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3
가구는 우리가 사는 공간 안에서 사용되는 기구다. 물건을 수납하고 몸을 기대어 쉬게 하는 가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된 목적은 하나다.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 그래서 가구디자인에서는 무엇보다 실용성이 중시된다. 그런데 목적에 맞는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 말고도 가구가 지켜야할 도리는 또 있다. 사람보다 더 큰 주체, 즉 ‘주인공이 되지 말 것’이다. 펀잇쳐스 오서연 대표는 가구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그가 만드는 가구는 ‘조용하면서도 위트 있는’ 가구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Fun-it-Urs’. 펀잇쳐스는 Fun it Urs(Yours), ‘즐겨라, 너의 것을~’이라는 뜻을 가진 위트 있는 이름이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 | 펀잇쳐스
‘펀잇쳐스(Fun-it-Urs)’라는 이름은 오서연 대표가 직접 지었다. 너의 것을 즐기라는 직접적인 의미 너머엔 ‘적극적으로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즐겨보자’는 생각이 담겨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이다’, ‘행복은 찾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삶에 대한 긍정적 철학이 떠오른다. 맞다. 그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추구한다. ‘욕심을 버리고 편안하게 분수를 지켜 만족함을 아는 동양적 사고’가 그가 추구하는 가구디자인에 대한 철학이다.
“하루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가구들이 온통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죠. 너무 많은 가구가 시끄럽게 느껴졌고 그래서 꼭 필요한 가구를 제외하고 처분 했습니다. 안방에서 이불만 펴놓고 잠을 자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어요. 모든 물건에서 기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조용하면서도 우주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편안하고 조용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죠. 되도록 조용하지만 너무 조용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위트가 있는, 실용성이 있는, 그림자 같은 가구를 만들고자 합니다.”
서양에서 건너온 가구보다 더 멋들어진 가구를 만드는 대신, 우리를 위해, 우리가 사용할 편안한 가구를 만들고자 하는 그는 또 다른 포인트로 fun, 재미를 꼽는다. 눈을 즐겁게 하는 재미가 아닌 마음을 즐겁게 하는 재미. 물질만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종의 특권이나 의무처럼 여겨지는 소비심리는 가구디자인의 유행에도 어김없이 반응한다. 특별히 망가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형태와 기능의 가구가 필요할 때 기존의 가구는 버려진다.
“요즘사람들 중에서 가구를 ‘흠뻑’ 써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전 그 형태 그대로 고정된 개념의 가구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변형되거나 사용자의 취향에 의해 맞춰질 수 있는 그런 가구를 만들고자 합니다. 사용자의 기호나 취향의 변화까지 반영할 수 있는 그런 가구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사용자를 위한 재미다. “명확한 목적을 확정짓지 않고 사용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될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려면 가구는 더욱 더 존재감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존재감은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가구를 절대 쉽게 버릴 수 없을 겁니다.”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그의 생각은 기존 가구들과는 확실히 다른 디자인으로 탄생됐다. 펀잇쳐스는 1년 여 시간동안의 개발을 통해 특허 및 실용신안등록을 출원했고 벤처기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IT산업 쪽에 지대한 관심이 쏠린 국내 상황에서는 찾기 힘든 매우 드문 경우다. 현재 서울디자인재단의 서울디자인창작지원센터에 입주해있는 펀잇쳐스의 제품은 CJ, 롯데닷컴, GS샵, 텐바이텐 등 유수의 사이트를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후 국제디자인공모전 금상 수상을 계기로 한샘과 인연을 맺고 가구디자인을 시작한 그는 펀잇쳐스 외에 한샘의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샘의 시스템바스 라인업 구축작업을 진행중이다. 한샘 시스템바스는 기존의 자재시장위주의 서구적이며 획일적인 욕실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자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평면 및 구성으로 제시되며, 1일만에 시공 가능한 현대적 개념의 획기적인 시스템욕실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가구회사가 외국의 유명한 디자인회사에 한국 아이들을 위한 가구디자인을 의뢰한 적이 있어요. 결국 제품화되지 못했는데,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어요. 왜 아이들의 침실에 학습을 위한 영역이 중요한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들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와 삶에 대한 이해, 이것이 가구디자인에 있어서도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서양에서 건너온 가구디자인, 그들이 그들의 문화적 토양위에 매우 오랜 시간 쌓아온 결과물들을 무작정 따라갈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생활을 담는, 우리를 위한 가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할 일이죠.”
조용한 가구, 그림자 같은 가구를 만들기 위해 그가 중점을 두는 것은 우리의 정서와 문화다.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입식가구문화는 아니었잖아요. 적극적으로 입식가구를 쓰기 시작한지가 한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수천년 전부터 입식가구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기호를 무조건 따라만 가면 안 되죠. 가구디자인에 있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와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좌식과 입식을 같이 경험하고, 더 좁은 공간을 점유하며 사는 우리안에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내재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원하는 가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구, 사용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가구가 바로 펀잇쳐스인 셈이다.
www.funitu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