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2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 회사, 인터브랜드(INTERBRAND)를 거쳐 현재 포스코건설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원식. 1월의 어느 날 그가 매거진정글 편집부로 자신이 엮은 한 권의 책을 소개했다. ‘서비스디자인 이노베이션'. 가뜩이나 서비스디자인 특집을 다루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인지라 한번에 눈길이 가던 책이었지만, 정작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 이원식이 먼저였다.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함도 그렇고, 디자인 경영을 한껏 추진하고 있는 KT 표현명 사장과 공저했다는 점도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브랜드, 서비스디자인, 디자인 경영, 머리 속을 맴돌던 이 세 가지 키워드의 꼬리를 무는 호기심은 곧바로 그와의 인터뷰로 이어졌다. 시대를 아우르는 키워드의 한 자리를 꿰찬 서비스디자인을 이야기하는 브랜드 매니저, 이원식을 만나보자.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Jungle : 브랜드 매니저란 무엇이고, 포스코건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신지요.
브랜드 매니저는 회사나 상품의 브랜드를 개발, 기획,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브랜드의 중요성이 높아지다 보니, 기업에서도 브랜드 매니저를 따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상도 높아지고 있고요. 브랜드의 인지도나 선호도를 높여 가치를 창출해내는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하는 직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포스코건설에서는 아파트 ‘더샵'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어요. ‘더샵' 브랜드를 지원해주는 새로운 편익브랜드 개발이나 각종 커뮤니케이션 활동 등이 주 역할입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경험(Brand Experience)을 전해주는 일이지요. 이제 아파트 브랜드는 다른 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으로써 존재했던 이전과는 달리 소비자의 자부심과 개성까지 반영하는 가치를 담고 있거든요.
Jungle : 아파트 브랜딩이라면 주로 어떤 활동들이 있나요.
아파트 산업에서 브랜드의 역할은 예전에는 아파트와 아파트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모양이 서로 비슷비슷하니까 구분이 필요했던 거죠. 이름으로써 말이죠. 굉장히 단순한 역할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다가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점점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갖추려는 시도들이 건설회사마다 일어났어요. 단순히 커다란 브랜드 사인(sign)만 아파트 벽면에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룩앤필(Look and Feel)을 살리려고 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디자인이 중요하게 되었고, 브랜드 매니저 활동에서도 디자인과의 관련성이 크게 높아지게 되었지요. 컬러에서부터 경관조명, 공공시설 등 브랜드만의 특성과 가치를 담을 필요가 부각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나 소비자 참여 등의 활동도 상당히 중요해졌어요. 저희 같은 경우 페이스북도 운영하고, ‘샤피스트’라는 주부 자문단을 두어 소비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합니다. 블로그 홍보단, ‘샤피안’도 있고요. 소비자의 경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소통, 참여 채널을 열어두는 활동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Jungle : 전공은 디자인이었나요?
학부에서 산업공학과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에서는 실내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았고요. 그러다 영국에 유학가서는 디자인 경영 학위를 받았습니다. 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교육 과정을 가졌던 셈이죠. 전 브랜드 매니저가 통합적인 디자인 플래너라 생각해요.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략을 세우고, 일을 조율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Jungle : 브랜드 매니저라면 디자인 보다는 마케팅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이 세 분야에서 각각 일을 했었습니다. 전문분야로 나누자면야 각자의 역할이 있고, 영역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 이 세 가지가 같이 맞물려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브랜드의 이미지라는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에 대해 갖고자 하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 브랜딩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데, 가장 명확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게 디자인이죠. 브랜드의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만져주는 것이 디자인이기에, 브랜드와 디자인은 멀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매니저는 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기획자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Jungle : 포스코건설 전에는 인터브랜드에 있으셨죠? 그때 어떤 프로젝트를 했었나요?
대표적인 프로젝트라면,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공간 브랜딩이 있겠네요. 2007년 모건스탠리가 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리뉴얼의 필요성을 제기했어요. 사실 1977년 지어진 이래 서울역 앞에서 서울을 대표하기도 했던 빌딩인데, 계속해서 이곳을 쓴 기업들이 경영난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건물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브랜딩의 핵심은 건물의 이미지를 바꾸는 거였어요. 겉모습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브랜딩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름, 건물의 룩앤필 변화 등 서울스퀘어 공간 브랜딩을 한 1년 동안 진행했어요.
Jungle : 얼마전 KT 표현명 사장과 함께 ‘서비스디자인’ 관련 서적을 내셨습니다. 이미 2008년에도 관련 서적을 내셨고요.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가지게 되었나요?
2006년 디자인 경영을 배우기 위해 영국 맨체스터 샐퍼드대학교(University of Salford)로 유학을 갔어요. 회사를 다니던 중이라서 유학은 꽤나 어려운 결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유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가 디자인경영에 대한 꿈과 비전이었고, 둘째는 대학원 과정 중 수행하게 될 분명한 연구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연구 주제가 무어냐 하면, ‘서비스기업에서의 디자인 경영 모델’ 이었죠. 유학을 가기 전 KTF(현 KT)에서 표현명 사장(당시 마케팅 담당 임원)과 컨설팅일을 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그때 ‘서비스 기업에서의 디자인 경영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한참 빠졌었죠. 통신서비스 기업에서의 디자인 경영은 기존과는 다른 좀 더 어울리는 옷이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오게 된 주제가 서비스디자인이었고, 이것이 저의 서비스디자인 연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표현명 KT 사장님과는 2008년 ‘서비스디자인 시대'와 이번 ‘서비스디자인 이노베이션'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게 되기도 했어요.
