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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아우성! 2006. 12. 런던 디스플레이 특집

이서진 통신원 | 2006-12-12



여러분은 여행을 할 때 그 도시의 가장 살아있는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자 어디를 찾아가는가? 관광객들이 필수코스로 가는 박물관이나 뮤지엄일까 아니면 역사적 장소일까?
여러 해 동안 뉴욕과 런던에서 살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은 그런 유명한 관광 코스를 찾는 것보다는 번화한 길이나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거리를 걷는 것이 그 도시를 이해하고 느끼는 데에 훨씬 많은 볼거리와 감흥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없고 한강의 유람선을 안타보았다는 사실. 마찬가지로 런던에 사는 현지인들도 런던의 명물 타워 브릿지나 대영박물관에 가본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런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활기찬 거리를 어떨까.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런던 구석구석 쇼윈도에서 펼쳐지는 거리의 예술에 대해 한번쯤 꼭 눈길을 주게 된다. 오래된 도시답게 비좁은 도로를 따라 빼곡히 독특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그들은 저마다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해놓고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은 보행자 위주의 도시이다. 자가용이나 택시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주차료와 통행료 등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시민과 관광객들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멀지 않은 거리는 걸어 다닌다. 이러한 문화가 런던의 디스플레이 분야를 더욱 발전시켜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런던 사람들은 하늘을 잘 보지 않는다. 흐리고 비가 자주오는 날씨 탓도 있지만 건물들 대부분이 3-5층 정도로 낮고 하이라이즈 건물들이 거의 없어 높은 곳을 바라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집들도 상가도 모두 아기자기하고 그들만의 특유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아리러니하게도 1층에 위치한 매장의 쇼윈도들만큼은 모두 자기만의 목소리로 보행자들을 향해 소리지르고 있다. 비록 실질적인 소리는 안 들릴지라도 그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비주얼의 강력함은 마치 마이크로 우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이 강렬하고 독특하다.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그들의 발걸음을 가게 안으로 돌리기 위한 쇼윈도들의 치열한 크리에이티브 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취재ㅣ이서진 런던통신원(seojinlee@gmail.com)



런던의 백화점들은 11월 초를 기해 일제히 쇼윈도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체제로 바뀌었다.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대목으로 거리마다 쇼핑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런던의 주요 백화점인 헤러즈(Harrods), 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 셀프리지(Selfridges), 리버티(Liberty), 포트넘 앤드 메이슨(Fortnum & Mason)을 위주로 그들만의 독톡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살펴보겠다.


먼저 헤러즈는 직원도 자칫하면 미아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백화점이다. 칫솔에서부터 자동차 심지어 최근에는 두바이에 있는 주택을 팔정도로 인간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다양한 물건들 특히 고가의 물건들을 팔고 있음을 쇼윈도에 많이 표현하는 백화점이다. 이번 시즌에는 최근 개봉한 영화 007 시리즈인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과 손잡고 그들의 영화를 홍보함과 동시에 쇼윈도에 카지노와 제임스 본드, 본드걸을 연상시킨 마네킹들을 테마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주제 또한 ‘크리스마스 로얄 007’로 패러디 하였다.



이들은 소니의 평면 TV를 통해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보여주며 최첨단 홈 시어터 제품을 소개하고 있고, 멋진 스포츠카까지 동원하였다. 최근 개봉한007 시리즈에 열광하고 있는 런더너들의 제임스 본드에 대한 짝사랑이 백화점 디스플레이에까지 손을 뻗친 셈이다. 특히 영국을 대표하는 백화점인 이곳에서 쇼윈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쇼윈도에 설치된 최첨단의 서라운드 스피커로 007영화의 박진감 넘치는 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칼라 또한 이번 시즌 유행 칼라인 골드와 블랙을 매치하여 럭셔리함을 강조하였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럭셔리함을 너무 많이 추구한 나머지 자칫 촌스러워 보이기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하비 니콜스는 ‘슬로니즈’라고 불리는 상류 계급 출신의 멋쟁이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백화점이다. 구비한 제품들도 보수적인 스타일보다는 참신하고 유행에 민감한 물건들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또 5층에 위치한 식료품 코너는 자체브랜드의 참신한 패키지로도 유명하다. 이들 모노톤의 멋진 패키지는 디자인 서적에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이 백화점의 마케팅 방향은 젊고 참신하고 새로운 것에 있다. 따라서 그들의 쇼윈도도 항상 발상의 전환과 함께 재치로 넘치고 유머와 위트가 가득하다. 특히 요즘에는 식당가를 더욱 홍보하기 위해 음식과 관련된 아이디어들로 기본 방향을 삼고 있는 듯 하다.



