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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샤넬, 그 전설의 이름

현은지│네덜란드 | 2013-12-20



“내 인생은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창조한다”
샤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을 갖고 전시 관람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일련의 평범하고 오래된 기성복들을 보고 있으니 실망감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사람들은 대체 이 평범한 옷들을 왜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특히 많은 관람객들이 샤넬에 대한 예를 표하듯 잘 갖추어진 정장 차림으로 전시장을 찾은 것을 보면서 그 느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샤넬의 일대기와 그의 작품을 담은 전시가 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미술관에서 내년 2월 2일까지 열린다.

글│ 현은지 네덜란드 통신원(hej0410@gmail.com)
자료제공│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미술관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디자인은 심플하고 클래식할 뿐 아니라 활동적이기까지 하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시대를 넘나들며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중 샤넬 2.55백과 샤넬 재킷은 현재까지도 패션 디자인의 지침서로 통한다. 그녀의 디자인에 대한 비밀을 만나보자. 




샤넬, 여성을 해방시키다
샤넬의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초기 디자인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녀는 틀에 박히지 않았으며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들에 비해 굉장히 진취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만 해도 회사에 다니는 여성이 드물었고, 사회적 참여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샤넬은 마치 앞으로 일하게 될 수많은 여성들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코르셋을 사용하지 않고도 우아하고 또 편리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냈다. 트위드(tweed)나 울른(woollen) 같은 남성 속옷이나 스포츠웨어에 쓰이는 재질들을 사용하여 실용적인 면도 더하였다.
 

샤넬 No.5와 모자
샤넬의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모자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모자가 곧 그녀를 패션 디자인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샤넬은 가수로 활동하던 중 1906년 재력가 에띠엔느 발상(Etienne Balsan)을 만나 그의 정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상류층의 생활에 지루함을 느꼈고 그것을 달래기 위해 모자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플하고 시크한 모자는 성공적이었으며, 곧 패션으로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애인이었던 영국인 사업가 아터 카펠(Arthur Capel)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그녀는 파리와 유명한 휴양지인 도빌(Deauville)에 샤넬샵(CHANEL Modes)을 열었다.
이와 함께 샤넬의 첫 향수 샤넬 No.5도 1921년 첫 선을 보였다. 알데하이드(aldehydes) 라는 합성물질을 사용하여 재스민과 장미추출물을 섞어 만든 현대적인 향수였다. “내가 잠잘 때 입는 것은 몇 방울의 샤넬 No.5면 충분해요.” 1952년에 마를린 먼로의 이 말은 많은 여성들을 사로잡았으며 향수의 영원함을 잘 표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샤넬 No.5를 가장 성공적인 향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
“리틀 블랙 드레스(The little black dress)는 모든 여성들에게 꼭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옷이다”
-크리스티앙 디올(Christian Dior)-

오랜 시간 동안 검은색은 애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사무직이나 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성들을 위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1920년대에는 활동적인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보편화되면서 검은색은 패션디자이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색이 되었다. 샤넬은 이러한 흐름을 잘 이해해, 정장뿐 아니라 실용적인 블랙 드레스를 선보였다. 1926년 보그(Vogue)는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인기가 많았던 자동차 브랜드 포드에 비유하며 “전세계에서 입게 될 드레스”라고 했으며, 이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길이의 변화가 있을 뿐, 이 클래식한 디자인은 동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샤넬로부터 영감을 받다
샤넬은 그녀 자신의 작품이 모방되는 것을 성공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에 이르는 많은 디자이너가 그녀의 작품을 모방하고,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고급 양장 메종 쾨느(Maison Kuhne)에서는 고객들을 위해 샤넬의 옷과 같은 원단을 사용하는 등 샤넬 맞춤형 정장을 만들어 판매했으며, 헬레느 하스브룩(Helene Haasbroek)는 고객에게 받은 샤넬의 자켓을 직접 해체해보기도 했다. 막스 헤이만스(Max Heymans)는 많은 영감을 준 샤넬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작품에 ‘Voici… Chanel’이라고 이름 지으려고 했다는 일화들은 그녀의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샤넬, 그리고 칼 라커펠트
1971년 죽기 전까지 샤넬은 세계 패션계의 선두에서 샤넬 하우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샤넬 하우스는 디오르(Dior)에 있었던 가스톤 베르텔롯(Gaston Berthelot)을 시작으로 디자이너들은 각각 짧은 기간 동안 그녀의 성공을 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의 디자인은 샤넬의 스타일은 반영했으나, 획기적이지는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침체기를 겪었다. 이후 1983년,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영입에 성공함으로써 드디어 샤넬 브랜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라거펠트는 두 가지 요소, 즉 샤넬의 근본정신과 동시대의 트렌드를 잘 섞어서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을 사로 잡으면서, 지금까지 30년 동안 샤넬의 수석디자이너로 샤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샤넬의 일생 그리고 패션을 매개로 여성들의 변화를 주도하였던 디자이너로 사는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샤넬의 모방품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샤넬이 과거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줌과 동시에 패션 디자인의 원조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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