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08
‘귀’보다 ‘눈’이 발달한 디자이너에게 고가의 하이엔드 오디오가 매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경제적 이유이든 아니든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이 세계를 영영 모르고 디자이너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에 남는 ‘사운드 디자인’이며, 동시에 놀라운 ‘제품 디자인’이기도 하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다양한 디자인은 하나같이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디자인이나 진배없다. 편협함이 없는 ‘눈’을 가진 고수 디자이너라면 ‘귀’의 전설을 만나볼 생각은 없으신지. 한국은 세계에서 하이엔드 오디오를 매장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들의 놀라운 디자인 감각을 직접 구경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에디터 │ 강철
1948년 미국 컬럼비아 레코드가 개발해낸 LP 레코드는 당시 주류였던 78회전 SP 레코드에서 LP 레코드의 형태로 빠르게 바뀐다. 이처럼 LP 레코드의 스테레오화가 진행되면서 오디오 컴포넌트의 재생 포맷과 방식 역시 하이 파이(high fidelity)화라는 커다란 변혁과 혁신적 발전을 맞이하게 된다. 1960년대 초반 진공관 앰프 전성기 시절 매킨토시(mcintosh) 프리앰프 C-22는 마란츠 7 프리앰프와 더불어 불멸의 진공관 사운드로 쌍벽을 이뤘다. 매킨토시다운 중후한 디자인과 편리한 조작의 우수성을 겸비한 C-22 프리앰프는 과거 고급형 컴포넌트 시스템을 상징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매끄러운 유리 질감과 금속계 질감이 결합된 전면 패널은 수십 년간 매킨토시 디자인의 상징이 되어오고 있으며, 독특한 실크 인쇄의 글자체와 스위치류의 놉(knob) 형태 역시 매킨토시만의 전유물로 그 독창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1946년 워싱턴에서 출발했던 매킨토시는 초기에 업무용 음향기기를 소량으로 주문받아 제작하는 소규모 메이커였다. 워싱턴에서 증폭에 관련한 몇 가지 특허를 획득한 다음 1949년 매킨토시는 본사를 빙엄턴(Bing Hamton)으로 옮긴 뒤 본격적인 오디오 앰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매킨토시는 본래 ‘푸른 사과’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진공관 앰프 시대에 마란츠와 쌍벽을 이루어온 양대 명가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아메리칸 스피커 사운드의 원류인 JBL은 LA에 본거지를 둔 업무 전용 스피커 시스템 제조업체였다. 1969년 시드니 하먼(Sidney Harman)의 하먼 인터내셔널 그룹이 JBL을 인수하여 JBL을 세계 굴지의 다국적 스피커 전문업체로 발전시켜왔다. 본래 JBL이라는 브랜드 명칭의 어원은 천재 스피커 엔지니어 제임스 B. 랜싱(James Bullough Lansing)의 이니셜을 따서 붙인 상호이다.
1950년대 이전까지 음향기기는 극장이나 스튜디오 등에 국한되어 업무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1948년 LP 레코드가 발매되면서 일반인에게도 음향과 음악을 재생하여 들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고 이어 급속도로 가정용 음향기기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극장용 모델이 가정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출시되었다. 이렇게 가정용 오디오 시스템의 포맷이 등장함에 따라서 스피커 시스템 또한 보다 섬세한 음질을 재생하는 콤팩트한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다. JBL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사운드의 기술 혁신에 노력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JBL은 알텍 랜싱의 기존 시장에 지배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날로 넓어져가던 당시의 음향 시장과 오디오 시스템의 발전이라는 흐름을 타고 JBL은 그 입지를 확고히 하여 비약적인 성장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원조인 스피커 시스템 전문 업체가 바로 탄노이다. 탄노이는 1926년 창사 이래 70여 년에 이르도록 일관된 제품 폴리시를 유지해오면서 브리티시 사운드의 맹주라는 위치를 변함없이 유지해오고 있다. 부드러운 음색과 풍요로운 음장을 무기로 아날로그 오디오 시대의 반세기 동안 정상의 브랜드로 활약한 바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시대의 변천에 좌우되지 않는 브랜드다.
원래 정류기 회사였던 탄노이는 1900년 영국 요크셔의 공업도시 리즈 근교에서 출생한 가이 R. 파운틴(Guy R. Fountain)에 의해 설립됐다. 1920년대 당시 진공관 증폭회로에 필요한 높은 직류 전압 공급을 위해 가정용 전원인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정류장치에 대한 수요가 있었는데, 그는 탄탈륨 합금(Tantalum Alloy)을 주성분으로 만든 정류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까닭에 그 합성의 의미를 부여해서 탄노이(Tannoy)라는 상호가 시작되었다. 특히 탄노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업무용 음향 사업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는데, 뉴욕의 유엔 빌딩, 제네바와 파리의 전략 사령부와 연합국 측 통역장비 시설, 호화 여객선 퀸엘리자베스의 통역 및 음향 시설 등이 모두 탄노이의 시공이다.
