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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365일 가동되는 활발한 갤러리, 뉴욕의 지하철 예술을 만나다

박선민 뉴욕통신원 | 2006-02-07



뉴욕 지하철을 처음 만나던 날, 서울의 깨끗하고 쉬운(?) 지하철에 익숙하던 나는, 뉴욕 지하철의 음산하고, 지저분함에 매우 놀랐다. 지하철이 만들어진 이후로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듯한 지하철 선로에 있는 썩은 물들과 그 위를 떠다니는 쓰레기들, 원래 색이 검은 색인지 아니면 먼지로 인한 검은색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지하철 기둥들.
뉴욕을 처음 방문한 자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던, 업 타운과 다운타운의 서로 다른 입구들, 그리고 이전 역과 다음 역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사인들은 뉴욕 지리를 잘 모르는 초행자에게 불편한 뉴욕의 인상을 심어주기에 딱 맞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뉴욕 지하철의 불편함이 별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고, 지나가는 쥐에게 빵을 던져주는 뉴요커에게도 웃음을 보여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지하철 선로를 직접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04년 10월 27일 처음 개통된 뉴욕 지하철은 이제102살로 세계의 지하철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 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운행되는 대부분의 지하철역들은 193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들로서 지저분하고 불편함은 한편으로는 오래된 역사의 산물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뉴욕 지하철의 오래된 모자이크 사인들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예술품들은 뉴욕 지하철의 모든 불편함과 지저분함을 한번에 용서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벽’은 인간에게 매우 다양한 존재로서 다가온다. 벽은 공간을 나누고, 무언가를 보여주며, 때로는 시간을 기록한다. 어떤 뉴욕 지하철 벽들은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지하철 먼지를 뒤집어 쓰며, 수십만 명의 수십만 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특히나, 섬세한 모자이크 타일들로 된 벽면의 장식들을 보고 만지면서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벽면의 장식들에 감격했을 이름 모를 다른 사람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혼자만이 즐길 수 있는 감정의 사치가 아닐까.


취재 ㅣ 박선민 뉴욕통신원(okokook@gmail.com)


우선 이름부터 ‘왕자님’이라고 불리는 ‘프린스 역’의 벽면 조각품들을 살펴보자. 프린스 역에 있는 작품들은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의 일상을 10 cm 정도의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실루엣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총 2000여장의 사진들 중 뉴요커 들의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 194개의 사진을 고른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섬세한 손길은 실루엣의 형태 만으로도, 이들이 바로 방금 뉴욕 거리 어디에선가 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해준다.

패션리더 뉴욕 아가씨부터, 전통복장의 유태인 아저씨, 예술의 도시답게 미술과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노숙자 아저씨까지. 뉴욕 타일예술은 그냥 타일 위에 이들 이미지들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일을 일일이 그 작품의 모형대로 잘라서 작품과 타일이 하나가 되게 함으로서, 거리예술들의 깊이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뉴욕은 지대가 비싸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캠퍼스가 있는 대학교가 드문데, 맨하튼 여기저기에 빌딩 형태로 흩어져 있는 뉴욕 대학교의 본부가 있는 8가 역은 ‘뉴욕대학교 역’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나름대로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다.
작가 팀 스넬은 이러한 8가 브로드웨이의 일상을 각각의 원 속에 담아내고 있다. 뉴욕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는 사람, 뉴욕 대, 그리고 아이러브 뉴욕 티셔츠를 입은 사람까지. 그의 작품을 통해서 브로드웨이 8가의 모습은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스냅사진처럼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다.



14가에 있는 브론즈들은 뉴욕 지하철의 예술 작품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사람을 닮은 여러 가지 형태의 독특한 캐릭터들이 그들의 일상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돈에 눌리고 있는 캐릭터, 쫓는 경찰과 쫓기는 노숙자, 전화에 눌려 사는 캐릭터, 그리고 돈으로 14가의 캐릭터들을 지배하고 있는 캐릭터까지, 이들 캐릭터들은 벽에서, 땅에서, 그리고 천정에서 솟아나오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다.
특히 놓인 위치에 따라, 사람들이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 가에 따라 같은 것들도 사람의 손 때 뭍은 광이 나고 어떤 것들은 설치된 이후로 아무도 만져주지 않은 듯, 까맣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에서 이 브론즈 들이 그 형태뿐 아니라 그 삶의 공식까지도 정말로 인간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23가 역의 기억들’의 모자들은 23가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을 상징한다.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모자들은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의 위치에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어떤 사람들은 모자아래서 자신의 모자인 양 사진을 찍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자들의 주인공들은 바로 23가와 관련되어 있는 매우 유명하고 역사적인 인물들이다. 휘트니 미술관의 설립자이자Gertrude Vanderbilt Whitney , 루즈벨트 대통령의 아내Eleanor Roosevelt, 드류베리모어의 할어버지John Barrymore, 톰 소여의 모험의Mark Twain, 그리고 전설적인 무용수 Isadora Duncan 까지.각 모자들은 자신들의 주인들을 닮아서, 어떤 모자들은 매우 화려하고, 어떤 모자들은 소박하고, 그리고 어떤 모자들은 매우 신사답거나 작가답다.




타임스퀘어는 지상에서의 화려한 볼거리 이외에도 지하에서의 볼거리도 매우 풍부한 곳이다. 지하연결 통로까지 생각하면 뉴욕최대의 라인 12개가 한 역에 존재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매일 다양한 그룹의 지하철 악사들과 댄서들이 공연을 하고 있고, 낡은 역을 보수하기 위해 항상 공사가 진행 중이며, 여러 명의 사람들이 불법 복사 DVD를 팔고 있으며, 그리고 살아있는 동상의 연기까지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뉴욕에서는 정말로 드물게 이용할 수 있는 공중 화장실과 지하상가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거리인 각각의 스타일로 설치된 조형물까지. 타임 스퀘어 역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역중의 하나이다.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자연사 박물관중의 하나로 내가 한국에도 꼭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하는 곳으로 박물관 자체도 매우 훌륭하지만, 박물관 자체뿐 아니라 지하철 역의 내부까지도 자연사 박물관의 분위기로 꾸며낸 것은 우리가 쉽게 본 받고 실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지하철 역을 내려가는 계단을 두 가지 아이디어로 만들었는데, 하나는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른 하나는 지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계단을 계속 내려가면서 다양한 해양생물들을 만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지구 마그마를 거쳐 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지구 중심부를 지나치면 만나는 것들은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루고 있는 아주 다양한 동물들이다. 코끼리, 개구리, 박쥐, 학, 그리고 고래까지. 각각의 동물들은 모자이크의 디테일뿐 아니라, 거의가 자신의 실제 크기로 표현되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박물관 안에서 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실제로 동물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퀸즈는 뉴욕의 5개 독립구중의 하나로 맨하튼 과는 강 하나가 떨어진 곳이지만, 맨하튼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퀸즈프라자 역은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맨하튼의 스카이 라인과 자신의 주변을 묘사한 것으로 하늘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빌딩이 없고 낮은 공장들이나 주거지들이 주를 이룬다.


뉴욕 지하철역은 뉴욕 사람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24시간, 365일 가동되고 있는 뉴욕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갤러리(?)라도 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 말은 뉴욕 지하철 역에서는 '관심 있는 만큼 보인다' 로 바뀌어 생각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왕 이용할 것이라면, 이왕 이용해야 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 어떤 예술가가 혼을 다해서 만들었을 이들 지하철 아트를 감상해 보는 것도 진정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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