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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전시 소식-미스 반 데어 로헤

박진아  | 2003-07-09

르 코르뷔지에, 프량 로이드 라이트, 발터 그로피우스와 더불어 20세기 근대 건축의 최대 거장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히는 루드비히 미이스 반 데어 로헤(Ludwig Miës van der Rohe, 1886-1969). 그는 그내 건축 분야와 함께 실내 가구 디자인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바르셀로나 의자(Barcelona Chair)’는 근대 의자 디자인의 고전적인 걸작. 베를린에 있는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올 10월 27일부터 내년 2월 24일까지 세계 최초의 반 데어 로헤 가구 디자인 전시회가 열린다. “슈투트가르트, 바르셀로나, 브르노에서 미스 반 데어 로헤 : 건축과 디자인展”이라는 타이틀대로 이 전시는 반 데어 로헤가 제2차대전 발발할 즈음 미국으로 망명가기 직전 마지막 유럽 프로젝트들을 모은 전시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미국에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파리에서는 페레(Auguste Perret),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돌프 로오스(Adolf Loos), 그리고 독일의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가 유럽과 미국에서 서서히 모더니즘 양식을 전개시켜 나가기 시작하는 가운데 이른바 ‘건축의 국제양식’이 구축되어 나가고 있었다. 근대 건축사에서 미스 반 데어 로헤가 국제 건축 양식에 특히 기여한 점은 근대 건축이 구축해 놓은 형식미와 공학적 기술을 한단계 발전시켜 정교화한 것. 네덜란드의 모더니즘 미술 운동인 데스틸(De Stijl) 양식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기하학적 추상주의를 건축에 옮겨 표현했다.

페터 베렌스의 건축 사무소에서 1907-1910년 동안3년간 견습을 쌓는 동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세계에 감명을 받고 발터 그로피우스(독일 바우하우스의 창설자)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면서, 당시 20년대 유럽 건축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던 베를린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20년대초 설계한 작품들 가운데콘크리트 뼈대와 리본유리창 마천루나 극도로 정제된 벽돌재 개인 주택 건물은 각각 페터 베렌즈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양식에 대한 메아리였다.

„Less is More“라는 명언구의 주인공이기도한 반 데어 로헤의 가구 디자인이 돋보이게 된 계기는 192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에 지어진 독일관 건물과 이듬해인 1930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 지어진 투겐탓 빌라(Villa Tugendhat). 특히 그는 바르셀로나 박람회의 독일관 건물에 유리와 대리석으로 실내를 처리한 후 의자, 테이블, 스툴의자 등 가구들을 모조리 사각형으로 디자인해 이후 사각형 가구는 반 데어 로헤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타깝게도 이들 작품들은 파괴되어 현재는 프ㄱ백 자료 사진과 설계도로만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전시작들은 반 데어 로헤가 직접 제작한 설계도와 사진 자료, 그리고 가구 제품들은 1930년대 만들어진 1차 프로토타입 오리지널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와 때를 같이 하여 베를린 뉴 뮤지움에서는 이달 12월부터 뉴욕 모마에서 이미 열렸던 „베를린에서의 반 데어 로헤(Mies in Berlin)“展이 열리고 있어 그가 제2차 대전 이전까지 유럽에서 작업한 결실을 볼 수도 있다.
박진아

반 데어 로헤의 트레이드 마크 "바르셀로나 의자"(1927년 작). 이 작품은 현재 크놀 인터내셔널(Knoll International) 사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세계 유명 디자인숍에서 1500-2000 달러대에서 구입할 수 있다.

미스 반 데어 로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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