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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 리뷰

다양하고 고급스러워진 90년대 자동차 트렌드

2011-12-27


1990년대 들어 자동차 대중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자동차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성능의 소형차 보다 더욱 크고 고급스러운 차량을 선호하게 되면서 마이카의 주된 차종은 엑셀과 프라이드로부터 벗어나 배기량, 성능, 차체 크기와 스타일의 세련미 등 여러 면에서 향상된 차량들이 그 붐을 이어갔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80년대 중반의 마이카 붐은 엑셀, 프라이드, 르망의 소형차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소형차는 한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무난한 차량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는 첫 차로,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인기를 누렸다. 사람들이 차량을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 크기, 성능 순으로 저렴한 기본형을 많이 찾았다. 제조사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유형도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았다. 소비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기껏해야 5도어, 3도어, 세단형 중 2~3가지 정도였고, 이 중에서도 가장 무난한 세단형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80년대에만 해도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했던 시대는 90년대로 넘어가면서 크게 변했다.

기본형 소형차의 판매가 주춤하고 좀 더 나은 고급형을 찾는 시기도 지나면서, 90년대 들어서는 마이카의 차급이 아예 달라졌다. 엔진크기와 차체가 소형과 중형의 중간인 새로운 차급, 준중형급이 대중화의 주요 차종으로 등장했다. 현대의 엘란트라, 대우의 에스페로, 기아의 세피아는 새로 출시된 준중형급 차량이었다. 93년의 자동차 판매량은 엘란트라, 엑셀, 쏘나타, 기아 프라이드와 세피아 순으로 높았다. 준중형급 엘란트라가 판매량에서 소형차를 앞지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온 가족이 함께 좀 더 넉넉히 탈 수 있는 차를 원했고, 준중형급 차량은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를 적절히 반영한 차량으로 주목 받았다.

엘란트라는 전체적으로 둥근 느낌의 차체에 엔진룸과 데크의 길이가 짧아 실내공간이 넓었다. 세단형이었지만 테크가 짧고 높은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에 화려한 색채로 보수적인 느낌을 걷어냈다. 엘란트라의 둥근 볼륨감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펄 칼라로 더욱 강조되어 보였다. 펄(pearl) 칼라는 색상 안료에 마이카로 불리는 광휘재를 혼합하여 도장한 색채로, 엘란트라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붉은색의 투명한 펄 안료가 혼합된 와인색(Wine Red), 푸른색 펄이 들어간 네이비 블루(Navy Blue)는 어두운 색임에도 불구하고 맑고 깊은 유채색의 펄이 선명하게 빛나는 고급스러운 색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자동차 색채가 다양해지고 품질이 향상되기 시작했으며, 색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대우의 에스페로는 르망 엔진을 기본으로 하여 이탈리아의 베르토네로부터 스타일링을 지원받아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차량이었다. 공기역학계수가 0.29에 달하는 날렵한 쐐기형 디자인은 세련된 모양을 뽐냈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낮은 자세의 앞모습과그림 1) 대우의 에스페로 (1990년) 뒤쪽 필러가 유리창 속에 내장되어 한 장의 곡면 유리로 처리된 듯한 뒷모습은 질주하는 자동차의 이미지를 간결하고 힘있게 표현했다. 군살없고 탄탄한 느낌의 외장 스타일, 첨단의 이미지를 주는 랩어라운드 방식의 인테리어 등 스타일 면에서는 상당한 호응을 얻었지만, 실제적인 스타일의 완성도는 높지 못했다. 국내 제작 기술이 베르토네의 디자인을 현실화할 수 있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기술력과 성능 문제로 판매에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세피아는 기아자동차가 첫 고유모델로 개발한 차종이었다. 세피아는 엔진과 서스펜션 등에서 마쓰다의 설계를 응용하였으나, 마쓰다의 패밀리아(Familia)보다 균형이 잘 잡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피아도 당시의 유행을 따른 곡면의 차체에 뒤쪽을 높여 속도감을 강조한 스타일로 엔진룸과 데크가 짧고 실내 공간이 넓은 세단형이었다. 에스페로와 세피아는 대우와 기아에서 자체적으로 개발된 고유모델로 이 차종들을 통해 비로소 한국의 자동차 3사는 모두 고유모델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 차종들은 한국의 디자인 개발력의 진일보를 보여주었으며, 또한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달라진 요구를 확연하게 드러내어주는 모델이었다.


