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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도시의 또 하나의 기둥, 바자르

김형기 | 테헤란 | 2013-01-17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1$정도하는 트램을 타고 역을 지나다 보면 들리는 “이번 역은 ‘그랜드 바자르’입니다”라는 너무나 중동적인(?) 안내방송. 이 방송을 들으며 낙타를 타고 성지순례 길에 올라 자신의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상품을 운반하고, 시장을 열었던 무슬림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이제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글 | 김형기 테헤란 통신원


페르시아어로 ‘시장’이라는 뜻의 ‘바자르’는 도시의 심장의 역할을 하는 점메 모스크(Friday Mosque)와 함께 이슬람 세계를 형성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로 성장해왔다. 이렇게 ‘바자르’는 사람들이 모여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의 개념뿐 만이 아니라, 도시에서 도시를 이동하는 실크로드의 대상들을 맞이하는 관문이었으며, 그들이 머물 곳이 존재하고, 모래 언덕을 넘어온 이슬람 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하나의 소통로이기도 한 곳이었다. 또한 함멈(목욕탕), 커르번사러(대상들의 숙소), 마드라세(Madrasa:종교학교)와 그들의 종교적 중심인 모스크를 연결하는 이슬람 도시 구조의 ‘네트워크’ 조직으로써 이슬람의 상업, 종교, 또는 교육적 이유들로 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지속되어왔다.


테헤란 바자르의 역사


지금은 테헤란의 역사는 ‘사파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정부와 멀리 떨어진 이 지역에 대한 우즈벡의 잦은 공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타흐머셉(1524~1576)’왕은 해결책으로 ‘테헤란’을 군 진영지로 선택하게 되면서 성곽을 세운 것이 기원이 되었다. 물론 테헤란의 주거 역사는 6000년~4000년을 넘나들지만 역사가들은 이 시대의 테헤란 거주자들이 지금 테헤란 지역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파비’가 멸망하고, ‘꺼저리’ 왕조의 ‘마흐무드 헌(1781~1831년)’이 성벽 안쪽을 수도로 결정하면서 인구 증가와 상업의 발전 등, 도시로써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발전한 것이 ‘테헤란 바자르’이다. 근•현대를 거치며 갑작스런 테헤란 인구의 증가로 인해 바자르는 확대되었고, 이로 인한 재시공에 자재와 공간 전반에 문제를 안고 있지만, ‘테헤란 바자르’는 역사를 넘어 지금을 사는 이란 사람들의 모습을 모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지금은 전철역으로 바로 연결되는 ‘테헤란 바자르’의 입구는 사브지 메이둔(사브지 광장) 통해 시작된다. 오래 전부터 광장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란의 도시구조 덕에 광장은 시장의 입구를 알리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 상품들이 집결하고 분류되는 장소의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바자르’의 동선의 축을 형성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바자르, 빛 그리고 공간


광장을 제외하면 시장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좁은 입구, 얼기설기 꼬여 도무지 규칙 따위가 존재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바자르’는 아이러니하게도 물건을 사러 온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상인의 동선, 그리고 이슬람 건축 모뉴먼트를 중심으로 파는 물건의 종류와 위치가 분류되어 공간과 역할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모스크와 마드라세(Madrasa:학교)로 들어서는 바자르 골목에는 종교와 관련된 물품과 문구류들을 팔고, 어느 골목에는 그릇만, 어느 공간에는 옷가지들을 파는 형식으로 시장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분류는 넓은 공간을 선택해서 찾아가는 구매자의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상품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공간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바자르의 기본 통로, 러스테


통행로 양쪽으로 가게가 줄지어 붙어있는 바자르의 기본 형태인 ‘러스테’는 작은 돔지붕이 연속으로 덮여 있는 이유만으로 중동건축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형태는 과거에 도시의 중심에서 도시 외곽의 도로로 연결되기도 해서 도시 외부로 빠져나가는 길을 제공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시 자체가 너무 확장된 덕에 바자르를 빠져 나와도 버스로 열 정거장을 넘지 못한다.


