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28
예전에 어떤 마음씨 좋은 하얗게 수염난 할아버지의 인상깊은 디자인 세미나가 있었다.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Information Design과 Typography를 가르치며 DynamicDiagrams의 설립자이기도 한 Krzysztof Lenk 교수의 세미나였는데 여러 가지 작업들과 귀한 자료들을 보여주며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웹사이트의 스타일가이드나 IA(정보설계)의 개념이 매우 초보적으로 진행되거나 전무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DynamicDiagrams는 이미 유수의 대기업 사이트의 IA 구축을 성공적으로 컨설팅해주며 온라인에서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나에게 놀라왔던 점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같은 분이 최신 디지털 미디어의 웹을 기술의 저항없이 슬기롭게 다룬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오랜 시간동안 튼튼하고 날카롭게 다져왔던 좋은 디자인철학이 미디어들을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미나 중 ‘클라이언트를 위한 PT의 노하우’는 어떤 것인지 묻는 질문에 찡긋 웃으며 ‘이것은 비밀이긴 한데 사실은 다이어그램 판넬 하나만을 준비해 가는 것이 나의 방법’ 이라고 했던 여유롭고도 의미심장했던 대답은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고 있다.
같은 정보, 같은 이야기, 같은 생각이라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질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떤 누구도 쉽고 간결하며 재미있으며 창의적인 정보를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한 정보는 우리들의 눈을 붙잡고 마음을 붙잡고 움직이게 하며 심지어 감동까지 준다.
정보의 메뉴판을 잘 생각하고, 어떤 정보를 요리할지 고민하고, 재료를 수집하고 다듬고, 필요없는 것과 상한 것은 과감히 버리고, 진부한 표현의 양념은 멀리하고, 부풀어오른 내용의 건더기는 압축하고, 살짝 유머의 향신료를 뿌린 후, 깨끗한 프리젠테이션의 접시를 준비한 후 맛있고 먹음직한 ‘커뮤니케이션 요리’를 만들어보자. 나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손님들을 위해.
고등학교 수업 중 ‘지구과학’이란 과목을 무척 좋아했던 필자는 머나먼 우주만큼이나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곳이 우리가 발 붙이고 살고 있는 지구라는 것에 매번 경외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아직도 구름이 왜, 어떻게 생기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것과 지구 중심부에 멘틀을 지나 핵이 있다는 것을 실제로 안에 들어가 직접 본 이가 없는 이유도 그렇다. (가설과 이론, 과학적인 논증에 의해 우리는 수치적인 신념을 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저 우주 멀리 기껏해야 태양계만을 어설프게 탐독하고 있는 인류의 수준에서, 지구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구에 대한 수많은 백과사전이나 책들보다 한층 진화된 형식으로 꾸며진, 지구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대단한 사이트가 있어 소개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제작한 지구관측소(Earth Observatory) 사이트. 이 곳은 NASA의 공식 사이트인 www.nasa.gov의 연장선에서 매우 전문적이며 방대한 자료들을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대기, 해양, 대륙, 생명체, 에너지와 같은 카테고리를 통해 전문적인 데이터와 이미지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데이터베이스 형식으로 구성된 지구 관측의 수치적인 정보시각물(사용자가 옵션을 선택하면 결과물로 완성된 동영상을 볼 수 있다)도 매우 새롭고 뛰어나다.
2003 Webby Awards에서 ‘Education’ 부문 수상한 것을 보면 교육적인 가치가 대단함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방대하고 전문적인 정보의 수치들을 객관적이고 편리한 인터랙티브 시각물로 온라인에 구성한 기술과 노력에는 박수를. 지구에 대한 똑똑한 설명, 그 이상과 이하도 아닌 건조함에는 유감을.
☞ http://earthobservatory.nasa.gov 둘러보기
고대 이집트의 수도인 Thebes의 사람이란 뜻인 ‘Theban’을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 하나씩 탐험해나가는 역사 다큐멘터리(?)같은 사이트. 우리나라 말로 쉽게 풀이하자면 ‘잃어버린 고대 이집트의 유적을 찾아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사이트의 이름이기도 한 ‘Theban Mapping Project’는 1978년, 카이로의 대학에서부터 시작한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한다. 십여 년 전부터 왕들의 유적(the Valley of the Kings)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사이트는 2002년 8월에 오픈하였다.
고대 문화의 시작이기도 하며 정점이기도 한 이집트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를 재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해 제작된 이 사이트는 프로젝트 연구의 시간과 비례하여 그 공력의 힘으로 구축된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고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축적된 데이터를 가장 현대적인 디지털 미디어의 툴을 이용하여 매우 정교하게 결합하고 구성한 이 사이트는 인터랙티브 정보 디자인의 교과서적인 해답을 보여주는 듯하다. 3D로 모델링한 구조물의 프리젠테이션은 이미 전형적인 멀티미디어 정보 시각물의 표현이긴 하지만 천박한 테크닉을 앞세운 여타 플래쉬 3D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제되어 있으며 네러티브 또한 간결하고 세련되었다.
이야기가 담겨있는 역사처럼 호흡이 긴 네러티브를 정보의 단위로 정제하여 인터랙티브한 반응을 매개로 하나씩 하나씩 사용자를 정보의 깊이로 인도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정보의 순도를 100% 이상으로 승화시키며, 더불어 감동의 퍼센트도 여분으로 마련하는 디자인의 미덕은 곧 그 나라와 시대의 문화의 수준을 말해주는 듯 하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는 늘 말로만 강요되어지며 미디어를 통한 천박한 홍보에 집착하곤 한다. 온라인과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제대로 실현된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살아있는 정보의 공유로 우리 문화의 갱신이 차곡 차곡 구축되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씁쓸함보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
☞ http://www.thebanmappingproject.com 둘러보기
XPLANE : The Visual Thinking Company. 회사이름이 근사한 만큼 일하는 것, 생각, 작업들도 근사하다.
1993년에 설립되어 2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 XPLANE은 ‘BUSINESS2.0’ 같은 잡지의 일러스트레이션부터 HP와 같은 기업의 마케팅 툴로서의 포스터까지 매우 독특하면서도 깔끔한 정보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사이트를 보면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깔끔하면서도 직관적인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여러가지 프로젝트 결과물을 BEFORE-AFTER 형식의 케이스 스터디 형식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다소 어렵고 전문적인 CRM, Sales Precess 등의 개념까지 쉽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시각화한 것을 보면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와우!
또 한가지 재미있고 놀라운 것은 우측메뉴의 ‘XPLANE|EXTRA! Archives’ 메뉴에서 뉴스레터 형식으로 매번 새로운 ISSUE들을 프린트 버전과 웹버전으로 제작한 것인데 이런 식의 지적인 자극을 주는 커뮤니케이션 이메일을 직접 받아보는 것도 꽤 근사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Downloads:XPLANATiONS®’ 메뉴에는 자신들의 결과물인 포스터를 직접 팔기도 하고 PDF로도 서비스한다.(고객을 위해 제작한 결과물을 상품으로도 팔 수 있을 정도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어쨌든 훌륭한 정보디자인을 생산하고 있는 XPLANE 사이트는 방문 자체로도 흐믓한 동경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 www.xplane.com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