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실 | 2005-06-28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 죄송한 마음과 앞으로 좋은 글로 여러분을 찾아뵙겠다는 단단한 각오로 이번 칼럼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 달에는 뉴미디어 아트 작품 중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한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참신한 아이디어와 강한 작품성을 가진 작품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선정하였다.
인터넷의 발전이후, 우리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기본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많은 뉴미디어 아트는 각기 다른 현재가 네트워크로 연결됨을 표현한 텔레프레즌스와 프로그래밍으로 창조되어진 아티피셜 라이프를 표현하고 있다.
가령, 여러분이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네트워크에 연결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올 수 있고, 다른 두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개의 작품에 동시에 참여하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론, 그저 신기하고 과학기술에 의해 더 쉽게 구현될지도 모르는 시나리오이지만, 아티스트의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을 통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는 계기가 되어, 여러분의 정신이 담긴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하늘 끝을 찌를듯한 서치라이트들의 현란한 움직임!
2004년 4월 아일랜드, 더블린의 하늘엔 22개의 거대한 서치라이트 기둥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장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는 Vectorial Elevation으로, Rafael Lozano-hemmer의 작품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건물 꼭대기에 설치된 22개의 서치라이트들은 일반인들이 인터넷 상의 자바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본인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디자인한 라이트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 15초 단위로 다른 패턴으로 바뀐다. 또한 광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웹상에서 디자인한 라이트 패턴이 실제로 보여지는 장면을 촬영, 저장하여, 그 패턴을 디자인한 사람에게 이메일로 보내준다.
이용자들은 웹사이트http://www4.alzado.net/edintro.html 를 통해 아래 그림과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이 페이지에서 라이트의 방향, 길이와 카메라의 위치 등 세부사항을 정하고, 이 데이터를 저장하면, 본인이 만든 패턴대로 라이트가 움직이면서 밤하늘을 블루 서치라이트로 수놓게 된다.
하지만, 현재는 서치 라이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웹에서 원하는 패턴을 만들고 저장했을 때, 데이터베이스에서 여러분이 만든 디자인과 비슷한 디자인을 검색하여 보여준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땅에서 수십 미터 혹은 수백미터 떨어진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형형색색 화려한 풍선들을 통해서.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Usman Haque의 Sky Ear는 대략 천 개의 풍선 더미들을 구름형태로 연결시켜 하늘에 띄우는 이벤트로, 핸드폰으로 구름에게 전화를 걸어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작가의 기본 컨셉이다.
각 풍선에는 핸드폰의 신호를 받아 사운드를 들려주는 모듈과 적외선 센서에 의해 풍선의 컬러 패턴을 변하게 하는 LED 모듈이 들어 있다. 아래 사진들은 사람들이 전화할 때마다 변화되는 다양한 컬러 패턴들을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 하늘에서도 이러한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2002년, 디자인 그룹 IEDO는 Vodafone 회사의 프런트 공간을 위해 Interactive Cube를 만들었다.
위 사진처럼 프런트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총 80미터 폭의 넒은 유리벽 너머로 호수 위에 떠있는 듯한, 한 면이 4미터인 대형 큐브를 만나게 된다.
이 큐브는 프런트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좀더 새롭게 디자인된 건축물임과 동시에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핸드폰을 이용해 큐브에 연결하여 인터렉티브한 디스플레이를 보여주는 신개념의 작품이다. 빌딩 안 어디서든지 전화로 이 큐브에 연결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뮤직박스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단순하지만, 맑게 울리는 뮤직박스 음악은 어린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쓰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 또한 ‘엘리자베스를 위하여’가 내장되어 있는 작은 나무 피아노가 있었는데, 테옆을 감고 귀에 대고 들으며 따라 흥얼거기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가 목 진요의 뮤직박스 2004는 작년 뉴욕 대학교, ITP Show에 발표된 작품으로, 뮤직박스를 이용한 작업을 꾸준히 해온 작가의 작품 중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위 사진처럼, 뮤직박스 2004는 오른쪽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나무로 만들어진 원통이 돌면서 LED의 패턴에 따라 음악을 플레이 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적인 뮤직박스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나무 원통에 박힌 아름다운 빛을 내는 수백 개의 블루 LED들, 그리고 뮤직박스를 컴퓨터와 연결시킨 점 등 뉴미디어 아트로써 의미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WIRED NEXTFEST 2004’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선정되었으며, Whitney Artport 와 Rhizome 등에 소개되었다. 한국에 있는 독자들은 ‘뮤직박스 2004’의 온라인 버전(http://www.playmusicbox.com)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간접적으로라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직박스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독자 여러분은 추억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내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멀리 떨어져있는 가족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무언가가 없을까? 3년째 가족들과 떨어져서 생활하는 필자는 언제나 그들이 그립고 궁금하다.
물론 전화나 이메일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요즘 어떤 재미있는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지만, 많은 경우에 필자가 이곳에서 겪는 모든 것들을 가족, 친구들에게 알려줄 수 없는 것처럼 필자도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같이 느낄 수가 없음에 늘 아쉬워 한다.
아래에 소개할 두 작품은 물리적으로 다른 두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고 그들의 시간을 공유하고 나아가 생각과 느낌이 공유되는 작품들이다.
우리들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연결하고 싶은 경우에, 핸드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상대방과 1대1 연결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생활 방식이나 리듬 등을 느끼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랩 유럽의 휴먼 커넥션 연구소에서 발표한 Habitat이라는 작품은 우리 생활공간의 일부분인 가구를 이용하여 텔레프레즌스를 추구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 개의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위 사진에서처럼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있다면, 다른 쪽 테이블에서는 상대방의 테이블에 있는 컵이 테이블에 표시된다.
이때 본인은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지만, 테이블 위에 있는 머그컵을 통해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을 같은 느낌으로 보내게 된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 정확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텔레프레즌스의 사전적 의미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트작품을 통한 느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개념을 이용한 전자제품이 나오더라도 느낄 수 있는, 그리고 살아있는 제품이 나오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필자는 미국에 온지 1년 만에 뉴저지 한인타운이 있는 펠리세이드 팍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던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정원에서 깜빡깜빡 빛을 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 흥분된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후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필자는 작품의 주제로 자연과 생명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5년 뉴욕 대학교 ITP Show 에서 수많은 작품 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나의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John Schimmel 의 Fireflies였다.
이 작품은 예전에 반딧불이를 잡아서 유리병에 넣어놓고 친구들과 놀던 작가의 어린시절 추억에서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Fireflies는 세 개의 병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병들은 각각 다른 곳에 놓일 수 있다.
각각의 병에는 다른 컬러의 LED를 이용하여 반딧불이들이 깜빡이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고, 유리병의 뚜껑을 칠 때마다 다른 패턴으로 깜빡이게 된다.
각 병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더라도, 무선통신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병에 터치가 있으면, 다른 병들은 터치가 있는 병의 반딧불이의 움직임을 레코드하여 그것과 똑같이 재생한다. 따라서 멀리 떨어진 친구나 애인들이 유리병에 든 반딧불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같이 두면 반딧불이들의 잼콘서트를 볼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작품의 최종 버전은 아닌 듯 보이지만,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텔레프레즌스와 자연의 느낌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