물들이 앙증맞게 자리 잡은 것으로 택했고, 오프라인 서점 마케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저자들의 전작 리스트를 강조한 띠지를 둘렀다.
4. 목차의 구성과 전체적인 내용 편집에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편집 형태와 내용 구성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컨텐츠를 한 권으로 엮었기 때문에 목차의 경우 디자인상으로 통일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 내용 편집의 경우 저자들의 개성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텍스트의 흘림과 캡션 처리, 사진과 그림의 배치는 통일감을 주었다.
5. 제목은 어떻게 선정되었는가?
애초에는 톡톡 튀는 재미가 느껴지는 제목들(일본어를 가미한)을 떠올려보고 논의도 했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이 ‘현태준, 이우일, 도쿄’라는 명확한 명제가 있었기에 다소 심심하지만 정직한 제목인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가 되었다.
6. 일러스트와 사진의 배열에 있어서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하였는가?
만화가들의 책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진의 비중은 줄이고 싶었다. 그러나 애초에 만화나 일러스트만으로 구성되는 책이 아니었고 여행기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해서 사진을 넣게 되었는데,
이우일 씨는 꼭지당 풀 컷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진은 ‘tip’정도로 비중을 줄여 꼭지당 한 컷만 넣었다.
현태준 씨의 경우는 만화나 그림의 비중보다 글과 사진의 비중이 많은 편인데 화보 형식의 사진과 캡션만 들어가는 페이지는 마지막에 그 비중을 많이 줄인 셈이다.
7. 도쿄여행기를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그림만 봐도 작가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와 특징적인 작업을 하는 만화가들의 글과 그림을 한 권으로 엮으면서 억지스럽거나 개성을 해치는 편집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자, 디자이너 모두 고심했다.
특히 독자들이 ‘이우일 편’에서 ‘현태준 편’으로 이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부분과 ‘현태준 편’의 사진과 캡션 처리를 단행본 독자들에게 적합하게 하기 위해 여러 번 시안을 변경하면서 고군분투했다.
현태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쉽지 않은 작업인데, 거기다가 사진까지 직접 찍었는데요. 이 3가지 작업 중에서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글쓰기가 가장 힘겨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여름의 더위에 무척 약한 편인데 한여름에 글까지 쓰려니까 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이 책을 만들면서 사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제 글에 제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텍스트와 그림 사이의 시너지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죠. 뭐랄까...텍스트와 그림 사이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시시콜콜 명소를 소개하는 여타의 여행 가이드북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 류의 책들을 저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여행이란 다분히 감성적인 것인데 정보를 모은 책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죠. 사소하고 개인적인 취향을 들어냄으로써 전형적이지 않은 여행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는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는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일러스트를 그릴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텍스트가 못하는 것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하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못하는 것을 텍스트로 한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기본적인 저의 생각입니다. 독립적으로는 약할 수 있지만 둘이 만나 최상의 것을 낳게 하려고 평소에 노력하는 편입니다.
여행 중에 느낀 점들이나 에피소드를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고 일러스트로 풍자함으로써 재미있고 유쾌한 여행책이 되었던 것 같은데요, 이런 부분들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때 그 때 메모를 한 것인가요?
메모와 디카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서 잠들기 전에 노트에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가계부도 적고요,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책에 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기억장치였습니다. 여행 전에 자료도 꽤 많이 정리해 두었습니다. 흔한 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사진과 일러스트, 그리고 텍스트 배열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었나요?
저는 왁자지껄한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디자인은 미니멀한 것을 선호합니다.
선이나 장식이 철저히 배제된 것을 좋아하죠.
기본적인 요소인 사진, 일러스트, 텍스트 외에는 최대한 절제해 달라고 출판사측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전 일러스트에 비해 이번 책에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차이점이 있다면?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도쿄였다는 것만 다르죠.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도쿄의 장소는?
나카메구로의 메구로 강 주변.
