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31
80년대 고도성장 시대를 지나며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일반적이며 항구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선호했다.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과 기본적인 성능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자동차업체에서도 대량생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기본적인 기능과 품질을 충족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이러한 디자인은 당시 양적 성장을 목표했던 국내 자동차 산업, 자동차의 대중화에 따른 시장의 요구, 해외 자동차 산업의 요구와 모두 일치하는 것이었다. 80년대 한국의 디자인은 표준적인 기술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이러한 요구에서 주어진 디자인의 환경은 세계 시장의 요구와 일정부분 일치하며 품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 난관을 딛고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석유위기 이후 세계의 자동차 시장은 미국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통해 연비를 절약하고 유해배기가스를 감소시키며, 안전도를 향상시킨 최적의 설계를 갖춘 소형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연비, 환경, 안전 등의 분야에서 기술적인 고도화가 요구되었으며, 첨단 기술을 탑재한 신차를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어야 했다. 소규모 업체의 신차개발은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세계 자동차 산업은 몇 개의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과점화 구조를 띄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몇 개 대기업을 중심으로 비용을 최소화한 자동차가 탄생했다. 포드와 지엠 주도로 개발된 월드카는 신흥자동차생산국과 국제적인 분업을 형성해 기본부품을 공용화하고, 설계를 표준화한 세계 단위의 차량이었다. 월드카는 장치 개발 비용과 생산비의 절감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차량으로 국제협력 관계에서 형성한 표준화 작업을 통해 개발되었다.
따라서 세계의 자동차디자인 경향이 차량 자체의 기능과 강도에 초점을 두면서, 부품과 외관 스타일에서는 그 다양성이 좁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동차 디자인을 감각적인 새로움 보다는 기능적 요구에 따라 움직이게 하였다. 자동차에 대한 나라별 선호도를 배제하고 외형이 똑같은 차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판매한다는 월드카 전략이 보여주듯이 디자인의 방향은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좌지우지 되었다. 차별화의 여지는 좁아졌고, 동질화된 시장에 동질의 자동차만이 공급될 상황이었다. 시장경쟁력 역시 가격과 품질에 있어 자동차의 외적인 스타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의 이와 같은 자동차의 수요구조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산업발전을 기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발전과 개인의 물질적 풍요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생활의 규격화와 표준화는 국가와 기업, 나아가 개인의 성장과 안정의 기준이 되었다. 인위적으로 틀 지워진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이 원하는 재화를 빠르게 소유하며 안정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개인적 삶이 시대의 지향점과 일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이었다. 자동차 산업은 개인의 삶의 목표와 일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기업은 세계적인 기술 수준에 도달하여 품질을 안정시키면서 자동차의 대량생산 체제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개인은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으며 ‘마이카(My Car)'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나갔다. 비록 품질이 부족했을지라도 세계 시장의 요구를 적절하게 반영하며 기본적 기능을 제공하는 저렴하고 무난한 자동차로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이러한 무난한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 주었으며 엑셀, 르망, 프라이드는 그러한 요구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엑셀은 이 성공의 주역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모델이었다. 엑셀의 디자인은 포니에 비해 모서리를 곡면 처리한 공기역학적 스타일과 전륜구동방식을 채용한 넓고 유용한 실내공간, 중량감소와 연비향상에 주력했다. 이전의 차량에 비해 실내 거주성과 안전성이 월등히 좋아졌으며 연비도 높아졌음에도 엑셀의 가격은 이전 차량들과 비슷했다.
엑셀은 가족용 차량으로서 가격, 크기, 유지비, 스타일 등의 여러 측면에서 적당하며 무난한 차량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무난함은 엑셀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성능 향상에 주력하는 엑셀의 디자인 방향은 광고에서도 볼 수 있었다. “브레이크 엑셀 정도는 돼야죠!”라는 광고 카피는 현대자동차가 추구하는 당시의 지향점이 성능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브레이크로 대변되는 안전성의 품질이 당시에 신뢰를 얻지 못했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80년대 현대가 만든 자동차에 대해 안전성과 내구성이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부품교환이 쉽고 수리비용이 저렴하며 운전의 편의성이 좋아 가장 구매할만한 차량이라고 평가했다. 이 광고가 말해주듯이 80년대 성능 향상에 집중했던 현대의 자동차에서 스타일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엑셀이 무난한 디자인으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반면, 르망은 가장 진보적인 스타일로 80년대 디자인을 대표했다. GM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의 카데트를 기본으로 하여 탄생한 르망은 “21세기의 승용차”라는 자신감 있는 광고카피가 말하듯 당대의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었다. 르망은 앞부분은 낮고 뒷부분은 높게 한 쐐기 모양으로, 공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주는 곡면의 모서리와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그릴, 범퍼 아래쪽의 에어댐, 돌출부를 최소화한 역동적인 스타일이었다. 또한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된 실내 디자인도 전체적으로 젊고 활동적으로 보였다. 86년 오너드라이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디자인이 좋다는 질문에 현대 62%, 대우 53%가 좋다고 응답했으나, 르망출시 이후 87년 조사에서는 현대가 64%, 대우가 66%로 역전되었고 기아는 33%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르망의 스타일은 현대의 프레스토와 스텔라의 선호도를 떨어뜨리고 가장 고성능의 좋은 차로 여겨질 만큼 진보적이었으며, 이 스타일은 대우자동차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높여주었다.
한편 프라이드는 엑셀과 르망에 비해 젊고 자유로우며 활동적인 모양이었다. 프라이드는 마쓰다, 포드, 기아의 3국체제로 개발됨에 따라 국가적인 또는 지역적인 정체성이 배제된 인상이 가장 강했다. 프라이드는 각진 형태로 소형차의 가장 기본적인 조형언어에 충실했으며, 저렴하고 연비가 좋은 차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디자인과 승차감에서 프라이드는 다른 업체의 차량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순발력과 가격, 경제성이 좋고 잔고장이 없는 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프라이드가 출시되면서 주목을 끌었던 것은 뒷좌석 문을 달지 않은 3도어 해치백 스타일이라는 것이었다. 3도어 차량은 1979년에 포니1의 변형 모델로 처음 선보였지만, 당시에는 자가운전자가 많지 않다보니 거의 팔리지 않았다. 프라이드 3도어는 핵가족 시대, 오너드라이버가 정착되어 가면서 뒷문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엑셀, 르망, 프라이드는 선진메이커와의 협력 관계 속에서 대량생산시스템의 안정적 기반을 확립하여 개발된 차량으로 스타일, 경제성, 성능 등의 여러 면에서 예전의 자동차에 비해 대폭 향상되었다. 무엇보다도 차량의 성능이 향상된 것에 비해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아 저렴한 편이었고 특히 실제 연비가 리터당 13~16km 정도여서 유지비도 적게 들었다. 이러한 이점을 지닌 이들 세 차종은 80년대 자동차 대중화의 시대를 열었고, 한국자동차 산업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이끌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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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국산차 정말 나쁜가』, 문화산책,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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