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이 얼마나 방대한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필자 역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한 전공 수업 속에서 관심 있는 것과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내느라 정신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단지 학창시절 포스터컬러로 공공포스터를 그리고 불조심 표어를 만들어 활자 너비가 똑같은 돋움체로 색칠하던 경험이 전부인 사람들이 이 전시를 슬쩍 이라도 경험하게 된다면 아마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절로 벌어질 것이다.
은 일상생활의 모든 분야에 조용히 침투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래픽 디자인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글, 사진 ㅣ 김민지 LA 통신원(
tominji@gmail.com)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UCLA 부속 미술관인 Hammer Museum(해머 뮤지엄)에서는 올해 9월 30일부터 내년 2013년 1월 6일까지
전시회가 열린다. 미니애폴리스의 Walker Art Center(워커 아트센터)와 뉴욕의 Cooper-Hewitt(쿠퍼 휴잇), National Design Museum (내셔널 디자인 뮤지엄)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는 지난 10년여간 그래픽 디자인 분야가 특수화된 직업군에서 벗어나 얼마나 많은 산업 분야에 극적으로 범위를 넓혀왔는지를 보여주는 큰 국제 전시이다. 출판 및 유통 시스템의 혁신을 비롯한 사용자 중심의 콘텐츠 및 새로운 창조적인 소프트웨어의 증가, 네트워크 통신망의 혁명적인 발전 등은 현대 사회에서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성장시키고 디자인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 때문에 디자인 분야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까지 시각 미디어를 창조하고 공급하기 위한 디자인 프로세스와 기술력에 총동원되게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디자이너들은 작가로서, 출판자로서 혹은 선동가나 기업가로서 콘텐츠를 만들고 경험을 형태화시키는 “생산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단지 스타일을 스케치하는 작가로서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고 미디어와 소프트웨어를 찾아내서 보급하는 프로듀서로의 디자이너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작업과 그 과정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전시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를 총 7개의 주제로 구분하고 있다.
1. TYPOGRAPHY (타이포그래피)
1980년대 개인 컴퓨터의 발달은 서체 형태디자인이나 배열 등의 타이포그래피를 소개하고 일반에게 공급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활자체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1990년대 활자체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가 그래픽 디자이너들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쉽게 연습하여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타이포그래피의 분야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오늘날 디자이너들이 사용하고 만들어낸 디지털 활자체는 수십만 가지에 이른다. 전시에서는 순수 서체 디자인뿐 아니라 포스터, 잡지, 브랜딩, 패키징, 책, 그리고 다른 미디어와 연관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폭넓은 예시를 제시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극적인 효과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툴의 발달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2. BRANDING (브랜딩)
브랜드는 혼잡한 시장 속에서 제품을 명확하게 구분해내는 데에 도움을 준다. 비록 브랜딩이 기업이나 조직 등에 주로 사용되긴 하지만, 비밀 군사 모임부터 헤비메탈 밴드까지 사회 속속들이 브랜딩이 발생 하는 것이 사실이다.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를 넘어서 시각적, 언어적 본질을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혁신적인 브랜딩 프로그램은 지난 수년간 고정된 심볼에서 유연하고 다양한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 그동안 디자이너들은 과거의 로고들을 정리하는 일들을 진행해왔고, 그것들을 다시 브랜드에 녹여 최근 기업들의 변신(makeover)에 이바지했다. 블로그 등의 소셜 미디어들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회사나 조직이 고객 개개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 니즈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3. INFORMATION DESIGN (정보디자인)
정보디자인은 복잡한 상황이나 프로세스,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 지도나 안내서, 도표나 다이어그램 등의 재료를 생산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데이터 소스들을 제공했으며 최근의 소프트웨어 툴들은 그것을 정리하고 시각화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전시 공간의 디자인 작업들은 탐사보도, 통계분석, 컴퓨터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어플리케이션 등과 일러스트레이션이나 타이포그래피의 전통적인 기술들을 유기적으로 접목하는 것에 규칙을 두고 진행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정보디자이너들은 스토리텔러, 저널리스트, 번역가 등의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4. BOOKS (책)
