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영 통신원 | 2007-03-06
작년 이맘때쯤 오모테산도 힐즈의 오픈으로 세계의 관심을 샀던 일본 건축계가 일년 만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모리미술관이 있는 록봉기 힐즈의 오픈으로 순식간에 도시의 모습이 바뀌어 버린 록봉기에 또 하나의 미술관이 들어섰다. 1월 21일, 국립신미술관이 개관을 한 것이다.
하나의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건축물의 외관과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조금 뒤에 살펴보도록 하고 우선 그보다 앞서 미술관이 가지는 성격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취재ㅣ 문주영 통신원(mm00nn@naver.com)
국립신미술관은 독립행정법인 국립미술관의 다섯 번째 미술관이다. 그런데 왜 하필 여러 이름들을 두고 신미술관일까.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이 미술관에 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국립신미술관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본의 미술관들과는 컨셉부터 다르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일본에서 전봇대만큼 많은 것이 바로 미술관과 미용실인데 그렇다면 그 많은 미술관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이곳에는 소장품이 없다. 오로지 공모전과 기획전을 주축으로 하는 전람회 사업이 있을 뿐이며 그것이 이들의 핵심사업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이와 같은 형태의 미술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형태이기에 이곳 예술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는 일정양 이상의 소장작품이 없다면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굵직한 전시회가 이루어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 아니라 예술회관 정도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장작품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이 미술관에 몇 년 뒤에 있을 전시회까지 모두 예약되어 있다면 믿겠는가.
설계자인 쿠라카와키쇼는 소장작품이 없는 루브르미술관은 상상할 수 없지만 소장작품이 없는 도쿄의 미술관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루브르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실물보다 더 선명하고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영상시설이 도쿄의 미술관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작권과 데이터확보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관리와 보존에 필요한 돈과 인력을 생각해 본다면 바로 그러한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컨텐츠를 구축하는 것이 21세기의 미술관이라고 말이다.
다시 돌아와 전람회 사업 외에 이들이 가지는 핵심 사업으로 정보수집제공사업과 교육보급사업이 있다. 단적인 예로 일반인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하여 미술관의 도서관을 자유롭게 개방하고 있는데 닫힌 미술관이 아니라 열린 미술관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 미술관을 지은 건축가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미술관이 하나 생길 때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어떤 미술관인가하는 것이겠지만 역시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에게 관심이 되는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어떻게 생겼는가 일 것이다.
1996년 입안 이후 10년 만에 오픈을 했다. 미술관을 짓기 위한 문화청의 예산은 380억엔 이었으며 설계는 쿠로카와 키쇼(黑川 紀章)였다. 이 두 가지 이유 만으로도 지난 10년 동안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멋진 작품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설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쿠로카와 키쇼(黑川 紀章)에 대해서 짧게 살펴보자.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라도 자신과 관계가 없다면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그의 작품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내의 큰 상은 물론이고 1986년에 이미 프랑스건축 아카데미 골드상을 수상한 그는 미술관 전문 건축가로 불리기도 한다. 긴자의 중앙은행 캅셀타워 빌딩과 와카야마 현립 근대미술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프랑스 퍼시픽 타워, 카자흐스탄 신수도 마스터플랜 등 40여 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쳤거나 거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건축물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필자는 여기서 그의 프로필이나 업적을 어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던 공통적인 이념인 ‘공생’이 이번에도 잘 반영되었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부터 자세히 살펴볼 미술관 구석구석의 모습을 통하여 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건축가의 그러한 작업철학도 한번 발견해보기 바란다.
건축물은 총 부지면적이 약 30,000m2, 건평 약 48,000m2, 높이 33.3m로 일본 최대의 미술관이다. 물론 들인 돈과 시간을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규모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외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글래스커튼월이다. 일본뿐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재료이지만 이곳 만의 특징이라면 출렁이는 파도처럼 물결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좌우로만 물결이 치는 것이 아니라 상하로도 볼록하게 곡선을 그려 매우 다이나믹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실물을 보면 이름에 맞게 정말 유리커튼을 드리운 듯한 느낌이 난다. 가로로 퍼진 형태는 같지만 오모테산도 힐즈의 그것처럼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 물결치는 곡선이 유리와 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을 중화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글래스커튼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외부의 자연광을 그대로 실내까지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경우 우려가 되는 자외선과 일사열은 100% 차단이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사정상 면진장치에 의한 안전대책과 지하자연환기에 의한 에너지 절약 대책, 빗물의 재이용 등 에너지 면에서도 최대한 자연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 하였다고 한다.
