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월드리포트

‘작은 전시회’, 버려지는 포장재에 예술가의 혼을 담다

문주영 도쿄통신원 | 2006-01-03




환경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들이 불필요한 패키지의 양을 줄이거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지만 아직 그 숙제가 완전히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패키지라는 것이 제품의 보호와 포장이라는 본질적인 기능 이외에도,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여전히 그대로 버려지고 있는 수많은 포장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 전시회가 있었다. 바로 지난12월, 오다와라에서 열린 ‘작은 전시회’가 그것이다.


취재 ㅣ 문주영 도쿄통신원(mm00nn@naver.com)


일본의 경우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느 나라보다 많은 포장재(packing materials)가 사용되고 있다. 그 한 예로 일본인들이 수백 년 동안 먹어온 가마보코를 들 수 있다. 가마보코라고 하는 것은 생선을 가공하여 두부처럼 부드럽게 만든 일본의 전통 어묵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식품코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이다.



가마보코의 경우, 상자나 그 밖의 포장재뿐만이 아니라 힘이 없는 어묵을 받쳐주는 용도로 대부분 어묵의 아랫부분에 나무판이 사용된다. 식품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화학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생선가공품이기 때문에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풍이 필수이며, 그러한 이유로 반드시 천연 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문제는 그 어묵판을 만들기 위해서 오랫동안 자란 나무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과, 소비된 어묵판이 대부분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버려지는 어묵판을 눈 여겨 본 한 사람이 있었다.


일본 최대의 가마보코 회사인 오다와라(小田原)스즈히로(鈴廣)사의 스즈키 치에코(鈴木 智恵子)회장은 그렇게 버려지는 어묵판에 대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의 그 작은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스즈히로그룹의 창업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1982년, 제1회 공모전을 통한 ‘작은 미술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숲에서 길러진 나무의 생명이 그림이 되어 건강하게 살아 나간다.”라는, 환경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념 아래 시작된 전시회는, 이후 20년이 넘도록 2년에 한번씩 계속되어 오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전시회는 이제 현과 시를 비롯한 지역의 많은 단체들과, 문화계의 후원을 받으며 국제공모전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매년, 예술 문화의 진흥에 공헌이 높은 일본의 기업•재단을 선정하는 ‘mecenat상품-생활문화부분’ 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특히 참가비가 없으며, 국적, 나이, 자격의 제한이 전혀 없다는 것, 특정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때문에 해를 거듭할수록 응모자는 늘고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 제12회 작은 미술전’ 을 자세히 살펴보자.


시상식은 본사가 있는 오다와라시에서 진행되었고, 시상식 이후에는 수상자들을 위한 파티가 있었다. 수상자들과 참가자들에게는 다양한 가마보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이러한 자리를 통하여 주최측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한번 더 상품을 어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심사위원은 실행위원장인 쿠리요우지(화가)씨를 중심으로 하리우이치로(미술 평론가)씨, 타니가와 코우이치(화가•미술 평론가)씨, 하야시키이치로우(미술 평론가)씨, 타카하시아키야(국립 서양 미술관 학예과 주임 연구관)씨와 후쿠시마아츠코(캐스터•에세이스트)씨로 구성되었다.





응모작은 모두 주니어부 7,370점과 일반부 2,257점을 합한 9,627점이었다. 응모작이 거의 만 여 점에 달하는 것이다. 그 중, 주니어부16점, 일반부17점의 입상작이 선정되었으며, 그 외에 특별상과 다수의 입선작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상장과 함께 수상자들에게 주어지는 상품이, 모두 상을 수여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경우에는 자신의 그림이나 작품을 상품으로 주기도 하고, 식품회사에서 시상을 하는 경우는, 생선을 상품으로 주기도 하였다. 책이나 의류를 상품으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상금으로 주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상장을 수여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상품을 받는 것도 색다른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정해진 상금이 수여될 때와는 달리, 각각의 상품이 발표 될 때마다 시상식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다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마치 선물을 풀어보는 아이처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응모작은 어느 회사의 가마보코 판이라도 상관이 없지만, 한 작품에 최대 두 개까지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따른다. 그 밖에, 표현방법이나 부수적인 재료의 사용에는 제한이 없다.
자, 그럼 각 부문의 최고상을 받은 작품들과 그 밖의 수상작들을 살펴보자.




