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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애니메이션 감독 안재훈

2012-03-23


2011년 ‘돼지의 왕’, ‘마당을 나온 암탉’과 함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작품으로 ‘소중한 날의 꿈’을 꼽을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어느 세대나 공감할 수 있는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갖은 시련과 고통 끝에 꿈을 이루어 내는 성공담은 아니지만, 우리가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중한 날의 꿈’은 11년이란 시간과 10만 장의 그림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이 작은 꿈을 지지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 꿈을 지키고 만들어나간 안재훈 감독을 만났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연필로 명상하기

Jungle :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하기까지 정확하게 11년의 시간이 지났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다.

작업과정이 길었던 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래서 어떤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대답하기는 힘들다. 다만, ‘소중한 날의 꿈’이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가까운 7,80년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스태프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열심히 관찰해야 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행동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감독의 개성이 드러나고 디테일도 사는 것이라 최대한 많이 보고 그려보는 수 밖에 없었다.

Jungle : ‘소중한 날의 꿈’을 보니 인물들의 디테일한 행동이나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작업을 거친다. 그래서 어느 한 부분도 세심하게 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감정의 교감에 대해 신경을 썼다. 아주 사소한 행동일지 몰라도 우리가 만든 행동이나 소품을 통해 추억을 떠올리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Jungle : 오랜 노력 끝에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했지만, 관객수가 적었다.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정성을 다해서 좋은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멀티 플렉스 극장의 독과점 문제는 한 스튜디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것까지 예상해서 준비를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독과점의 문제는 한 개인이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로인해 느낀 점도 많았다. 우선, ‘소중한 날의 꿈’과 같은 작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작은 스튜디오도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바꾼 부분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애니메이션을 보러 온 관객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들 때문에 금세 잊혀질 뻔했던 영화가 계속 상영되고 사랑 받을 수 있었다.

Jungle : ‘소중한 날의 꿈’을 통해 관객들과 자주 만났던 것으로 안다. 그들에게서 받은 질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여러 질문이 있지만, 사실 관객들은 나에 대한 질문보다는 ‘소중한 날의 꿈’에 대한 감상을 나눴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애니메이션은 이랑과 철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돌이켜보고 다시 자신을 응원하게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자극이 되었다.

Jungle : 관객들을 위해 ‘소중한 날의 꿈’의 피규어와 티셔츠가 제작되었다고 들었다. 앞으로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으로 관객과 만날 계획이 있나?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갖고 피규어와 티셔츠를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스튜디오의 디자이너가 관객들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참여한 일이다. 비즈니스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많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그렇듯 우리 역시 사업을 추진할 부서가 따로 없다. 인력도 부족할뿐더러 일단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에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Jungle :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됐다.

Jungle : ‘연필로 명상하기’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어떤 사회든 그렇지만 세상의 부수적인 모든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재능과 노력으로 한 가지 직업이 제대로 평가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Jungle : 작업을 할 때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

같이 일하는 스탭들, 애니메이션을 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더 잘하는 사람들도 하고 있는데 내가 쉬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때로는 자연에게도 열등감을 느낀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대해서 온전히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그런 것들로 인해 더 노력하게 된다.

Jungle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중한 날의 꿈’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중한 날의 꿈’의 경우 자본과 다른 경제적인 논리를 떠나서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그것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는 일을 실현한 것이다. 흔히 사람이 희망이라고 한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의 목표가 조금씩 실현돼 가는 모습, 그 자체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신기루 같은 것이 산업의 희망이 되면 그 안의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게 된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크기 때문이다. ‘소중한 날의 꿈’이 해 온 것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꿈이 가능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다.

Jungle :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처음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특정 스튜디오나 감독을 동경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꿈꾸는 사람들이 막연히 픽사나 지브리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 회사가 맞는 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지브리와 픽사 같은 경우에는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 개인의 성장이 한 스튜디오의 성장이라고 볼 수 있기때문에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역사가 된 곳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곳에서 작업해서 자기가 그 역사 위에 돌을 하나, 하나 쌓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Jungle : 3D나 CG를 포함해 앞으로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3D나 CG의 기술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 쉽고 편하다는 데에는 거부감이 든다. 3D가 보편화되면서, 2D는 하는 사람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재능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자신의 애니메이션 뿌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 스튜디오의 작업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하는 작업의 의미를 대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3D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늙었을 때 해도 될 것 같다.

Jungle : 감독님이 꾸는 ‘소중한 꿈’은 무엇인가?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서 좋은 애니메이션도 많이 만들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은 관객들이 ‘소중한 날의 꿈’을 보고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로 인해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분들이 자신의 꿈에 용기를 얻고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목표로는 아직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내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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