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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자동차의 유행

2012-06-12


자동차는 공급이 넘쳐나고 소비패턴이 바뀌면서 개인적 욕망에 따라 구입하는 소비재로 변화했다. 개별적인 삶의 형태와 취향, 욕구에 맞는 디자인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이는 자동차 선택에도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이동의 기능에 충실했던 이전의 자동차 디자인으로는 충족될 수 없었던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요구는 하나의 차량에 여러 기능을 복합적으로 혼합한 차량의 출현을 이끌어 냈다. 여러 기능을 합친 자동차의 등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일상적인 생활과 여가 활동의 편리성을 합친 자동차의 등장을 재촉했다.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차량에 대한 필요성은 개별적인 삶의 욕구에 집중하는 시대에 가장 먼저 요구되는 유형이었다. 점차 가족 모두가 함께 탈 수 있는 넓은 공간의 미니밴이 확산되고, 시골이나 산림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던 지프가 도심에서 일상적인 용도로 쓰이게 되었으며, 예전에 화물용으로 사용되던 픽업이 스포츠용으로 변해 다시 나타났다. 첨단기기와 고성능에 대한 요구보다는 마음에 드는 차를 타고 얼마만큼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면서 여가용 자동차의 확산을 가져왔고, 더불어 자동차는 여가가 형성하는 사회적 의미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자동차 스타일의 변화는 여가의 형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예전에 여가는 ‘일하기 위해 쉬는 시간’의 개념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 여가는 ‘자기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적극적 행동’이 되었다.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표시였으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소비능력이 있다는 의미를 지녔다. 대부분의 여가 활동이 일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에 비해, 자동차를 이용한 여가 활동은 일상적인 공간을 탈피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특별했다. 자동차는 경쟁적이고 반복적인 도시의 일상에서 탈출하여 자연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었으며, 자동차 여행은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고유성을 되찾으며 새로운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생활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여행의 의미는 2003년부터 시행된 주5일제 근무를 계기로 확대되었다. 주5일 근무제는 자유 시간이 늘어난 도시 근로자를 중심으로 여가 활동의 증가를 가져왔고, 더불어 소득 수준에 따른 여가 활동의 차이를 가져왔다. 가족 단위 여행과 골프, 스키와 같은 고급 레포츠 활동, 특히 자동차에 스포츠 장비를 싣고 가족 모두가 떠나는 여행은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즐기는 여가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자동차 여행은 중산층이라는 계층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기호로 작용했다.

RV(recreational vehicle)계열의 차량은 이러한 사회 변화를 대변하며 빠르게 늘어났다. RV는 4WD 오프로드용 지프형 차량과 도시형 SUV, 가족용 미니밴 등의 여가용 차량을 통칭했다. 지프는 원래 미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군용차로 다목적 군사 임무를 탁월하게 수행하여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온 요소로 꼽힐 만큼 강한 이미지를 남기면서 4WD 차량의 대명사가 되었고, 전후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된 차량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지프형 차량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자동차 시장의 3.5%에 불과한 채로 쌍용의 코란도가 독점했었다. RV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록스타(아시아,90년)와 갤로퍼(현대정공, 91년)가 출시되어 코란도와 경쟁하며 지프형 차량의 붐을 이끌었다. 특히 갤로퍼는 미쓰비시의 파제로를 현대정공이 들여 온 것으로 파제로는 80년대 험하기로 유명한 사막 경기인 다카르 랠리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여 미쓰비시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려준 역사적인 차량이었다. 이러한 파제로의 명성을 이어받은 갤로퍼는 여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다. 갤로퍼는 오프로드를 거침없이 달릴 것 같은 인상을 줌으로써 혼잡한 도심의 교통체계에서 벗어나 어디든 달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으며, 자연속의 환상과 모험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재미를 주었다. 몇몇 소유자들은 이러한 환상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더 크고 넓은 타이어로 갈아 끼우고 금속으로 된 범퍼가드로 요란하게 치장해 마치 다카르 랠리를 거침없이 달릴 것 같은 파제로처럼 위협적인 분위기로 보이게 했다. 그러나 실제로 험난한 오프로드를 달릴 기회가 별로 없는 일상 속에서 이러한 치장은 무거운 차체를 더욱 무겁게 만들뿐이었다.