일반부의 수상작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들의 성향 때문인지, 고양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았던 것도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또한 아크릴, 유화, 패브릭, 조각 등, 그 표현방법도 다양했다.



주니어부의 수상작들은 나이를 의심케 할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똑같은 나무조각이 누구의 손을 거치느냐에 따라 얼마만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이번 공모전의 최연소 수상자는 3살, 최고령의 수상자는 90살이 넘었다. 또한 멕시코와 타이, 한국 등의 외국인 수상자들도 있었다. 수상작들은 스즈히로(鈴廣) 가마보코 박물관에서 1차 전시가 된 후(05.11. 1~06. 1. 5), 요코하마의 다카시마야 백화점에서 전체 응모작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전시가 된다. (06.1. 11~ 1. 18)


전시된 작품들을 충분히 살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작품이 전시되었던 가마보코 박물관의 모습들을 살펴보자.


온천으로 유명한 이 지역은 자동차와 관광객의 통행량이 많다. 넓은 도로에서도 훤히 보일 수 있도록 설치된 대형 가마보코판 모양의 ‘작은미술전’ 이라는 글자가,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박물관으로 향하도록 했다.


우선 입상작을 비롯한 초대작품들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전시가 되고 있었다. 기대 없이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무심코 버려졌던 어묵판들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난 것에 대해 놀라기도 하였다.




사실, 필자는 박물관에 가기 전까지 전시된 작품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찾아 갔을 뿐, 하나의 식품 박물관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밝은 조명아래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의 나무질감과 짜임새 있게 디자인된 내부인테리어의 모습은 머리 속으로 그렸던 어두운 박물관의 모습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또한 가마보코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컨텐츠들과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박물관의 한 켠에는 통유리를 통하여, 제조 기술자들에 의해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지는 가마보코의 제조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참가자가 직접 만들어보는 실습장도 겸하고 있었으며, 박물관의 중앙홀에는 냇물소리를 들으며 갓 만들어진 가마보코와 정종을 맛볼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일본은 여러 가지 특색 있는 박물관들이 많다. 그 중, 외국인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스즈히로 가마보코 박물관’ 은 특정 식품회사에서 만든 특산물을 판매하고 제조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백 년이 넘도록 내려온 지역의 특산물을 보존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로 그것을 알리는 특색 있는 문화창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는 가마보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캐릭터 상품들을 포함한 문화상품들이 개발• 판매되고 있었다. 작은 열쇠고리에서부터 인형과 같은 팬시류, 노트와 필기구 등의 문구류, 애니메이션 등의 멀티미디어 자료들까지 가마보코와 관련된 상품들은 반드시 구입하지 않더라도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작은 전시회와 스즈히로 가마보코 박물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작은 전시회’라는 이름의 이 전시회는 필자에게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들을 남겼다.


우선, 무심코 버려질 뻔 했던 만여 개의 어묵판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굳이 환경문제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버려지는 자사의 포장재를 아깝게 생각하여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행사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업의 발전된 시각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수상작과 낙선작이 모두 전시가 된다는 점, 국적과 한세기를 넘는 연령의 사람들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입상과 관계 없이 그것 자체를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 이토록 포용력 있는 공모전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사실 일본에는 응모작을 모두 전시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단지 등수를 가려 우수한 작품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공모전을 주최하는 것과는 달리, 주최측에 가져 준 관심의 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하나하나의 작품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기업의 너그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미화된 생각일까.


끝으로 이번 행사를 통하여 미래사회에서 요구되는 기업의 이미지와,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해서 필요한 노력에 대한 작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수억원을 들여 인기 모델만으로 광고를 만들어 내는 기업은 그 모델의 인기에 따라 제품의 인기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문화적 요구와 트렌드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아이디어로 꾸준히 개발된 문화컨텐츠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제품과 기업에 다가 설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 결과, 기업의 이미지는 소비자들의 가슴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제품과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좋은 문화들이 많다. 김치를 예로 들어보자.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주식으로 삼는 이방인들에게 그저 우리의 김치가 몸에 좋다고 먹기를 권하는 것은 무리이다. 우선 김치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응용된 컨텐츠를 개발하고, 함께 참여하여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