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패키지 디자인에 큰 노력을 들이는 기업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뜯고 버려지는 일회성 포장, 게다가 제품의 원가를 올릴 수도 있는 디자인에 큰 돈을 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디자인 경영의 시대에 가만히 앉아 소비자의 간택을 기다릴 수 만은 없는 법. 그런 면에서 일찍이 ‘자연은, ‘대단한콩’ 등으로 음료 패키지 디자인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최근 국내 및 국제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기까지 한 웅진식품은 식품업계의 디자인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자료제공 | 웅진식품

웅진식품의 발효홍삼 제품 ‘장쾌삼’과 어린이 시리얼 ‘아침햇살 오곡담은 카카오링, 카라멜링’이 작년 11월에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12월에 굿 디자인 어워드 최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올 3월에 iF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 기업들의 디자인상 수상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 가운데 이들의 그랜드슬램 달성이 뜻 깊은 것은 패키지에 ‘디자인’이란 개념이 입혀지기 힘든 식품업계의 환경 탓이다. 웅진식품의 디자인팀을 이끄는 최진규 디자이너와 이상희 디자이너를 통해 ‘맛있는 디자인’으로 우뚝 선 그들의 디자인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홍삼음료 = 붉은색’의 고정관념을 깨다
최진규 디자이너(이하 최)_ 일반적으로 인삼류의 음료는 형태가 비슷비슷 하거나 외국의 양주병을 본 딴 경우가 많아요. 인삼 같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도 그렇고 생산업체에서도 쉽게 생산할 수 있는 평범한 디자인을 권하기 때문이죠. 특별판 ‘장쾌삼’을 만들면서 저희는 그런 고정관념을 탈피해보려고 했습니다. 형태를 디자인 할 때도 인삼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인간에 가까운 형태를 가진 천삼(天蔘)에 착안해서 디자인했죠. 또 금색 코팅과 먹색 종이 패키지를 사용해서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는 동양철학을 나타냈습니다. 유리병에 담긴 음료가 어두운 색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고 술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병을 코팅할 때 고급스러우면서도 동양에서 선호하는 컬러인 금색을 선택했죠. 장쾌삼 디자인 안에 이런 철학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흥미롭게 봤던 것 같아요.


유명 캐릭터 없이도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다
이상희 디자이너(이하 이)_ ‘오곡담은 카카오링, 카라멜링’을 디자인 할 때는 내용물 자체는 다른 식품회사들과 비슷했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려 했어요. 어린이용 제품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에 집중했고, 그걸 더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포장 자체를 동물로 만들기로 한 거에요. 보통은 동물 이미지를 그려 넣는 평면적인 접근을 하는데 저희는 입체적으로 접근했어요. 팔도 달아보고 귀도 세워보고요. 그렇게 해서 한번 먹고 뜯어서 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라 진짜 아이들의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디자인 시안이 나오면 브랜드명은 빼고 디자인만 가지고 스티커를 붙이던가 하는 정량조사를 하는데요. 이 제품 같은 경우는 구매자와 실제 이용자가 달랐어요. 주부들이 사는 기준과 아이들이 보는 기준이 다르니까요. 이렇게 특정 타겟이 있다거나 실 사용자가 다른 경우엔 더 깊게 분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돌아다니면서 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어요. 뽀로로 같은 유명 캐릭터를 라이센싱하는 방법과도 비교해봤는데도 비슷한 점수가 나오더라고요.

더 안전하게 더 가볍게
최_ 식품을 다루기 때문에 소재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요. 소재가 친환경적인지 환경호르몬이 들어가진 않는지 검토하죠. 하지만 정말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이게, 또 아름답게 디자인하려면 원가가 높아져요. 지금 PET를 사용하는 이유도 PET가 원가경쟁력 대비 가장 열을 잘 견디는 소재이기 때문이거든요. 주어진 여건 내에서는 최선의 소재를 사용하려고 하고요. 더 친환경적인 수지류에 대해서는 저희도 계속 찾아보고 있는 중이에요.
또 패키지 경량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 주제가 요즘 음료회사들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유리병이 가벼워지면 생산업체로서는 유리를 녹이는데 쓰이는 연료나 전기를 아낄 수 있고, 저희도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고요. 비용뿐만 아니라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디자인을 방해하지 않는 한 최소한의 수정으로 유리병의 강도를 높이면서 변형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을 알아야 하는 디자이너
최_ 기업에서는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 이면에 제약 요소가 많아요. 에이전시는 항상 멋있게 디자인을 해와요. 저희도 그렇게 하고 싶죠. 하지만 저희처럼 제조업체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항상 원가와 생산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거든요. 디자인만 잘 해놓고 제작이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니까요. 사실 저도 음료분야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저는 화장품회사에서 일하다가 웅진식품으로 왔는데요. 입사 후 처음으로 ‘자연은’이란 제품 패키지를 리모델링 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디자인은 잘 했는데 생산 과정에서 자꾸 병이 주저 앉는 거에요. 뜨거운 용액을 병에 부어 살균하는 내열처리 방식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어요. 공장에 가보지도 않고 화장품 회사에서 하던 방식으로 똑같이 접근했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였죠.

이_ 디자이너들이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마케팅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죠. 보통은 디자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직접 재현해내는 후반 제작과정도 디자이너들이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거든요. 카카오링을 디자인할 때도 귀를 세우려면 원단을 강도가 높은 것으로 바꿔야 했고, 그러다 보니 원가가 높아지는 문제점이 생겼어요. 원가를 맞추기 위해 ‘이번 상품에서는 디자인적 측면이 더 중요하니 디자인의 원가 비중을 더 높이자’고 다른 팀들과 업체들을 설득했죠. 제가 원가를 조정할 수 있는 원리를 몰랐다면 디자인이 묻혀버릴 수 있었을 거에요. 디자이너들이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더 자신의 범위를 깨뜨리고 더 많이 공부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웅진식품의 ‘고객 만족 디자인’
최_ 요즘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의 트렌드도 브랜드와 디자인을 같은 수준으로 여기고 있어요. 모든 회사의 역량을 이 두 가지로 모으고 있죠. 디자인 경영을 표방하는 삼성전자나 기아자동차에서는 디자인 임원들이 생겨나고 있고, 유통회사인 이마트마저도 브랜드와 디자인 관련 부서들을 대규모로 만들고 있어요. 기업들이 이렇게 디자인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사업의 원동력은 브랜드와 디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저희 대표님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꼭 한번은 디자인팀에 들르세요. 어떤 때는 몇 시간씩 계시면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하시고요. 저희 대표님의 디자인경영 철학이 ‘고객이 만족하는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이다’에요. 그래서 저희 디자인팀의 목적도 첫 번째가 고객만족, 두 번째가 트렌드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하는 거에요. 시리얼 제품들은 어린이의 시각에서 접근한 것이고, 장쾌삼도 잡기 편한 저중심 설계로 인체공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모두 고객지향적인 디자인이죠. 이런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회사 내부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경영진들의 판단력도 중요하게 작용해요. 그렇게 함으로써 디자인 경쟁력도 올라가고 오래 갈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