위의 사진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뀌기 바로 전의 쇼윈도이다. 누가 보아도 사랑스럽고 눈에 쏙 들어오는 쇼윈도였다. 대부분의 백화점들이 고급스러움이나 세련됨을 추구하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그 반대인 귀엽고 유아적인 컨셉으로 진행되었다. 음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상황을 설정하였다. 솜과 천으로 주인공인 음식들을 만들고 그들의 대화를 핸드라이팅 서체를 사용하여 만화적 기법을 표현하였다. 크기 또한 실제보다 현저하게 크게 만들어 크기의 대조를 통해 행인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게끔 설치하였다. 그 사이사이 오밀조밀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실제 제품들과 어울려 한편의 동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화들은 아주 짧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중적 의미들로 인해 한번쯤 생각해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대화들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또한 음식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에서 출발하였다. 전 시즌과 달리 이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 쓰이는 그릇들 특히 1회용 컵, 수저, 포크, 접시 등을 소재로 이용하되 이들이 주목적인 음식을 담는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다. 그럼 어디에 쓰였을까? 이들은 다만 점, 선, 면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디자인적 요소로 반복되어 쓰였을 뿐이다.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면으로 때로는 커다란 육면체 덩어리로 쓰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크리스마스 시즌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눈 결정체의 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디테일의 정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제품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1회용 제품들은 모두 무늬 없는 흰색과 검은색의 것들을 사용했다. 다만 조명들을 파란색과 초록색 등을 사용하여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였다. 조명에 따라 이들을 3차원적인 깊이를 창조했고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었다. 흔히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1회용 포크와 나이프, 종이컵들이 이렇게 멋있게 재탄생 할 수 있다니 정말 발상의 전환이 아름다운 패턴을 창조하였다.

외부의 쇼윈도와 더불어 내부 매장도 같은 분위기로 연출되었다. 의류를 파는 의상 코너에 있는 마네킹들도 포크로 만들어진 멋진 화이트와 블랙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단순한 반복이 가져오는 아름다운 패턴이 옷감의 패턴처럼 아름답고 유기적으로 표현되었다.





샐프리지는 모든 물건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 대형 백화점이고 가장 번화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 런던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대중적인 백화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서 이들은 동화를 테마로 쇼윈도를 구성하였다. 쇼윈도 한 켠에 펼쳐져 있는 커다란 동화책 속에 만들어낸 가상의 스토리를 한편의 동화책 장면처럼 쇼윈도 전체에 표현하였다. 단순히 볼거리 위주가 아닌 내용과 비주얼의 연계가 사람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이끌어 낸 좋은 멋진 쇼윈도가 되었다.

백화점의 정면 쇼윈도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연상되는 초록색 나무 재료를 주요 바탕색으로 택하였고 그 위에 골드칼라의 주인공들을 표현하였다. 주요 주인공들은 대부분 동물이었는데, 이 동물들은 금색의 철사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만들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오리, 유니콘, 새, 토끼, 잠자리 등 다양한 동물 들이 등장한다. 최근의 해리 포터도 영국 작가에 의해 쓰여졌지만 상당히 많은 동화들의 원작지도 영국이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이런 문화적 자산에 대한 자부심이 그 어떤 민족보다도 뛰어나다.






백화점의 측면에는 마치 어떤 잘 꾸며진 정원에 온 듯 철사가 아닌 초록색의 플라스틱 나뭇잎으로 커다란 동물들을 만들어 놓았다. 영국 사람들에게 정원을 꾸미는 것은 가장 큰 취미이자 생활 속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것처럼 세기 별 런던 정원의 양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 동안 영국 사람들은 꽃 가꾸기와 정원 가꾸기에 열광해 왔다. 이런 문화가 이들의 쇼윈도에도 녹아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부의 척도로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영국 사람들과 그 문화가 이 넓지 않은 공간 쇼윈도 속에서도 살며시 보여진다.