Jungle : 이번 ‘서비스디자인 이노베이션'을 보니 주되 키워드가 ‘창조 경영'인데요. 디자인과 창조 경영, 어떤 연관성으로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인가요?
우리는 커다란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정보사회에서 이제 감성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와 시장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변화 속에서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항상 혁신의 툴(Tool)이 필요했어요. 산업사회때는 식스시그마(six sigma)가 있었고, 정보사회에서는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경영정보시스템)가 있었고요.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기업들은 창조경영을 위한 툴로써 바로 '디자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Jungle : 디자인 창조 경영이군요. 현재 포스코건설에서도 그런 접근법이 진행되고 있나요?
건설 회사는 KT같은 통신기업, 혹은 CJ와 같은 소비재 기업과는 특성이 많이 달라요. 우선 소비자 접점이 크게 떨어지죠.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접하는 산업에서는 디자인 관여도가 높아서 디자인 경영이라는게 회사 내에서 큰 화두가 될 수 있는데, 건설 회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포스코건설만 봐도 사업영역이 플랜트, 에너지, 물환경, 토목 등이고, 소비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더샵' 하나 정도 거든요. 회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B2C가 작은 영역에 속하다 보니, 전사적인 디자인 경영 추진에는 아직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시도는 이뤄지고 있어요. 특히 ‘더샵’은 디자인 경영에 맞는 상품이기도 하고요. 아파트가 예전에는 투자, 즉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가치가 매겨졌었는데, 최근 들어서 점점 바뀌고 있거든요. 거주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거죠. 사고 파는 것이 아닌 들어와서 살겠다는 니즈가 높아지니 자연스레 디자인도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더샵' 브랜드에서 디자인 접목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거죠.
Jungle : 이원식 브랜드 매니저가 생각하시기에, 이러한 디자인 툴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은 어디라고 말할 수 있나요?
제 기억에 2008년 한국디자인경쟁력이 세계 8위였던 것으로 압니다. 벌써 5년 전이고, 이제는 더 올라 갔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디자인 경영 사례를 찾으려면 외국을 둘러봐야 했는데, 지금은 국내에서도 훌륭한 회사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카드'를 꼽고 싶네요.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브랜드와 마케팅, 디자인이 하나로 굴러가는 사례가 아닌가해요. 현대카드가. 물론 그 회사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요. 외부에서 봤을 때, 현대카드는 전세계적으로 봐도 훌륭한 사례로 볼 수 있어요.
Jungle : 국내에서는 민간보다는 관(官) 주도의 공공의 서비스디자인이 좀 더 눈에 띄는데요. 관 주도의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과 함께 서비스디자인만큼은 관이 주도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디자인'만 놓고 봤을 때, 그 무형의 자산에 투자하기에 시스템적으로 일반기업보다 관(官)이 더 어렵지 않나 합니다. 일반 기업들이야 소비자와 맞닿아 있고, 바로 이윤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관 주도의 공공적 사업에서는 디자인이라는 무형의 자산, 그 효과에 대한 증명 혹은 필요성에 대한 설득이 좀처럼 쉽지 않죠.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서비스디자인은 좀 다릅니다. 기업보다는 관, 즉 정부가 서비스디자인에 더 적극적이죠. 사실 생각해보면 정부가 국민에게 하는 것이 서비스잖아요. 치안서비스, 보건복지서비스, 행정서비스, 정부가 하는 일의 본질이 서비스라는 것이죠. 다른 디자인과는 달리 서비스디자인은 정부의 역할과 맞닿아 있기에 범죄예방디자인, 공공서비스디자인 등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최근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 생각해요.
Jungle : 그렇다면 민간, 즉 기업의 서비스디자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번에 출간한 ‘서비스디자인 이노베이션'에서 이렇게 정의했어요. “서비스디자인은 서비스 제공자가 기존 디자인의 의미를 확장시켜 의도적으로 서비스 소비자가 서비스를 통해 접촉하는 모든 유,무형적 요소 및 경로를 구체적이고 물리적으로 디자인함으로써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이익을, 서비스 소비자에게는 가치를 가져다주는 활동과 분야이다". 이말 그대로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이익(이윤)을 서비스 소비자에게는 경험적 가치를 전해주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겠죠.
Jungle : ‘서비스디자인 이노베이션', 책 소개도 좀 부탁드릴게요.
일단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방대한 이론들을 담겠다기보다,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프로젝트를 통한 실무에서의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했어요. 현재 한국에서는 디자인, 산업공학, 마케팅, HCI, UX, 서비스사이언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접근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디자인경영'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볼 수 있죠. 기업이 서비스를 통한 혁신을 위해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다학제적 측면에서요. 아직 서비스디자인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개념과 이론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책 또한 하나의 용감한 시도와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Jungle : 마지막으로 최근 많은 학생들 또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브랜드에 대한 많은 관심을 표하는데요.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업에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기본적으로 충분히 있어야 하고요. 인접 분야에 대한 지식, 마케팅과 디자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각 분야의 특성을 받아들이려는 마인드도 중요하고요. 왜냐하면 이제 브랜드라는 것은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트렌드에 민감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트렌드, 시대의 트렌드, 그런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분야이니까요. 트렌드에 대해 열린 시각과 수용하는 자세, 그리고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도 브랜드 매니저에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