다시 글래스커튼월로 돌아와서 이 유리는 하이테크 공법으로 유리 자체에서도 빛이 난다. 그래서 낮에 햇빛을 받을 때면 외관의 유리는 달리 전기를 쓰지 않더라도 눈부시도록 빛이 나며 실내까지 그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어 태양조명을 100%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밤이 되면 실내의 빛이 글래스를 통해 밖으로 퍼져 나와 아름다운 야경을 자아낸다. 낮에 받은 햇빛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는 냥 건축물 자체가 어두운 도시를 밝혀주는 거대한 조명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살펴보자.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 미술관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금방 알아 맞힐 수 있는 단서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혹시 오모테산도의 일본간호협회 빌딩을 기억하는가? 버버리 매장이 입점해 있는 바로 그 빌딩의 입구를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이 건축물의 설계자와 동일한 건축가라는 것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바깥 정면에서 보면 마치 고깔콘에 접시가 끼여 있는 듯 하고 밤이 되면 비행접시가 날아와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안으로 들어가 입구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붉은색의 링이 보인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저곳에서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고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뭔가 새로운 기운을 받을 것만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든다면.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콘 모양의 콘크리트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추모양의 입구를 지나니 이번에는 역원추모양의 빌딩이 나타난 것이다. 넓은 미술관 내부에 우뚝하게 솟아 있는 두 개의 콘크리트 빌딩은 솟아 있다기 보다 미술관 바닥에 박혀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주 꽉 박혀있어 역원추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안하지 않은 느낌으로 말이다.
사실 요코하마 야마시타 공원에 있던 역원추의 콘크리트 빌딩을 본 사람이라면 이 두 개의 콘크리트 빌딩이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롭다는 것이 반드시 눈에 익숙한 형태인가 아닌가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마치 빌딩 속에 또 다른 빌딩이 들어 있는 기분이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가로형태의 빌딩 속에 이처럼 수직으로 힘을 내며 뻗어 있는 콘크리트 빌딩이 나타날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제대로 반전인 셈이다.
두 개의 콘크리트 빌딩은 서로 높이가 다르다. 일층부터 삼층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는 내부에 하나는 일층에서 이층까지, 또 하나는 일층에서 삼층까지의 높이로 되어 있다. 각각의 위쪽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으며 아래쪽에는 화장실이 들어서 있다. 물론 각 층마다 양쪽 끝에 화장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가장 짧은 동선으로 가장 찾기 쉬운 곳에 가장 중요한 것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카페를 살펴보면 우선 두 곳의 카페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높이에서 오는 차이랄까. 역시 조금이라도 높은 곳이 더 좋다. 이층에 자리잡은 카페(Salon de The Rond)가 노천카페의 느낌이 난다면 3층의 그곳(Brasserie Paul Bocuse Le Musee)은 호텔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다.
두 층 모두 위쪽에 달린 조명으로 천장에 링을 그리고 있는데 조명의 역할도 있겠지만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좀 더 극대화 시켜주기도 하여 효과적이다.
낮에 이 곳에 앉아 있으면 따뜻한 햇살은 물론이고 멀리 아오야마 공원과 인근의 녹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달리 자체 조경을 거하게 꾸미지 않아도 주변 경관을 그대로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카페 자체가 독특하지는 않지만 그 위치 때문에 순식간에 독특한 곳이 되어 버렸다. 자칫 전시장보다 더 돋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건축가의 재량이나 이곳이 미술관이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좀 더 특별한 컨셉의 카페가 들어 설 수는 없었을까. 위치가 주는 장점을 뺀다면 카페 자체로서의 색깔이나 매력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치가 주는 다이나믹함과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점이 크게 작용해서인지 아직까지는 인기가 대단하다.
자, 드디어 전시실을 살펴볼 차례다. 전시실은 모두 열 두 개로 1,000m2의 전시실이 열 개, 2,000 m2의 기획전시실이 두 개이다. 새로 지은 곳인 만큼 밝고 깨끗함은 당연하며 환기시설이 잘 되어 있어 쾌적한 느낌이었다.
바닥과 벽은 일본 건축양식에서 보이는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 그대로이다. 다행히도 나무 바닥과 빛이 나오는 벽 때문에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도 있었다. 또한 수직으로 곧게 뻗어 있는 벽은 자칫 심심할 것 같은 공간을 조금 덜 심심하게 해주었으며 넓은 공간을 더 넓게 보이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쿄포럼이나 모리미술관의 벽들이 주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별 감흥이 없었다면 너무 솔직한 평일까.
3층에는 전시실과 함께 도서관이 있다. 이곳의 핵심 사업 중의 하나인 정보수집제공사업과 교육보급사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존 미술관들과의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도서관이다. 미술관 한 켠에 대학 도서관처럼 조용히 자리잡은 이곳은 미술관만의 자료실이나 학예연구를 위해서 쓰이는 곳이 아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누구라도 언제든지 부담 없이 정보검색을 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도서관 입구에 놓여진 편안한 의자도 기분이 좋지만 그 뒤로 보이는 창 밖도 인상적이다. 사실 창밖이라고는 하지만 엄격하게 빌딩 안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 그 공간에는 마루가 깔려 있고 키 높은 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눈에 띄는 스페이스는 아니지만 긴 복도 중간에서 나무 한 그루를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하늘아래에서 햇빛을 보고 자라는 나무는 실내에서 잘 가꾸어진 화분과는 느낌이 또 다르지 않는가. 아마도 그런 섬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도서관을 더 넓히고 그 앞에 화분을 놓았을 지도.
