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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목욕을 위해 존재했던 건축, 함멈

김형기 | 테헤란 | 2013-04-25



우리가 터키 관광서에서 보는 ‘터키식 함멈’ 또는 ‘터키식 사우나’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이 아랍 단어인 ‘함멈(Hammam)’은 로마 문명의 영향을 받은 아랍의 문화가 다시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더 유명해 진 것이다. 이 이슬람식의 ‘함멈’ 역시, 로마의 목욕탕과 같이 단순한 목욕의 역할을 떠나 사막을 따라 이동해 온 상인들의 또 다른 휴식처인 동시에 사회적 시스템을 사교의 공간으로 통합되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허용된 장소이기도 했다.

글 | 김형기 테헤란 통신원



이란 중부에 위치한 ‘함멈에 술탄 아미르 아흐마드 : Hammam Sultan Amir Ahmad’는 16세기, ‘사파비 시대’에 건축되었다. 200년 전 8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에서도 함멈의 윗부분의 일부가 파괴된 것을 제외하고는, 25년전까지 공중 목욕탕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제시공을 거쳐 건축유적지로 남아있는 곳이다. 모든 하중이 치밀하게 계산된 돔의 형태 때문이였을까. 어쨌든 이란 건축공학자들의 노고 덕에 우리는 21세기에 500년 전 ‘함멈’을 만날 수 있다.


입구, 목욕 의식의 시작되다
 
‘술탄 아미르 함멈’의 입구는 무까르나스(종류석 모양의 건축장식)이나, 부조, 목욕탕 현판 등의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 때문에 공중 목욕탕으로는 왠지 부적합해 보인다. 함멈의 입구에서 관광객들은 이슬람 타일과 석고장식에 시선을 멈춘다. 여기서 관광객은 공간보다는 장식에 초점을 맞추는, 건물을 광고처럼 보고 지나가는 행인일 뿐이다. 시간을 거슬러 16세기, 문 앞에서 목욕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정작 그 ‘틀’이 아닌 그 ‘빈 공간’에 서있다. 유(有)의 물건이 이롭게 쓰이는 까닭이 공허한 무(無)가 있기 때문이라는 ‘노자’의 말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이다.

때때로 건축공간은 누군가를 위해 준비되어 있거나, 건물 스스로가 그 곳을 설명하고 하는 것처럼 특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술탄 아미르 함멈’의 입구도 장방형의 구조와 팔각형의 도면을 반으로 자른 모양의 도면이 함멈 입구를 만들고, 도로와 경계를 이루는 부분에 계단이 설치되면서,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장소’을 제공한다. 그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벽감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걸터앉아, 동네 이웃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게 이 곳은 단순한 계단과 빈 공터가 연결된 공간이 아니라, 장소의 구분, 그리고 정신의 분리를 뜻하기도 했다.



‘함멈’의 도면, 기능에 충실하다

과거엔 중간의 벽체를 두고 요일 또는 시간마다 사용자의 성별이 달랐던 큰 ‘함멈’과 작은 ‘함멈’으로 나뉘어졌던 ‘함멈에 술탄 아미르’는 중동의 함멈이 가지고 있는 기본 구조인 ‘사르비네’라고 하는 탈의실과 ‘가름허네’라고 하는 더운 공간이 존재하는 목욕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관을 지나 통로를 따라 내려가 처음에 만나는 탈의>은 기본 팔각형 도면을 가진 공간으로 8개의 기둥으로 공간이 구분된다. 이렇게 구분된 기둥 바깥공간은 한옥의 텃마루 기능처럼 사람들이 앉아 옷을 벋고, 대화하고, 음식을 먹고, 신발을 놓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벽 쪽에는 옷을 개어 넣을 수 있는 아치형 벽감까지 마련되어있다. 단순히 돔을 올리기에 수월해 보이는 이 8각형 도면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의 사용공간을 뽑아내는 도면의 형태로, 공공장소와 놀이가 존재하는 이슬람 건축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탈의실에서 옷을 벋고, 두 공간의 경계를 짓는 복도를 지나 들어서는 ‘가름허네_목욕탕’는 바닥은 따뜻하고, 공기는 건조한 ‘뜨거운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란어로, 목욕탕의 기능을 말해준다. 이곳은 중간의 4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중앙공간은 뜨거운 물, 양 옆 공간은 미지근한 물이 담긴 작은 호수가 있어 실질적으로 마사지를 하거나 때를 밀고 몸을 씻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또한 뜸을 뜨거나, 면도를 하는 작은 방들과 화장실도 ‘갸름허네’와 좁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함멈’, 온도 유지를 위한 모든 기술

목욕탕이라는 곳은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와 사용될 물을 끌어와야 하는 환경, 그 사용된 물에 대한 처리까지 신경 써야 하는 곳이다. 물을 끌어와,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주변이 농지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온도를 올리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하루에 사용할 수 있었던 연료를 고려한다면, 건축가들은 ‘함멈’의 기술력을 제외하고, 기존 건축의 틀을 깨는 시도를 통해 ‘온도 유지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덥고, 건조하게 ‘함멈’의 핵심 기술 ‘고르베로’ 

중동의 목욕탕 ‘함멈’은 한국의 목욕탕과는 많이 달라서 탕이 있어 몸을 담구고, 때를 불리는 개념이 아니라, 습기가 없는 건식 사우나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기능에 부합하도록 설계된 좁은 터널을 말하는 ‘고르베로’는 바닥 전체에 깔려있는 관과 같은 구조로 크기를 제외하고는 한옥의 온돌시스템과 상당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닥아래 목욕탕 전반을 깔려있는 이 특별한 기술력은 아랍식 건식 사우나를 유지하기 위해 습기(수증기)가 생기는 것을 막고, 목욕탕을 덥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물 전체로 볼 때 목욕탕의 뒤쪽에 위치한 방은, 화덕에서 불을 피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연료로는 사막의 마른 넝쿨, 짐승의 가죽 등을 태워, 그 ‘불길’은 물을 데우는데 사용되고, 연료가 타면서 만들어진 ‘연기’는 바닥아래에 ‘고르베로’를 지나 목욕탕 바닥을 데우고 지붕의 굴뚝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있다. 이 똑똑한 ‘이란 목욕탕’은 한번의 연료사용으로 두 개의 기능을 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이란 역사 기록에서 ‘목욕’이란, 몸을 씻는 과정뿐만 아니라 영혼을 맑게 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던 것은 그들의 풍습과 종교에 연관이 있다. 이슬람 이전의 태양을 숭배했던 시대와 불을 숭배했던 ‘조로아스터교’의 기록에서 목욕은 예식을 올리기 위한 몸을 깨끗이 해야 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슬람이 들어서면서 코란에 적혀있는 세정식 역시 기도를 준비하는 무슬림들에겐 기도의 시작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종교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사막의 모래바람을 지나, 지친 몸을 이끌고 도시로 들어선 상인들에게 <함멈>은 천국과 비할 수 없는 또 다른 휴식처를 제공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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