책 디자이너들은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콘텐츠의 배열을 이용하여 작업한 것으로 독자를 설득해야 한다. 많은 책 디자이너들은 그 스스로 인쇄 매체들을 풍부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독특한 종이나 새롭거나 혹은 오래된 인쇄기술, 새로운 바인딩 기술 등이 그 예이다. 디자이너들은 또한 새로운 책의 커버 디자인을 통해 작가와 출판자의 브랜드를 세련되게 만들어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 이해하기 쉽게 디자인하려고 노력한다. 페이지-레이아웃 소프트웨어, 저가 인쇄기법, 온라인 유통 서비스 등의 발달은 작가나 출판자, 디자이너 모두에게 위험부담이 적고 싼 가격에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작가 스스로 시각적인 포맷을 만들고 자체 출판까지 할 수 있게 되고, 디자이너들은 그들 자신만의 콘텐츠로 작가, 편집자, 출판자의 역할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작가, 출판자, 디자이너라는 전통적인 구분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5. POSTERS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상징적인 형태를 띠는 포스터는 19세기 광고 문화에 그 기반을 두고 발전해왔다. 포스터는 오늘날 가장 강렬한 매체로 남아있으며 종종 미학적 도발이나 사회 비평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현대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시작한 프로젝트를 정의하기 위한 한 장르로써 포스터를 만들며 새롭거나 오래된 기술들을 이용하고 새로운 디바이스를 창조해내며 실크스크린이나 활자인쇄 등의 전통 인쇄 기법을 부활시키기도 한다. 이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포스터 작업들은 제품이나 행사를 홍보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현대 포스터는 수공예적인 방식과 컴퓨터를 자유롭게 섞어 작업하는 혼합 생산이 주를 이루며, 온라인 서비스나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종이와 스크린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작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6. MAGAZINE (잡지)
잡지는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포맷, 시각 디자인 등 편집 콘텐츠가 너무도 광범위하여 디자이너들을 어렵게 하는 분야이다. 출판업체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오고 있는 잡지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비록 재질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잡지가 어떤 개념으로 만들어졌는지 의문이 가는 잡지들도 많이 있지만, 패션, 비즈니스, 셀러브리티 등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많은 독립 잡지들이 재창간되고 있다. 내용은 인쇄물에서 컴퓨터로, 혹은 그 반대로 이동하며, 출판자나 디자이너들은 인터렉티브 어플리케이션에서부터 포스터, 책, 블로그를 아우르는 새로운 포맷, 독특한 방식을 개발해내는 데 힘쓰고 있다.
7. FILM and TV TITLES (영화, 텔레비젼 타이틀)
영화, 텔레비전 타이틀은 특정 프로그램을 정의하고 그들의 큰 프로덕션과 연계하여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한다. 모션 그래픽 분야는 그래픽 디자인의 혁명을 이끌었으며, 더 싸고 빠르고 정교한 소프트웨어의 등장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작업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영화, 텔레비전 타이틀 디자인은 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포토그래퍼, 시네마토그래퍼, 그래픽 디자이너가 하나의 독창적인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해야 하는 분야이며, 전시에서 소개된(위의 비디오 속 작품들) 타이틀은 오늘날 타이틀 디자인의 성장을 이끌어온 작품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서는 이렇게 지난 10여 년간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발달해 온 사건들과 작업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의 변화와 더불어 현재 문화를 생성하고 다져온 그래픽 디자인의 현상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자 한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한 이 전시는 앞으로 2014년까지 미국 주요지역을 돌며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 투어 일정
•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October 22, 2011–January 22, 2012
• Cooper-Hewitt, National Design Museum, Governors Island, New York
May 26–September 3, 2012
• Hammer Museum, Los Angeles
September 30, 2012–January 6, 2013
• Contemporary Arts Museum Houston, Texas
July 20–September 29, 2013
• Southeastern Center for Contemporary Art (SECCA), Winston-Salem, North Carolina
October 18, 2013–February 23, 2014
•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 Providence
March 28–August 10, 2014
공식 웹사이트 http://hammer.ucla.edu/exhibitions/detail/exhibition_id/218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