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흰│브리즈번 | 2012-12-13
다른 나라와는 달리 택시보다는 버스, 도로보다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더 잘되어 있는 곳. 신호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교통신호제어기는 브리즈번의 공공디자인의 관점을 이야기해준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공공 디자인이란 공공장소의 여러 장비•장치를 보다 합리적으로 꾸미는 일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호주의 공공 디자인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초가구•초고층•부지 내의 공공공지, 간판 정비와 같은 도시미관을 정돈하는 사업과는 다소 다른 맥락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 열린 2012 공공디자인 국제심포지엄에서는 “공공디자인에서 ‘문화디자인’으로.”라는 슬로건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는 한국 공공 디자인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호주의 공공 디자인은 멋있는 건물을 짓거나 도시를 꾸미는 것에 국한된 한계를 넘어서 호주의 문화와 공동체적 관점에서 공공 문화 디자인의 관점을 확고히 보여주고 있다. 브리즈번의 인도교, 인공 해변, 조형물, 건축물, 교통신호 제어기 등은 시민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통해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글, 사진│김한흰 브리즈번 통신원(1white707@gmail.com)
서울의 한강 역할을 하는 브리즈번 강의 경우, 여러 개의 교량을 통해 교통을 원활히 한다. 한국에는 대교가 많지만, 브리즈번의 경우에는 대다수의 교량들이 오직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인도교이다. 이는 대다수의 사람이 걸어서 출 퇴근 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자전거 사용 시 헬멧 착용 규제 및 교통안전 법규가 엄격하고 세분화되어 있는 호주인 만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인도교를 따로 만들거나, 대교를 건설할 때에도 인도를 비교적 넓게 디자인했다.
최근에 건설된 인도교들은 매끈하고 세련된 외관과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을 바닥의 사인을 통해 원활한 보행자들의 통행을 장려한다. 이중 인도교의 햇빛 가림막과 전망대는 브리즈번의 생활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일 년 내내 햇볕이 강렬하며, 정부에서도 피부암 발병에 대한 우려는 표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인도교 건설에서 햇빛 가림막의 설치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이 이외에도 노약자와 관광객을 배려한 구간 별 전망대들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과 관광도시로서의 위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쳐진 햇빛 가림막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보행자들이 햇빛을 피하다 보면 종종 보행 체계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을 위한 인공해변에서도 호주만의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브리즈번 시민들에게는 수영과 서핑 그리고 해변에서 보내는 시간은 삶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골드 코스트(Gold Coast)와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 등 유명 해변을 자랑하는 도시인만큼 시민들은 주말이면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해변에서 보낸다. 하지만 바쁜 직장 생활과 학교생활 중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인공해변은 브리즈번의 대표 공공 문화 디자인이다.
도심 속의 오아시스라는 별칭이 있는 사우스뱅크(South Bank)에 위치한 이곳은 수많은 빌딩과 브리즈번 강을 배경으로, 해변의 느낌을 그대로 연출했다. 무료로 이용하는 야자수 아래에서나 고운 모래 위에서 시민들은 망설임 없이 사계절 내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시민의 안전을 위한 안전요원과 샤워장, 바베큐 시설 등의 부대시설들이 함께 제공됨으로써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한층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로 유명한 브리즈번과 같은 주에 위치한 케언즈(Cairns)는 해수를 끌어다 만든 대규모 인공해변을 가지고 있다. 배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갯벌과 유사한 바다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그 갯벌을 배경으로 인공해변을 만듦으로써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물놀이 기회를 제공한다.
브리즈번은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시내의 크기가 한국의 작은 동네만 하다. 하지만 골목,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조형물들은 상업 지구이자 시티 투어의 중심지인 시내를 더욱 예술적으로 만들고 있다. 카지노 앞에 놓여 있는 구형의 조형물들은 유흥가인 카지노와 시립 도서관의 사이에 광장에 위치하면서 미적 요소를 더하고 있다. 낮에는 깔끔한 은색 빛으로 시립 도서관과 어울리며, 밤에는 카지노 외관에 비치는 형형색색의 색을 반사시킴으로써 카지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때문에 이 조형물은 관광객의 사진 속에 하나쯤은 들어 있을 법한 브리즈번의 대표 조형물이다.
출퇴근 시간마다 붐비는 시내의 한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캥거루 조형물 또한 이목을 끈다. 상업 중심 지구인 만큼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출, 퇴근길에 재미를 더하기도 하고, 관광객에겐 호주의 대표적 동물인 캥거루를 개성 있게 보여줌으로써 더욱 가치 있는 조형물이다. 캥거루들은 보통 모피나 청동을 이용하여 표현되거나 브라운 계열의 캐릭터로 만나 볼 수 있지만, 볼트와 너트 그리고 체인 등을 이용해 좀 더 현대적이고 기계적으로 묘사된 캥거루 들은 색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브리즈번 도시 곳곳에 위치한 벤치들은 획일화되고 전형적이라 아쉬운 반면, 적어도 이 거리에서만큼은 캥거루를 벤치 위에 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리의 조형물 외에도 호주 시내의 쇼핑센터의 건축물들은 신, 구의 조화를 확실히 보여준다. 상점들은 그늘막을 중심으로 아래는 현대건축, 위로는 오래된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햇빛과 비를 막아 편리한 쇼핑을 돕는 가림막들은 현대적이고 정형화된 패턴으로 미적 요소를 가미한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 보이는 가림막 윗편의 중세 유럽풍의 건물 양식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호주는 선진국이긴 하지만 소박한 패션,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유럽이나 미국이 가진 화려하고 현대적인 요소들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브리즈번의 시티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빛바랜 벽돌 건축물들은 호주만의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한껏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공공문화 디자인은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의 교통 신호 제어기들이다. 시민들의 꾸준한 참여로 탄생되고 있는 개성 있는 교통 신호 제어기들은 공공 문화 디자인에 있어서 공동체와 협동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던 무채색의 지루한 교통신호 제어기들이 시민들의 협동으로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호주에서는 무채색의 교통신호 제어기를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공공시설물에 그래피티(Graffiti)가 규제된 호주이지만, 시민과 함께하는 교통신호 제어기 예술화 프로젝트는 시민의 참여와 뜻깊은 기회를 선사한다. 거대한 면적으로 이동 거리가 다소 긴 편인 시민의 이동에도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는 개성 있는 교통신호 제어기들은 시민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낸 점에서 호주의 공공 문화디자인의 의의를 더욱 확고히 해준다.
브리즈번에서 만나 볼 수 있었던 공공문화 디자인들을 통해 브리즈번의 생활방식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의 공공 디자인도 공공 문화 디자인으로 가는 과도기에 놓여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 창의 도시인 서울은 하루가 남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 내는 공공문화디자인의 측면이 더욱 강화되어 사람들의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