이란에서는, 이미 2000년전 슈슈(지역명_이란 남부)에서 ‘러스테’와 같은 구조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초기에는 갈대와 천을 사용해 지붕을 덮고, 나중에는 나무를 이용해 천장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견고성을 가진 벽돌이라는 자재와 수학을 더해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자르의 구조 안에 ‘사막 기후’라는 커다란 건축적 과제를 해결한다. 아치로 올려진 돔 중앙의 누르기르(조명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빛을 빨아드린다는 의미로 원형 개구부 형태)를 통해 ‘벽돌의 본분’을 다하는 순간이다. 벽돌도 그러지 않았던가 ‘아치’가 되고 싶다고…




중정을 담은 작은 바자르, 팀체

이란 바자르의 또다른 시장 구조인 ‘팀체’는 가게와 창고가 함께 존재하는 벽체가 정방형 형태로 둘러 쌓여, 중정 전체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2층 형태의 건축구조로 2층은 발코니가 둘러쳐진 커다란 보이드(void)의 구조를 하고 있는 바자르 공간이다. 단 한 종류의 물건만을 판매하며, 창고가 작은 공간에 존재하는 이 공간은 대부분이 열린 돔 형태의 높은 천장 구조를 하고 있어 들어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건물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천장의 구조는 기둥을 제외하고 넓은 공간을 씌우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으며, 벽돌의 조적 구조를 통해 하중을 견디도록 되어있는 것이 우선이지만, 이슬람 건축답게 타일장식 기법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창고의 역할을 함께하는, 사러

한국의 쌈지길을 처음 봤을 때 떠올린 곳이기도 한 이 건축의 형태는(물론 쌈지길 만큼의 건물 높이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앙 안뜰로 구성된 건물로 호즈레흐(hojreh)라는 방 형태로 둘러싸여 있다. 상품의 교환 및 저장에 사용하는데 팀체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는 이 건물은 물건을 쌓을 수 있는 중앙의 넓은 공간과. 수레로 물건을 이동할 수 있는 정도의 넓이를 가진 출입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곳의 짐들은 추후에 다른 곳으로 보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보관의 역할 때문인지 입구에 문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방향을 제시하는 바자르 속에 작은 광장, 차허르수

이란어로 ‘네 방향’이라는 의미의 이 공간은 기본적인 형태인 두 개의 ‘러스테’가 겹치는 교차 지점으로 ‘원형’ 또는 ‘팔각형’의 도면 형태가 기본이다. 지붕의 형태가 좀더 높게 지어져 있으며, 도로로 치면 교차로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공간과 상품이 바뀌는 것을 알려준다. 작은 돔이나 열린 돔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무까르나스(종류석 모양의 석고장식으로 <알함브라 궁전>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나, 이슬람건축 양식 중 하나이다.)로 장식되기도 하는 이 공간은, 과거엔 넓은 공간을 이용하여 바자르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과 작은 경찰서가 존재했다고 한다.



바자르, 기능을 위해 건물의 기준을 바꾸다

건축 수업에서 배우는 ‘스탠다드’라는 것은 계단의 높이, 천장의 높이. 의자의 크기 뭐 이런 것들이라 언제나 건물에 ‘제대로’ 적용되며, 아니면 “어 여긴 왜 이러지?”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그 기준’이다. 내가 알고 있는 봐왔던 것과는 다른 것, 놀랍도록 좁은 길과 기능성 구조물들, 내가 알고 있는 기본 도면과 다른 것이 이 곳 ‘바자르’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중동의 ‘바자르’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부분의 이슬람 모뉴먼트의 집결지이며, 기능적인 면에서나 건축, 예술적인 면에서는 이슬람 건축의 모든 요소를 보여주는 작은 결합체 같은 곳이다.
 

만약 누군가 여행객이라면, 그리고 다시는 중동으로 돌아올 기회가 없다면, 시간은 적고, 이슬람 건축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다면 ‘바자르’로 가야 할 것이다. 그 시장의 골목을 끼고 당신이 원하는 모든 이슬람 건축이 때로는 코란 소리와 섞여, 중동 사람들과 함께 그 곳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 ‘이란어’로 적은 것은 한국으로 적절한 단어가 없는 관계로 단순히 공간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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