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인터뷰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르코 브루노

2011-04-15


한 나라의 디자인은 현시대의 트렌드와 기술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풍미했던 현상들과 역사를 모두 포함하는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 교육수준, 생활환경이 모두 담기는 것이 바로 그 나라의 디자인인 셈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만의 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디자인도 그러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디자인에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스타일은 무엇일까. 매거진 정글은 d-페다고지 소장 조현신 교수를 통해 이탈리아 디자이너로 마르코 브루노를 만났다. 9년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가 바라보는 한국의 디자인은 어떤 모습인지, 마르코 브루노와 조현신 교수와의 대담을 들어본다.

대담 | 조현신 디자인 연구소 d_페다고지 소장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한국엔 언제, 어떻게 오게 되었나?

나의 디자인 사무실에 시모네라는 파트너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회사를 두고 있을 때 그 친구가 한국으로 출장을 오게 됐고 이곳에 지점을 두는 것이 어떨까 제안을 해서 오게 됐다. 그때가 2002년이니까 현재 9년째이다. 한국에 처음왔을 땐 컨설턴팅 프로젝트와 같은 일을 주로 하다가 그 이후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다. 건국대학교에서 8년간 강의를 했고 지금은 한양대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 제품 디자인을 가르친다.

작년에 작고한 알렉산더 맥퀸은 “나는 악을 디자인하고 싶다“라는 말로 디자인을 통해 인간의 억제하기 힘든 본능을 표현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디자인 콘셉트 혹은 지향하는 바를 간단히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공간을 벗어나기(out of place)’라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인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에 오래 살아서 이제 이탈리아에 돌아가도 그곳을 바라보는 시야가 과거와는 다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이 out of place이다. 이 콘셉트는 현대사회에서 평범한 개념인 것 같다. 살던 곳이 자주 바뀌고, 대부분이 새로운 지역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out of place라는 우리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out of place는 결국 ‘좋은 장소가 되기 위한 것(good place to be)’이다. 항상 다른 방식으로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잘 알지 못하는 장소를 바라보는 관점 등 각각의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에 왔을 때의 인공 환경에 대한 첫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어떤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너지’였다. 그에 대한 느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많이 변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청계천에 고가도로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슈였다. 서울시장이 자신이 시장이 되면 청계천 고가를 없애겠다고 말했을 때 난 믿지 않았다.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환경의 변화에 대한 에너지와 빠른 속도는 정말 놀랍다. 그것은 반드시 무언가를 해낼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끔 세련된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또한 변화되고 고쳐질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에너지와 가능성,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긍정적인 면이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
이와 같이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한국은 오로지 시장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디자인과 문화가 시장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문화를 리드한다. 한국인은 테크놀로지 사용에 있어 매우 빠르고 한국의 회사들은 개발에 매우 강하지만 무언가가 시작되는 근본점은 다른 곳에 있다. 삼성갤럭시와 아이폰의 차이 같은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잠재력은 분명 있지만 난 그것이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 한국은 서울시가 많은 시간과 노력, 자본을 들여 서울의 디자인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디자인 시티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국인으로 미처 보지 못하는 단점과 장점을 이야기해 달라.

좋진 않았다. 무언가 좋은 것을 찾기가 솔직히 어려웠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대중문화가 그러했다. 어떠한 현상이 몇몇 사람들에게 있으면 그것이 곧 모든 사람들에게 퍼진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모든 곳의 모든 것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같지만 모든 것이 독특하다.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등의 방문화도 인상적이었다. 이해할 때 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한국의 대중문화는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고 본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것을 느끼는데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디자인을 자신의 것들과 비교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무엇이라고 느끼는가? 특히 도시 디자인을 중심으로 이태리 도시와 한국의 도시 디자인, 그 둘의 차이를 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나?

내가 한국의 도시에 대해 느끼는 것은 아시아의 일반적인 문제라고 여겨지는데 한국의 도시는 이런 문제에 있어 극단적으로 심한 예인 것 같다. 외국의 경우 도시 내 오래된 건물들은 도시에 기부하는 것들이 많다. 오랜 시간을 있어온 만큼 많은 것들을 전해준다.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다. 건축물을 지을 때도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부자들은 궁전이나 대저택을 도시 안에 짓는다. 아름다운 곳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기 위해 길거리 중앙에 짓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부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짓는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 힘든 곳이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은 상호적인 영향을 낳지만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는 매우 사적인 측면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빌딩에 대한 영속성이다. 유럽인들은 빌딩을 지을 때 영원할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건설도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헐리지 않을 거라는 영원성을 믿는데 한국에서는 건물에 대한 이런 의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 도시 디자인 중 특이하게 생각되거나 이야기 거리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자.

청계천이 가장 큰 이슈일 것 같다. 청계천은 친근하지만 매우 인공적이다. 펌핑을 통해 깨끗한 물이 흐를지는 몰라도 콘크리트가 매우 많고 자연은 찾기 힘들다. 많은 다리들을 다 다르게 만드는 것도 좀 이상했다. 모두 다른 디자인에서 난 어떠한 흥미로운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작업이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화와 통일성이 있어야하는데 제각각의 다리들은 ‘브릿지 테마파크’를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이유는 한국이 디자인에 있어 책임감을 최소화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하나의 마스터 플랜이 필요한 디자인을 모두 다른 곳에서, 여러 기업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나뉜다. 공공의 디자인이 정말 공공의 디자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특정기업의 이익과 연관된 느낌이 강하다. 한국의 투자와 변화는 좋지만 아직 시장논리에 지배되고 있다.