지프형 오프로드카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종류의 차량은 도시의 일상적인 활동에 적합하도록 발전했다. 도시형 SUV는 4륜구동 차량의 안전성과 오프로드에서의 주행성능에 승용차의 편의성을 혼합한 차량이었다. 이러한 차량은 공간이 넓고 좌석이 높아서 조망이 좋으며 힘도 강해 복잡한 도심에서의 운전과 거친 교외에서의 주행을 자유롭게 연결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도시형 SUV는 기아자동차의 스포티지였다. 스포티지는 무겁고 딱딱한 박스스타일에서 벗어나 강하면서도 완만한 곡면이 살아있는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엔진룸이 적고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가 길어 실내공간이 넓게 확대된 모습이었으며, 이러한 전반적인 차체 모양은 승용차에서 유행하는 풀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이라고 소개되었다. 스포티지가 생산될 당시 국내에는 아직 레저붐이 형성되기 이전이어서 호응이 좋지는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코란도가 갤로퍼의 등장으로 열세에 놓이면서 쌍용자동차는 새로운 도시형 SUV로 무쏘(93년)를 생산했다. 무쏘는 기계적이며 기하학적 이미지를 강조하여 강인하고 육중해 보이는 스타일이 특징적이었다. 무쏘도 전통적인 오프로드카를 일상생활에 맞게 조작이 편리하도록 변형한 차량이었지만, 차체의 무게와 크기에 비해 실내공간이 넓지 못해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이처럼 스포티지와 무쏘는 도시형 SUV로 생산된 새로운 유형이면서 스타일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차종이었고, 이후 현대의 싼타페(2000년)가 승용차처럼 안정감 있는 주행 성능으로 SUV를 대중화시켰으며, 쌍용의 렉스톤은 고급스러운 SUV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레저용을 강조하는 SUV차량과 함께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미니밴도 RV붐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미니밴 시대를 연 차종은 기아의 카니발이었다. 카니발이 생산된 98년 한국은 IMF 체제에 돌입하여 자동차의 판매가 전년의 50% 정도 감소할 만큼 시장이 저조하고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연비가 저렴한 LPG와 디젤 차량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카니발은 각종 세제혜택과 저렴한 유지비용, 넓은 실내공간에 가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좌석배치 등으로 활용도가 좋아 인기를 끌었다. 카니발이 미니밴 붐을 일으키면서, IMF로 어려움에 처한 기아를 다시 살려 제2의 봉고신화를 일으킨 주역이라 불렸다. 카니발의 개발에서 모델로 삼은 차량은 크라이슬러의 캐러밴과 포드의 윈드스타였다. 특히 캐러밴은 80년대 화물용으로 사용하던 밴을 소형화시켜 가족용으로 개조하고, 시트를 가변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새로운 유형이었고, 이러한 면에서 실내 공간을 거주 공간으로 확장시켰다는 의의를 지닌 차량이었다. 캐러밴을 계기로 미니밴이 실용적인 가족용 차량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카니발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것이었다. 이처럼 90년대 후반 들어 한국 사회는 여가활동 자체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한 측면을 담당하면서 SUV, 미니밴 등 RV 차량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차종이 되었다.

일상과 여가 생활의 편리성을 혼합한 RV 차종이 자리 잡으면서 일반적인 세단형, 스포츠형에서도 차종간의 성격을 혼합하는 것이 유행했다. 하나의 차량에 세단, 쿠페, SUV의 여러 특성을 섞어 기능과 스타일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MAV(Multi Activity Vehicle), CV(Combination Vehicle), SUT(Sports Utility Truck) 등이 유형이 생겨났고, 이러한 장르가 다른 차를 합해 놓은 차종을 통칭해서 CUV(Crossover Utility Vehicle ,크로스오버유틸리티비히클) 또는 Fusion Car(퓨전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차량 구조와 디자인의 혁신적인 변화에 의해 것이 아닌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차별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대응하는 다양한 유형의 차종이 등장하며 자동차 스타일의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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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6.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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