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온라인 상에서만 보던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작품을 눈뿐이 아닌 오감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이런 일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Milano Triennale Design Museum)에서는 올 4월 5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전시 '꿈의 공장(Le fabbriche dei sogni'이 열리고 있어 가보았다. 유명한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을 체험해 볼 수 있던 이곳에서 느꼈던 황홀함과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글, 사진 | 임보령 이탈리아 통신원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밀라노 중앙역에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 이 곳은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 뮤지엄으로, 1923년부터 3년마다 개최하고 있는 디자인/건축전 때문에 ‘트리엔날레’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가 도착한 날은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다채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던 전시장에서는 생기가 넘쳤다. 이런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간 '꿈의 공장' 전시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 있는 거장들의 작품과 재미있는 형태의 조명이 나를 반겨주어,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내가 마치 역사 속의 디자이너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작품들 중 전시장 입구에서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줬던 '아르코(ARCO)'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아르코는 1962년에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의 선구자라 불리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받침대와 지지대, 조명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부분은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 철학인 '형태에 따른 기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받침대는 내구성이 좋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받침대의 구멍은 무거운 대리석을 이동시키는데 유용하게 되어 있다. 스테인리스 아치는 길이를 조절할 수 있어 조명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며, 2개로 이루어진 반구 형태의 조명 덮개는 위로 퍼져나가는 빛의 방향을 조절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열을 공기 중으로 방출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실제로 본 아르코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기능에도 충실하여 왜 위대한 디자인으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르코 외에도 전시장에서는 카스틸리오니의 철학이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파렌테시(PARENTESI)'라는 조명 역시 이런 작품 중 하나다. 이 조명은 여러 개가 함께 배치되어 전시장의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며 인테리어 효과까지 내고 있었다. 파렌테시는 디자이너 피오 만추(PIO MANZU)와 공동으로 작업한 것으로, 지면에서 천장까지 수직으로 움직이며 360도 회전이 가능한 조명이다. 이 조명에서 집중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메탈 튜브다. 두 번의 커브를 주어 조여주는 기능 없이 형태만으로도 충분한 마찰력을 일으켜 원하는 위치에 조명이 고정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설명을 토대로 직접 튜브를 조절해 보았는데, 어떻게 이런 형태를 고안해 낼 수 있었는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파렌테시에서 느꼈던 감동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을 때, 선반 위의 놓여진 순백색의 접시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1973년 엔쪼 마리(Enzo Mari)가 제작한 '사모스(SAMOS)'라는 제품으로 언뜻 보기에는 보통 그릇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의식과 형식이 담겨 있다. 엔쪼 마리는 정해진 공정을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도 창의적인 활동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모두에게 똑같이 반죽된 원료를 나눠주고, 그들로 하여금 어떤 모양의 그릇이든 만들어보게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사모스인 것이다. 사모스에는 이렇게 사회적 계층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어 형태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우리에게 친근한 디자이너들의 작품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우선,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프로우스트(PROUST)'는 다양한 컬러의 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으로, 국내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패턴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시장의 프로우스트는 착석이 금지되어 있어 눈으로 느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는 카스틸리오니의 또 다른 작품, '메차드로(MEZZADRO)'가 전시되어 있었고 여기서는 직접 의자에 앉아보는 기쁨도 누렸다.

이 밖에도 사람모양의 와인 오프너로 유명한 알레시의 제품들, 지아니 루피(Gianni Ruffi)의 여러 가지 천을 엮어 만든 새 둥지모양의 '라 코바(La cova)'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는 1900년대 중반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은 뜻 깊은 자리였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50여년 전에 디자인 된 작품들이지만 현 시대에 적용되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형태의 모던함, 심플함과 기능을 함께 갖추도록 디자인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꿈의 공장’전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나에게는 책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고 있던 작품들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그들의 디자인 철학을 느낄 수 있었던 영광스런 순간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