리버티 백화점은 리버티 프린트라 불리는 꽃무늬 프린트로 유명한 곳이다. 옷감을 비롯하여 커튼, 테이블 보 원단 등 다양한 프린트 제품들로 가득하다. 이 중 가장 리버티다운 것은 유럽풍으로 디자인 된 멋진 동양 무늬이다. 쇼윈도들도 겨울 분위기가 나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눈의 흰색을 배경으로 멋진 프린트 제품들이 돋보이도록 디스플레이 되었다. 작은 쇼윈도들을 적극 활용해 제품들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심플하게 표현되었다.




포트넘 앤드 메이슨은 언제 가보아도 관광객들로 항상 혼잡한 곳이다. 1707년 고급 식료품점으로 출발한 이래 다양한 것들을 취급하는 백화점으로 발전하였다. 1층의 식료품 코너가 가장 인기 있는데 다양한 디자인의 푸드 패키징만 감상하여도 하루는 족히 걸릴 정도로 방대하다. 클래식한 유럽식의 장식들이 가미되어 있는 것에서부터 포스트모던 식의 화려하고 현란한 패키지까지 디자이너로써 만약 패키지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꼭 한번 들려야 할 곳이다.



이들을 크리스마스를 위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테마로 선정하였다. 쇼윈도는 마치 입체로 된 동화책을 보는 것 같다. 원작에 등장하는 앨리스와 토끼, 카드로 만들어진 병정들은 앙증맞고 사실적이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이 입체 만화는 잘 계산되어 만들어놓은 곳곳의 선반들 위에 그들의 제품들을 올려놓았다. 동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어울리는 것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보여진다. 관광객들은 모두들 이 신기한 나라를 감상하고 사진기에 담아두느라 쇼윈도 앞을 분주히 움직인다.


패션 잡지 보그의 런던판 12월호는 90주년을 맞았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잡지들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0년 미만의 역사를 자랑한다면 그 숫자상에서 이미 우리보다 한 세대가 훨씬 앞선다. 90주년을 맞아 보그 지는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벌였고, 패션업계에서는 한 잡지의 긴 역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매장 디스플레이 전면에 보그와 관련된 이미지들로 간접적인 축하 카드를 보낸 셈이다. 사실 패션과 잡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공생관계로 서로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이렇게 한 잡지사의 기념일을 매장의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축하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런던은 1년에 한번 눈이 올까 말까 할 정도로 눈이 귀하다. 그래서 더더욱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눈꽃모양, 눈 결정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런던의 날씨는 우리나라처럼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매서운 추위는 없지만, 뼛속까지 추운 음산한 겨울 날씨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시도 때도 없이 내리고 4시면 깜깜해지는 날씨 때문에 혹자들은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나라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겨울철의 우울함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런던은 형형색색의 불빛들로 도시를 밝힌다. 이 긴긴 런던의 겨울 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매장들과 거리의 불빛 향연들은 너무나 황홀하고 따뜻하다. 특히 유명한 거리 혹은 동네마다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가로등 불빛 연출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너무나 많은 상점들이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부각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매장들은 각각 옆 가게와 혹은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를 위해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에 많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크리스마스라는 뻔한 주제와 소재 아래 어떤 차별화 정책을 쓰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대형 서점들이 지하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 런던은 거의 모든 매장들이 1층에 위치해 있다. 런던의 서점들도 당연히 1층에서 그들의 손님을 끌기 위해 쇼윈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책이라는 소재밖에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디스플레이의 아이디어를 얻을까?  어떤 서점은 책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였다. 글로 쓰여진 예술 작품이 책이라는 생각, 너무 당연하면서도 그림으로 그려진 예술에 익숙해진 우리로써는 형태가 아닌 담고 있는 내용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된 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매장은 어린이용 동화책을 광고하기 위해 일러스트 기법을 사용한 광고보드를 배너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짧지만 런던 거리거리의 쇼윈도들을 감상해보았다. 걸어다니는 것에 익숙한 런던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도시구조 때문에 런던은 이렇듯 쇼윈도가 발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런던의 여러 디자인 스쿨들은 패션디자인이나 시각디자인 뿐 아니라 인터리어과 또한 유명하고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런던의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느낀 것은 그들이 쇼윈도를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요즘 디자인계에도 복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컴퓨터 그래픽에서 다시 크리에이티브하고 인간의 손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소재 또한 한가지를 사용하여 심플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가지를 혼합하여 그 사이에 벌어지는 대조들과 하모니를 통해 다양성과 풍부함을 추구하고자 한다. 또한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 한눈에 슥 보고 지나치는 인스턴트식의 것이 아니라 디테일의 정수를 통해 보고 또 보고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런던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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