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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변화를 위한 작은 시도, 일본의 화장실 픽토그램

문주영 | 2007-10-16




도시는 기호의 집합체. 굳이 각종 도로 표지판을 찾지 않더라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기호들을 접하게 된다. 전철노선을 색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문자 없이도 노약자석과 장애인석을 알 수 있다. 단순한 픽토그램이나 심벌마크뿐만이 아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전자제품 리모콘에서 자연스럽게 전원버튼을 찾을 있다. 이토록 넘쳐나는 기호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면서 가장 일반적인 것이 바로 화장실 기호일 것이다. 일본의 화장실 픽토그램 중 인상적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취재ㅣ 문주영 일본통신원


 


화장실 기호, 중요한 이유


 


화장실의 상징이 백화점이나 극장, 역이나 공항 등 대부분의 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홀히 다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화장실이라는 것이 배설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를 해결하는 곳인데 어쩌면 그 중요성 때문에 당연히 찾을 수 밖에 없는 곳이고 그래서 특별히 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보의 불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밖에 존재해 왔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화장실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가 아닌, 화장실 내부에 대한 안내를 그려 놓은 곳. 미나토미라이선 모토마치추카가이 역.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큰 변화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그것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획일적인 모습으로 존재해 왔기에 작은 변화에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역과 연결되는 퀸즈스퀘어의 화장실은 미나토미라이선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으로 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내·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역과 상업공간이 복합적으로 엮여있어 면적도 넓고, 구조도 복잡한 편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곳에서 화장실을 찾기가 어렵다면 어떻게 될까?


인포메이션센터의 직원은 하루 종일 화장실의 위치를 안내하느라 바쁠 것이며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곳곳에 화장실의 위치를 2, 3중으로 표시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곳은 구석이 아닌 중앙 에스컬레이터에서 아주 가까운 위치에, 양쪽 빌딩으로 이어지는 동선에서 가장 편리한 위치에 화장실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래서인지 다른 곳보다 더욱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는 곳이다.




퀸즈스퀘어의 화장실은 사용자의 동선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찾기 쉬운 위치에 오픈 되어 있으며 그만큼 디자인도 두드러진다.


남녀 화장실을 양쪽에 두고 가운데 어린이 전용 화장실을 따로 두었다. 그래서 기호에도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장애인용이 모두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기 힘든 어린이들을 배려한 동선과 화장실 내부의 디자인도 칭찬할 만하다.


사실 이곳의 화장실은 기호가 없더라도 타일과 전체적인 색채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화장실 문화가 발달 되지 못한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은 이곳의 화장실을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 가장 익숙한 형태의 픽토그램을 군더더기 없이 사용하고 있다.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어린이 화장실의 화려한 타일과 초록색의 원색적인 색감을 해치지 않아 조화롭다. 화장실이라거나 성별을 나타내는 텍스트가 없어도 너무 익숙한 형태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다소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 픽토그램의 경우 혼돈을 피하기 위해 일본어와 영어까지 텍스트로 표시해 두는 친절함을 보였다.


지금까지 구석에서 소외 받았던 화장실을 눈에 잘 띄는 중심으로 끌어내어 사용자와 관리자 모두가 편리해졌을 뿐만 아니라 작은 변화로 전체적인 장소의 이미지까지 업그레이드시킨 좋은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장소의 특징을 반영하여 아이덴티티를 살리자


 


디자인에 있어서의 아이덴티티, 즉 이미지 통합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큰 이미지에 집중하다 보면 섬세함이 요구되는 디테일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묘하게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배려한 작은 디자인에 더 감동을 느낀다. 섬세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일본의 예들을 살펴보자.


 


센소지 근처에 위치한 화장실이다.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센소지와 그 일대의 아사쿠사는 일본관광안내의 표지를 장식하는 곳으로 대표적인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곳이며 일본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을 심어주기에 좋은 곳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픽토그램이 아닌 일본의 전통의상으로 입구를 구분해 두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남녀 기모노를 모자이크 타일로 표현해 둔 것이 인상적이다. 밋밋한 화장실 입구를 좀더 다이나믹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큰 길가에 위치하고 있어 벽화로서의 기능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의 눈에 신선하게 비칠 것은 당연하다.


아사쿠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임을 고려하여 일본 전통의상을 모티브로 공중화장실을 디자인 해 두었다.


아사쿠사만큼 오래된 관광지로 하코네와 에노시마가 있다. 사진의 왼쪽이 하코네, 오른쪽이 에노시마의 공중화장실인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변소라는 단어가 이들의 역사를 말해준다. 세련된 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디자인이지만 관광지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단순히 촌스럽다는 느낌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왼쪽의 경우 지금은 그 주변에서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 흔적은 역력하다. 왼쪽보다는 좀 더 늦게 만들어진 에노시마 화장실의 경우 전통 등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에 텍스트대신 전통복장의 그림을 넣어 조금 더 정리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오래된 관광지로 낡은 느낌은 있지만 전통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물건 중의 하나인 노렌(천으로 된 발)으로 화장실 문을 대신하였다. 픽토그램이 아닌 노렌의 색으로 성별을 구분하고 텍스트는 영어가 아닌 한자로 대신하였다. 이곳은 60년대 일본의 모습을 옮겨 놓은 테마파크로 화장실도 그것에 맞추어 전통적인 느낌으로 옮기려고 한 듯 하다. 한자를 읽을 수 없는 외국인을 위해 오른쪽 귀퉁이에 픽토그램을 넣어 두어 혼동을 피한 흔적도 보이고 수유실까지 통일한 점도 인상적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노렌으로 화장실을 구분해 둔 것이 인상적이다.