준중형급의 세련된 디자인의 차종들이 여럿 출시되면서 사람들의 구매 태도는 가격 중심에서 스타일, 편의장치, 색상으로까지 세분화하는 경향을 띄었다. 여전히 세단형의 무난한 색채의 자동차가 잘 팔려나갔지만, 그 판매 비율은 점차 줄어들었다. 차체의 크기만이 아니라 스타일에도 개성과 멋이 입혀지고, 유형이 다양해지는 추세가 가속화되었다. 기능, 디자인, 이용가치 면에서 차량이 더욱 세세하게 구분되면서 스포츠카, 차체가 높은 오프로드카, 초대형 고급차, 경차 등으로 차종이 확산되었다.

전통적인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소형차에 스포티한 외관을 씌운 스쿠프가 개발되었고, 경차 티코가 처음으로 생산되었다. 코란도에 이어 갤로퍼가 출시되어 오프로드카도 다양해졌고, 전통적인 SUV와는 다른 도시형의 스포티지와 무쏘도 출시되었다. 또한 수입고급차에 대응하는 그랜저도 개발되었다. 이러한 신모델 외에도 기본 세단형 모델의 차체를 변형한 스포티형과 고급형, 왜건형 등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이 등장했다. 86년도 당시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총 9개 모델에 불과했지만, 91년에는 19개로, 94년에는 26개 그 수는 점차 증가했다. 배기량도 86년까지만 해도 1,200~2,000cc에 불과했으나, 89년에는 1,100~3,000cc, 91년에는 800~3,500cc까지 확대되었다.

차량의 종류가 다양화되면서 사양도 고급화되었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옵션품목들은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에어컨과 틴티드글라스는 호사스런 장비였으며 자동변속기나 파워스티어링, 파워윈도 등은 일부 고급차에나 달려 있는 고급 옵션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이런 장비들은 거의 모든 차종에 쓰이게 되었다. 티코는 물론 트럭, 1박스카 등 상용차에도 옵션 품목들이 갖추어지면서 편의 장비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광고를 보면 위의 이야기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대다수의 차량 광고에서 우리는 자동차의 대량생산이 안정되고 성능과 품질, 디자인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는 흐름이 발견할 수 있다. 엘란트라 광고는 자동차 성능의 향상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광고였다. “아우토반, 속도는 무제한, 성능은 최대한, 세계의 명차와 함께 달린다. 고성능 엘란트라”라는 카피의 이 광고는 독일의 무제한 고속도로(아우토반)를 질주하며 엘란트라와 함께 경쟁을 하던 포르쉐 운전자가 엘란트라의 엔진성능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또, 어떤 중형차량은 지붕에 유리잔을 올려놓고 깨뜨리지 않으면서 울퉁불퉁한 노면 위를 달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광고는 차량 내부에 숨겨진 섀시장치의 탁월한 성능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95년 10월 <교통신문> 이 실시한 ‘소비자 품질 여론조사’에서 의하면 신차 구매시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안전성이 높아야한다'는 것과 ‘잔고장이 없어야한다’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는 여전히 국내자동차의 품질 상태가 미흡했음을 보여주지만, 활발한 신차 개발과 광고를 통해 보듯이 90년대 초반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고유모델의 개발을 통한 기술적인 진보를 기반으로 여러 유형의 차량을 개발하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과정에 있었다.




*참고문헌
구상,『자동차 디자인 100년』, 조형교육, 1998
사종성,『운전도 하고 자동차도 안다』, 청문각, 2004
(주)자동차생활, 「CAR LIFE」, 1992/10
「교통신문」, 1994/01/06, 199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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