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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교량건축의 정점, 폴에 허주

김형기 | 테헤란 | 2012-12-20



이란은 이슬람 건축이 꽃을 피운 세 곳 중에 한 곳으로 그들의 건축철학, 기술과 그 요소가 가깝게는 이라크와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멀게는 우즈벡의 사마르깐트, 인도의 타지마할에서 에스파니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우리가 자주 들어본 단어인 '바자르(시장)', '커르번사러(실크로드 상인들이 묵던 숙소)' '함멈(목욕탕)' 등의 이란어가 이미 영어에서 건축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시대가 흘러 의미가 변한 ‘키오스크’나 ‘파라다이스’도 페르시아어가 어원이다.
다리 하나를 설명하는데 이런 많은 단어와 공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은 다른 면에서 볼 때 이란 건축이 영향을 미친 모든 건축 모뉴먼트에 공통적으로 분수나 호수의 형태, 즉 ‘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챈다면, 중동이라는 지역적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교량건축인 ‘폴에 허주(허주 다리)’에 왜 ‘이슬람 건축’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김형기 테헤란 통신원



역사? 공간을 만드는 것도 왕의 능력

16세기 초 타브리즈(이란북서)에서 시작된 ‘사파비 왕조’는 까즈윈(테헤란 부근)으로 수도를 옮긴 후, 1597년에 5번째 왕인 샤 압바스가 ‘에스파한’으로 또 한번 수도를 옮겨 자신만이 영역을 확립해 나간다. 또한 예술적인 면에서 이란예술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낸 사파비 왕조는 종교적 건축을 교육적인 목적과 결합시키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장해 나아갔음은 물론, 권력층만이 누려왔던 일부의 공간을 백성들과 공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왕의 배려 때문인지, 이란인들의 예술적 역량 때문인지 몰라도, 1650년을 즈음, 셔 압바스 2세는 자신의 치하에 이슬람건축 역사가들이 꼽은 ‘최고의 이슬람 교량 건축’을 그들의 수도, 에스파한에 탄생시킨다.



기능적인 면과 미학적인 요소가 결합한 다리

‘폴에 허주’는 실제 2층으로 구성된 다리 외관과 관망하기 좋은 중앙 건물의 옥상을 포함해서 3층, 물이 흐르는 강바닥까지 따진다면 4개의 층으로 나뉜다. 여기서 강물이 흐르는 바닥까지 포함하는 것은 물을 보관하는 댐의 기능을 하는 위치에서 강의 흐르는 바닥까지 연결된 구조전체를 설명하는 것으로 강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계단 모양과, 경사진 강바닥을 포함하는데, 이것을 층에 포함시킨 것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강을 건너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교량 제 1가도 부분에는 왕이 행차했던 중앙건물(쿠시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다리는 이 곳 쿠시크(쿠시크_이란 건축에서 단독으로 서있는 건물이란 의미로 사용되며, 유럽으로 전해져 키오스크(Kiosk)라는 단어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이란어)를 중심으로 대칭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왕과 고관들의 소풍장소로 쓰여진 이 건물 내부의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아래층으로 연결된 계단도 정확히 대칭으로 되어있다. 외관과 도면이 모두가 정대칭 형태를 띠는 것은 이슬람 건축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또한 건물안에 동선과 강을 바라볼 때의 완전히 다른 전망을 가진 쿠시크의 옥상을 고려한다면, 셔 압바스 2세가 공간 전체를 향유하기 위해 건축가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요구했는지 추측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물이 줄었을 경우, 가교로 쓰이곤 한 다리의 아래층은 강의 수량과 유속을 조절하는 실질적인 댐의 기능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흔적들은 계단, 경사진 강의 바닥, 수문 등 다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강'이 만들어내는 '소리', 이슬람 건축의 분수의 역할을 대신하다

이란의 역사와 환경이 만들어낸 이란 이슬람건축, ‘폴의 허주’는 사파비 시대의 건축적 특징과 이란정원이 가지고 있는 물의 역할을 최대로 활용한 건축물이다. 중동의 건조한 날씨 덕에 공간의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물’의 기본 기능적인 면일 뿐, 이슬람에서 ‘물’의 의미는 색깔, 소리, 철학적 의미를 상징하는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며, ‘멈춤’과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중동건축의 주거와 정원에서의 분수, 폭포, 작은 연못으로 쓰여졌던 ‘물’의 모습이 다소 인공적이라면, ‘폴에 허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분수’ 따위는 버리고, 강수량에 따라 수(水)량이 조절되는 강이라는 자연요소에서 다리 자신의 구조를 통해 ‘이슬람 건축의 물의 역할’을 끌어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나무를 키우고 동물과 인간에게 식수원이 되는 강, 신이 살고 있는 하늘을 비추는 강, 강의 유속이 변하는 소리와 리듬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 멀게도, 가깝게도 느껴진다.




건너기 위한 다리에서 ‘놀이를 위한 다리’로 재탄생하다

‘르꼬르뷔제’의 말처럼 ‘집이 생활을 위한 기계’라면 ‘다리’의 기능은 건너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폴에 허주’는 지금은 사람만 통행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지만,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리의 특성을 우선으로 생각해보면 양쪽의 보도와 마차로(교통)로 구분되어 마차와 사람이 왕복하기엔 충분한 넓이를 가지고 있다.  105m의 길이의 본 다리에선 이슬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23개의 포인티드 아치가 줄을 이룬다. 통행을 위한 다리 중앙을 제외하곤 아치는 다리를 건너는 이를 위해 강의 모습을 차경으로 끌어오기에 충분하다. 느림과 멈춤을 반복, 다리를 건너는 사람의 걸음, 통행로의 다리에서 시간은 멈춘다.


계절의 강수량에 따라 변하는 수면 높이로 다리아래 넓이와 공간은 살아 있는 매개체만큼이나 유동적이다. 기능적인 면을 고려해 만들어진 구조가 놀이 공간으로 모습을 바꾸는 순간이다. 햇살에 찰랑이는 강물에 접한 경사면을 뛰어다니는 사람들부터, 물가에서 물장난 치는 아이까지, 현대를 사는 에스파한 시민들도 예전 사파비 시대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진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중앙 쿠시크에서 왕은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즐거워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휴일 아침에 모여 노래를 하는 할아버지들과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가족을 손을 잡고 다리로 소풍 나온 아이들, 이렇게 ‘폴에 허주’는 단순한 다리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간과 미학적인 면에서 350년의 역사를 넘어 에스파한 사람들의 일상이 녹아 들어, 없어서는 안될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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