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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네덜란드 디자이너, 티옙(Tjep)을 만나다

김준수 | 2007-10-0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드룩디자인전에서 ‘Do Break!’라는 작품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작가 티옙(Tjep). 진정한 아름다움, 미(美)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준 전시였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예술적 언어를 구사하는데 머물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작품을 본 듯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취재ㅣ 김준수 네덜란드통신원 (info@joons.co.kr)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지만, 역사적 삶의 양식에 따른 해석 방식의 차이도 보여 주곤 한다. 16세기 오란예(Willem van Oranje)의 네덜란드 통일 이후로 칼뱅주의 프로테스탄트가 기본이 되었었다. 스페인령 이후 지리적•종교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네덜란드는 농업기반의 남쪽 가톨릭과 상공업 성향의 북쪽 프로테스탄트의 투쟁에 정면으로 노출되었었고 국토는 무참히 분할되었었다. 그 와중에도 상업의 성행, 여성과 피지배계급의 지위 상승 등 이미 ‘키치’의 등장을 예고했었다. 더불어 유명한 화가와 양식이 많이 꽃 피웠었는데,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죽기 직전에 보고 있던 성당의 루벤스 그림과 같은 플랑드르 양식 이라던지, 램브란트, 베르메르, 같은 대 화가를 낳으면서 일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소중히 여기는 소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티옙은 드룩디자인과 자신의 작업을 역사적 연장선상에 통시적으로 놓인 일상의 예찬이라고 본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적 태도 중 특이점으로 사람들이 설명하고 이해하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들었다. 물론 베르메르는 17세기에 이미 19세기 이후의 화가들처럼 그림을 위한 그림을 그렸었지만 당시 네덜란드 회화는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소소한 일상까지 이야기 하고 싶어했었다.




 
Jungle: 개인 스튜디오를 열기 전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티옙: 나는 델프트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었고 이후에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으로 옮겨 학사를 마쳤다. 그래서 공학적이고 분석적인 디자인과 예술적 디자인솔루션 모두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작품으로 필립스와 산학협동을 했었고 드룩디자인에 전시도 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이후에 암스테르담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필립스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었다.



Jungle: 석사(MA)과정을 더 밟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티옙: 디자인하는 법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가 됐었으나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만들고 성공시키는지에 대한 브랜드 전문가 과정을 배우고 싶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었지만 연구과제실행 겸 광고회사에서도 일한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Jungle: 필립스에서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디자인 매니저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수 없다는데 불만이 많았다. 더군다나 나는 좀더 개인화된 디자인을 하고 싶었으나 회사에서는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디자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고 비즈니스의 전반을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Jungle: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시작했을 것 같다.

확실히 학창시절부터 스튜디오를 꿈꾸며 바로 시작하는 상황보다는 많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확실한 클라이언트도 없었고 막연히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한다는 기쁨에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드룩디자인에서 전시했던 경력과 인맥이 생각보다 운 좋게 작용해서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티옙은 현재 1명의 매니저, 2명의 디자이너와 2명의 인턴과 함께 티옙스튜디오(http://www.tjep.com)를 꾸려가고 있다. 스튜디오는 몇 일전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의 전망 좋은 위치에서 자리를 새로 잡았다. 옮긴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찾아가 정리가 덜 된 관계로 내부를 자세히 보여줄 수 없었던 점이 여전히 아쉽다. 근대 디자인의 여러 현상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아 즐거웠고, 앞으로의 귀추가 기대되고 궁금하다.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보면 키치란 존재하지 않는데, 계급에 고급과 저급이 명백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다원주의의 문제점 중 하나를 키치로 꼽기도 하며, 하향적인 평준화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의 행복을 우선으로 라는 시각 보면, 칸트의 취미론에 나오는 취미판단(미적 평가)의 보편 타당성에 들어가는 동시대적 속성을 보여준다면 굳이 흔히들 말하는 ‘키치적이다!’ 라고 폄하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를 반증하듯 네덜란드에서는 옛 나무 및 금속공예장식에 쓰이던 ‘패턴’을 현대적으로 프린팅 하거나 재생산한 디자인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치 세계적으로 ‘레트로 열풍’ 해서 복고풍이 유행하는 것 과 비슷한 사회적 모습이다. 다만 차이점 이라면, 네덜란드의 ‘패턴’은 열풍이 아니라 크고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현상 중 하나라는 점 이다. 그래서 ‘패턴’은 네덜란드 현대 디자인의 한가지 양식으로 아이덴티티화 된 모습이다.






Jungle : 이곳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현수진 : Tjep이라는 곳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디자인 잡지에서부터였다. 잡지 광고 면에 나왔던 회사 광고는 회사 로고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였다. 일러스트 같기도 한 회사 로고가 여느 다른 회사와는 사뭇 다른 회사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작업은 Bling Bling medallion이다. 언뜻 봐서는 예쁜 십자가 목걸이려니 했는데, 자세히 보면 유명한 브랜드 로고들이 새겨져 있다. 이제는 새로운 종교처럼 되어버린 유명한 브랜드를 표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적절하게 잘 표현된 예가 아닐까 싶다.

Jungle :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현수진 : 내가 주로 했던 일은 Idea Proposal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선은 가능하건 가능하지 않건 간에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그려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몇 가지 아이디어로 간추리는 작업들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한 회사를 상대로 제출한 간추린 아이디어만 해도 무려 20개가 넘었다. 모두가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들이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생각나는 게 없지?”라고 한탄하곤 했는데, 아이디어도 가속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고, 정말로 값어치가 있는 것들을 그것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Jungle : 특별히 겪었던 경험은 무엇인가?
네덜란드에서 디자인은 프로세스가 자유로웠다.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프로세스라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모든 대중을 상대로 디자인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내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자신의 색(色)을 매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 먼저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상이 되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모두가 좋아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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