어느 나라가 가보면 그 곳의 독특한 디자인 현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인상은 자연이나 전통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 강하게 부각된다. 모던 디자인만을 두고 볼 때 한국의 모던 디자인에 대한 인상을 언어로 요약해 볼 수 있을까 ? 예를 들러 ‘일본은 미니멀적이고 완성도가 높다’등의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한국의 좋은 모던 디자인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매우 어렵다. 좋은 디자이너들과 좋은 건축가들은 많이 봤다. 승효상이나 조민석 등은 매우 훌륭한 건축가이다. 한국의 모던 건축물에서 좋은 예를 꼽자면 파주를 꼽겠다. 파주 북시티는 전체적으로 정리가 잘되어 있고 공간구성이 매우 잘되어 있다. 환경이 긍정적인 면을 주는 것 같다.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쉽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아이덴티티에 있다. 한국사람들이 외국에 나갔을 때 대부분 일본사람 혹은 중국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한국은 그 다음에 나온다. 이것이 바로 아이텐티티에 대한 문제를 증명한다. 한국은 정의가 어렵다. 한국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제품은 매우 훌륭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한국의 디자인에서 뚜렷한 이유와 근거를 찾긴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엔 매우 많은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사무실이 청계천 광장시장 앞에 있는데 그곳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아이덴티티는 문화적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리노베이션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세운상가, 종로 등이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 생각된다. 매우 매력적인 곳인데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한국의 디자인 상황과 이탈리아의 디자인 상황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탈리아에서는 디자인이 아이디어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산다. 로열티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고 아이디어를 팔면 그 제품에 대한 로열티가 지속적으로 디자이너에게 지급된다. 하나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그것을 기업에 팔면 당시엔 적은 돈밖에 받지 못해도 지속적으로 그 제품이 판매될 때마다 이윤이 발생하고 그것이 모두 디자이너의 몫이 된다. 심지어 블랙마켓에서 제품이 판매되어도 디자이너에게 로열티를 지급한다. 제품의 판매가 성공적이면 그만큼 많은 금액을 디자이너가 받게 된다. 매우 합리적인 방식이다. 정부는 작은 회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이 시스템화 되어 있다. 윈-윈 시스템이다. 또 하나의 다른 점은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대 공동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룹 작업, 그룹 프로젝트 같은 것을 그들은 하지 않는다. 서로 경쟁이 매우 치열해 결과적으로 좋은 디자인을 뽑아내지만 비즈니스엔 별로 좋지 않다. 와인을 예로 들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 와인은 매우 잘 알려진 반면 이탈리아 와인은 그렇지 않다. 때론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이 많은데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의 자부심이 너무 커서 그것을 더 잘 팔기위한 비즈니스적 방식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이와 마찬가지다.
문화와 연관된 도시의 모습으로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는 매우 느리다. 무언가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고 오래 걸린다. 이탈리아는 과거로부터 전해져온 많은 것들을 여전히 갖고 있고 아름다움을 갖고있는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 과거의 것들을 유지시키는 데도 돈이 많이 들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현재의 사람들이 여전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살고 있고 화장실을 가고 요리를 해먹고 잠을 잔다. 건축물 등 도시곳곳에서 과거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외국의 디자이너로부터 ‘한국의 디자인은 너무 아카데믹하다, 디자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매니지먼트를 가르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르치는 것은 매우 엄격한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 건축 등 예술적인 것은 룰을 깨는 것에서 비롯된다. 좀 더 자유로운 사고와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 있어 엄격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디자인을 가르치지 않지만 주변을 통해 70%가 매니지먼트, 30%가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 같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점은 학생이 프로듀스를 할 것인지, 고용인이 될 것인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만약 기업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된다면 그러한 교육이 괜찮지만 어떤 일을 프로듀싱할 땐 그렇지 않다. 이러한 교육적 특성 또한 한국의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늘날은 과거의 혁명에 의한 결과이다. 누군가 정해진 규칙들을 깼기 때문에 오늘날의 새로운 디자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에 제안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학생들의 마지막 과제final project)가 가장 실망스럽다. 마지막 프로젝트는 디자이너로서 모든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가장 형편없는 프로젝트를 보여 주는 것 같아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탈리아에서는 결코 패스 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패스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취직과 연결된다. 졸업시험은 9월이고 12월에 학교가 끝나는데 이것이 너무 이상하다. 학생들은 1학기를 잃게 된다. 대신 그들이 택하는 것은 취직을 위한 인터뷰다. 2월에 인터뷰를 해도 되지 않나. 이런 점들을 볼 때 한국은 시장이 교육을 컨트롤하는 느낌이다. 우선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기업에 가는 것이 맞는 순서인데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 취업이 되면 심지어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도 있다. 외국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상태로 학위를 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은 결국 이러한 한국의 문화와 연관이 되어 있으므로, 서서히 바뀌어갈 것이지만 누누이 말한 것처럼 시장 지향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므로, 일상적인 삶의 즐거움을 위한 디자인을 생각하는 시기가 되면 디자인 교육도 여러 가지로 바뀌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국 디자인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매우 긍정적이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이 보이지만 분명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나라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그러한 변화가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열정, 에너지, 속도 이 모든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빠른 속도만큼 많은 에너지만큼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을까.


마르코 브루노(MARCO BRUNO)는 1968년 이탈리아 생으로 Politecnico di Torino(Italy), Southern California Institute of Architecture(U.S.A.)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연구소를 운영하다 2002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지사를 만들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경기 파빌리온, APAP ARCHITEUTIS, 한옥 등의 프로젝트를 해왔다. 공간을 다루는 작업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예술작품을 기획, 선보이기도 한다. 건축연구소 MOTOElastico(Research Lab of Architecture MOTOElastico)의 소장이며 한양대학교 교수로 한국의 학생들에게 인테리어와 건축, 제품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www.motoelastico.com

facebook twitter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