도쿄여행기를 보면 일본사람들은 일러스트가 생활화 되어있다고 묘사하셨는데, 일러스트레이션의 도시로 묘사한 도쿄와 서울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3세계에는 아직도 간판을 손으로 그리는 곳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특히 경제적인 이유가 주된 원인이죠. 하지만 도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일상이 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가 있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삶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고 보다 감성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국의 잡지만 봐도 금새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잡지들은 점점 그림이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사진으로 거의 도배를 하죠. 잡지에서 그림이 사라진다는 것은 제게 상당히 우울한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사진은 너무 직접적이거든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TV 드라마만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에 대해 아마추어가 보다 더 대상을 관찰해서 그리려는 흔적이 보이기 때문에 성실하다고 표현하셨는데, 관찰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면?
사물을 관찰하는 것은 모든 창작행위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보고 그대로 그려보면 사물의 본질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죠.
됴쿄에서 구입한 장난감이나 DVD 등을 일러스트로 표현하였는데,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단면 같기도 하네요. 이번 도쿄여행에서 구입한 쇼핑품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스트월드’의 ‘이니드’ 피규어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내년 1월초까지 계약된 몇 권의 책을 끝내야 하구요. 1월 말에 또 다른 여행기를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고요. 장소는 비밀입니다. 새로 만난 출판사가 적극 지원 한다고 해 시리즈로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기대가 됩니다.
도쿄여행기는 홍대앞 선술집에서 ‘여행을 가자!’ 그리고 ‘책으로 만들자’ 라는 발상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데… 책이 출간되고 어떤 느낌이 드나요?
글쎄요…놀랍고 신기합니다.(웃음) 보통 세상일이란 것이 하고 싶은 대로,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쉽지 않은 작업인데, 거기다가 사진까지 직접 찍었는데요. 이 3가지 작업 중에서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글 쓰는 작업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 작업에는 맥주를 아주 많이 마시면서 했는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시콜콜 명소를 소개하는 여타의 여행 가이드북과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반적인 여행가이드 북은 취향이 제각각인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객관적인 정보를 정확하게 나열한 책이고, 우리의 여행기는 그냥 우리의 입맛대로 보고 느낀 점을 짜면 짠대로 달면 단대로 표현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과 일러스트, 그리고 텍스트 배열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었나요?
저는 텍스트 배열에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읽기 편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도쿄여행기의 컨셉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개개인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고 관심 있는 곳만 살짝 보고 오는 여행기.
이전 일러스트에 비해 이번 책에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차이점이 있다면?
전의 그림에 비해서 훨씬 발랄해졌습니다. 예전부터 항상 발랄한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이번에 조금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도쿄의 장소는?
현재로선 ‘나카노 브로드웨이’입니다. 도쿄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대 구경비용: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볼 수 있는’가 아주 뛰어난 곳이지요.
프리마에서의 매너나 “쓰미마셍”의 발음법까지…해학(?)을 지닌 기초적인 회화나 에티켓 정보는 어떤 회화책보다도 쉽게 쏙쏙 들어옵니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글과 그림이 무척 유머러스하고 맛깔스럽더군요. 다른 여행책과 차별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학교 다닐 때 소풍 전날의 잠도 안오고 설레는 그 느낌이 전해지도록 가장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경험하고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친절하고 쉽고 자세하게, 그리고 밝게(명랑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크게 목차를 구성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서 내용을 구성했나요?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하는 ‘먹고, 보고, 사고’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내용이 풍부한데요, 직접 체험하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출판사에서 많은 비용을 대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도쿄에서 만난 현지에 계신 분들이 술값 같은 것을 내 주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 복을 많이 받았다고나 할까요.
현태준씨가 생각하는 이우일씨와의 책의 전반적인 느낌과 구성상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우일씨의 도쿄가 잔잔한 여운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면, 저의 도쿄는 좀 까불까불하고 화려하다고 할까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지금 작업중인 교양만화를 내년 초에 발간할 계획이고요, 그 외에 몇 가지 단행본기획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장난감에 관한 여러 가지 궁리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