한편 1950년대 LP의 출현과 더불어 FM 스테레오 라디오 방송의 도입은 하이파이의 광대역 고음질화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트렌드를 타고 탄노이 사운드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70년대 창립자 가이 R. 파운틴이 은퇴하자 미국계 그룹 하먼 인터내셔날이 인수하였고, 다시 식품회사 비트라이스(Beatrice Foods)에 다시 넘어가면서 탄노이는 위기에 빠진다. 미국 자본으로 넘어간 이후 회사의 명성과 가치가 퇴색해갔는데, 급기야 영국 정부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결국 1981년 경영권을 다시 찾아오게 된다. 이후 탄노이는 미국적인 마케팅 모델 라인을 전폐하고, 다시 전통과 관록을 가진 탄노이 특유의 모델 라인 개발에 착수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오디오의 세계에서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이라는 브랜드는 하이엔드 사운드를 대표하는 최고급 오디오를 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되어오고 있다. 마크 레빈스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스레숄드는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의 황제로 군림하며 다른 하이엔드 브랜드의 규범적 존재로 활약하였으나, 근래 아성이 무너지면서 오랜 부동의 위치가 무너진 후 마크 레빈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 않나 싶다. 스레숄드가 하이엔드 파워 앰프의 최고봉으로, 마크 레빈슨이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대명사로 자리 잡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마크 레빈슨은 1980년대 중반 경영권 분쟁으로 한 때 위기를 맞는다. 정작 창업자 마크 레빈슨은 회사를 떠나 첼로(Cello)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마크 레빈슨 사는 마크 글레이저(Mark Glazier)가 이어받아 제2의 도약과 황금기를 맞고 있다.
21세기 들어서 하이파이 오디오 사운드의 영역은 지금 최첨단 하이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과 변화를 맞아서 디지털화 및 AV(홈시어터)화의 다변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러한 다변화의 발전 흐름은 최고급 사운드를 지향하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스레숄드와 마크 레빈슨이 이끌어오던 미국 내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 브랜드의 판도는 근래에 오디오 리서치의 꾸준한 발전과 크렐의 규모 확장을 비롯하여 제프 롤랜드의 기술적 압도 등으로 큰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스위스 정밀주의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골드문트의 등장 역시 대표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의 새로운 경향 중 하나다. 1980년 프랑스에서 오디오 수입을 병행하던 IBM 영업사원 미셸 레바송이 T3 톤 암을 개발한 두 젊은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들 제품의 미국 판매에 나서면서 이들이 세운 골드문트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하이엔드 오디오 설립자가 설계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미셸 레바숑의 경력은 매우 다르다. 그의 경력이 암시하듯 골드문트는 다른 오디오 브랜드와 크게 차별된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골드문트 전략은 우선 반드시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로 한다. 또한 모든 컴포넌트를 하이엔드 제품으로 개발하고 생산하여 종합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화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골드문트의 제품 개발 방식은 기술 중심주의와 달라서 제품 개발 단계부터 디자이너와 동시에 시작한다. 이러한 결과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클라우디오 로타 로리아(Claudio Rotta Loria)가 디자인한 아폴로그(Apologue) 스피커 시스템은 1989년 뉴욕의 MOMA에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골드문트는 각 모델의 개발, 생산에 있어서 전자 회로에 대해서는 촉감에 능한 프랑스에서, 스피커 시스템 디자인은 시각적 마무리가 뛰어난 이탈리아에서, 제작 공정은 정밀한 스위스에서와 같은 식의 분업화를 도모하고 있다.
골드문트사의 직원은 미셸 레바숑을 중심으로 불과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개발은 외부의 초일류 엔지니어들에게 의뢰하고, 외장의 가공과 내부 회로 조립은 스위스 내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해서 골드문트는 ‘스위스 메이드’의 엄정함을 내세워 미국의 기라성 같은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들조차도 감히 넘보지 못할 유럽산 귀족주의를 단숨에 만들어냈다.
하이엔드 오디오 디자인의 영역은 디자이너에게 생소한 분야가 아닐까 싶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까지 디자이너보다 엔지니어의 영향력이 강한 분야인 듯하다. 더욱이 한국과 같이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가 오히려 쇠퇴한 상황에선 더더욱 말이다. 이 영역은 자동차 디자인과 또 달라서 디자인 전공자에게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골드문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골드문트가 비교적 단기간에 명품 브랜드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디자인이 한 이유다. 지난 세기의 하이엔드 오디오 산업의 강자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탄노이, B&W, 카운터 포인트, 쿼드, 매킨토시, 벨로다인, 와디아 등은 모두 영국이나 미국의 기업이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사이에 영국과 미국이 석권하고 있던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캐나다 기업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에너지, 패러다임, PSB 등의 스피커에 이어 클라세와 같은 앰프 브랜드도 시장에 한 발자국씩 들어왔다. 이제 캐나다는 영국과 미국을 이어 세계적인 하이엔드 오디오 강국이 되었다. 하이엔드 오디오 비즈니스는 분명 존재하며,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 언제가 우리가 아는 최고의 하이엔드 오디오 엔지니어와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가 조우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