입구와 전시실을 살펴 보았으니 이제 지하가 남았다. 지하로 내려가기에 앞서 아래의 사진을 참고한다면 각 층의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미술관 개관에 앞서 있었던 리셉션에서 촬영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았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지하 역시 다른 미술관의 아트샵에 비해 결코 좁지는 않았지만 지상 공간들이 너무 넓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좁게 느껴지기도 했다.
갤러리 숍의 이름은 스베니아 프럼 도쿄(Souvenir from Tokyo)로 줄여서 SFT라고 쓴다. ‘Souvenir’라는 단어가 선물이라는 영문 뜻 외에 ‘자신만의 추억’이나 ‘기억’이라는 불어의미를 가진다는 것에서 생각해낸 이름인데 제품들 하나하나 역시 추억이 될 수 있을 만큼 여느 미술관 숍보다 뛰어난 것들이 많았다.
숍의 내부를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입구부분에 로고와 영문이 들어간 파티션, 그리고 뒷 벽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작은 전시공간이 보인다. 로고는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 가장 활약을 펼쳤던 사토카시와(佐藤可士和)씨의 작품이며 그 내용은 북코디네이터인 하바 요시타카 (幅允孝)씨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갤러리숍의 모습과는 달리 밝고 자유로운 연출이 돋보였다. 구입을 하지 않더라도 시선에 구애 받지 않고 구경할 수 있는 부담 없는 공간으로 미술관 특유의 무거움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갤러리숍의 개발과 관리를 맡은 시본(CIBONE)의 굵직한 기획력이 이곳에서도 여실히 들어나는 것 같았다.
다음은 지하에 위치한 카페 카레(CARRE) 인데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천장이 뚫려있어 답답한 느낌은 없다. 뮤지엄숍과 연결되어 조금 산만하기는 하지만 역시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카페의 반대방향으로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그 앞으로 누구나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또 예사롭지 않은 것이 유명한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 (Arne Jacobsen)의 제품인 것이다.
의자가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지만 이 미술관에는 실로 많은 의자가 있으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감각적인 의자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가장 멋지게 해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누구나 앉아 자유롭게 쉴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층 유리벽을 향해 앉아 있던 휠체어와 유모차였다. 그들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의자가 어디에 있을까.
이제 지하까지 다 둘러보았으니 강당과 연수실 외에 중요한 부분은 거의 다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가. 쿠라카와 키쇼가 말하는 공생(共生)의 철학을 찾아 낼 수 있었는가.
공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오픈 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건축가의 취지에 맞게 이 미술관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흔히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티켓을 끊어야만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시민 누구나 무료로 미술관에 들어와서 자유롭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카페와 아트숍을 이용할 수 있다. 미술관 내에는 여러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기 때문에 단지 자기가 보고 싶은 전시회에 한해서만 티켓을 끊고 그 전시장에 들어가는 것에 한해서만 돈을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전시회가 유료인 것도 아니다. 큰 규모의 볼만한 전시회중에 무료인 전시회도 있으니 그야말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오픈 된 미술관이 아니던가.
처음 이 미술관에 대한 제안이 나왔을 때 일각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비록 작고 낡았지만 집과 가게들이 정감 있게 자리잡은 조용한 마을에 거대한 유리빌딩이 매몰차게 들어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버블경제 이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과도한 예산을 책정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럴수록 부가가치가 높은 것에 투자하여 자체수익은 물론 주변상권까지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미술관이란 최대한 많은 시민들이 부담 없이 자주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다운타운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은 이 미술관에 주차장이 아예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오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만큼 전철회사의 수입은 높아질 테니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살 수 있는 공생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미술관은 노기자카 역에서 바로 연결이 된다. 역에서 올라오면 미술관의 동쪽과 만나는데 마침 오프닝립센션이 있던 날 비가 와서 더욱 눈 여겨 볼 수 있었지만 역에서 미술관까지 가는 통로에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그것은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도 우산 없이 충분히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오픈한 뒤 한 달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과연 그들의 의도대로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다. 평일 낮이었지만 카페와 숍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모차를 끌고 미술관에 와서 쉬고 있는 주부들이 많이 보였다.
유리벽 앞에 놓인 의자에서 기분 좋게 책을 읽고 있는 노인도 있었으며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지금처럼 오픈 되어 있는 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그들로 인해 미술관도 더욱 활기를 띌 것이다. 서로 공생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