같은 테마파크에 있는 다른 디자인도 살펴보자. 간판이나 옥외 시설물의 대부분을 페인팅에 의존했던 시대인 만큼 그때의 분위기를 살려 붓으로 칠한 듯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조금 더 재미를 더하기 위해 픽토그램의 형태도 발랄하게 변화를 주었는데 당시에 인기였던 채플린이나 말괄량이 삐삐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곳은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로 화장실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려고 애썼다.


이번에는 오다이바의 덱스도쿄비치에 위치한 소홍콩으로 이곳은 홍콩과 중국 거리의 모습으로 꾸민 작은 규모의 테마파크이다. 남녀를 구분해 놓은 그래픽과 측소(厠所)라는 한자가 중국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구름을 타고 있는 신선의 모습을 통하여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붉은 벽과 측소라는 한자에서 중국의 느낌이 더욱 강하게 전달 된다. 

그 외에도 월드컵 시즌, 일본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행사장에 있었던 축구공모양의 심벌이나 아사쿠사 유람선 승선장에서 볼 수 있었던 돛 모양의 심벌, 그리고 중세유럽풍의 테마쇼핑몰인 비너스포트의 인포메이션 등은 간단한 표현으로 장소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었던 예로 볼 수 있다.



월드컵 대표팀 응원을 위한 이벤트장에 있었던 화장실.




승선장 옆에 있었던 돛모양의 심벌과 비너스포트에 있었던 유럽식 와펜을 흉내 낸 인포메이션


익숙한 소재에서 벗어나기


 


이번에는 소재의 차이가 주는 변화를 살펴보자. 요코하마 산케이엔 공원에 있는 심벌로 일본어와 픽토그램을 나무에 새겨 둔 모습이다. 진짜 낡았는지 의도적으로 낡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적인 픽토그램을 사용하면서도 투박한 나무질감과 손느낌의 페인팅을 사용한 것이 정겹게 느껴진다.




투박한 느낌이 인상적인 산케이엔의 인포메이션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 더 감각적으로 표현된 예로 신주쿠 중앙공원에 있는 심벌을 보자. 그나마 일반적인 픽토그램의 형태를 나타내는 앞의 경우와는 달리 손으로 대충 그려 넣은 듯한 사람형상이 익살스럽다. 또한 반듯하지 않은 나무패널도 그 감각에 한몫을 하는 것 같다.


 


타이포를 보면 ‘Toilet’이나 手洗라는 일반적인 표기가 아닌 일본식 외래어표기인 토이레(トイレ)라고 표기 한 것도 독특하다. 아마도 손으로 쓰다 보니 가장 획수가 적고 간단한 단어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들기도 한다. 세련된 디자인도 아니고 표현도 서툴지만 주변의 풀들과 잘 조화를 이루어 칭찬해주고 싶은 디자인이다.




심볼은 물론이고 우드패널의 모양까지 계산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기호를 극대화 시키기


 


일반적으로 작게 표현되는 기호를 오히려 아주 크게 확대시켜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 있다. 요코하마에 있는 오삼바시 국제여객터미널은 넓은 면적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다. 터미널 자체의 디자인도 유명하지만 이곳의 화장실 심벌은 진짜 사람 크기만 하다.


그것도 나무 벽과 바닥에 직접 페인팅이 되어 있어 처음에는 장식을 위해 그려진 그래픽인줄 아는 사람도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무엇인가를 거치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인포메이션을 벽과 바닥에 직접 표시하여 둔 것이 이곳 디자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화장실 심볼을 극대화시켜 공간을 장식하는 하나의 그래픽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주쿠 역사에 있는 화장실은 바로 그 상징적인 색만으로 남녀를 구분해 놓고 있다. 천장에 달린 인포메이션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저 색으로만 구분된 벽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화장실을 나타내는 상징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두 색이 나란히 구분되어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화장실임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단지 색으로만 구분 지어 놓은 신주쿠의 화장실. 조명으로 활용한 예도 돋보인다.


이번호에서 화장실 심벌을 예로 든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다. 가장 자주, 가장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인포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길들여진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자인에 있어서 전체적인 아이덴티티의 통합이 중요한 줄 알면서도 여전히 일부만은 그 통합의 대상에 조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큰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도쿄미드타운의 전체적인 컨셉에 맞게 곡선 부분을 직선으로 표현하였고 전체적인


스페이스에 비해 심볼의 크기를 작게 만들어 정리된 느낌을 주고 있다.


여자와 남자를 구분 짓는 색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을 리가 없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예전에 비해서 공공디자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진부한 디자인을 답습하는 곳들이 더 많다. 단지 사회적인 통념에 따라 습관적으로 반복할 뿐이며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곳이라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크게 변할 수 있다. 공공시설을 대표하는 장소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인용된 것일 뿐, 비단 화장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큰 변화가 어렵다면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 보는 것부터 어떨까. 지금은 없어지고 없지만 요코하마에는 격렬한 동작의 근육뮤지컬을 선보였던 전용 공연장이 있었다. 그곳의 화장실을 보면 눈에 익은 픽토그램의 그와 그녀가 알통을 보이며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단순한 변화지만 근육뮤지컬 공연장다운 표현이 신선하여 기억에 남는 곳이다.




근육뮤지컬 전용 극장의 화장실. 우리 눈에 익숙한 그와 그녀가 근육을 자랑하며 장소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작은 변화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곳들이 생각보다 많다. 역사를 바꿀만한 대단한 발명도 대부분 일상 속의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듯, 디자인에 있어서의 발견과 변화도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면 한다. 그 사소한 시도가 획일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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