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1
한국 디자인의 조용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학교가 있다. 얼마 전 독일 iF(International Forum)의 Design Concept Award 부문에서 다섯 점의 수상작을 내며 그 저력을 과시한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가 바로 그 곳. 전문 디자인 학교로 시작한 SADI는 2010년 석사과정(SADI MDes) 1기를 모집하며 한국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물꼬를 트고 있다. 총 3학기로 진행되는 SADI의 석사과정에서 인상적인 것은 여러모로 독특한 학제이다. 1학기는 영국 웨일즈에 위치한 UWIC에서 디자인연구방법론을 학습하고 나머지 두 학기는 SADI에서 강의 및 세미나와 함께 개인 또는 그룹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고. 얼마 전 영국에서의 한 학기를 보내고 돌아온 SADI MDes의 네 명의 멤버를 만나보았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Jungle : 각자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김민지(이하 민지)_ 2005년도에 프랑스로 가서 불어학과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2학년 때 디자인전공으로 편입해서 2010년 여름에 졸업했고 인턴을 조금 하다가 영국으로 갔다. SADI MDes 프로그램은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임혜민(이하 혜민)_ SADI로 편입해서 프로덕트 디자인으로 졸업을 했다. 그 이후 10월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해신(이하 해신)_ 계명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친구를 통해 SADI를 알게 되었다. 이후 석사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참여하게 되었다.
김지연(이하 지연)_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디자인을 너무 하고 싶어서 SADI 프로덕트 디자인과에 입학했다.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이 과정이 처음 생긴 것을 알고 바로 석사를 시작했다.
Jungle : 많은 디자인 교육기관이 있는데 굳이 SADI를 선택했는지가 궁금하다.
혜민_ 고등학교 때부터 알게 되었다. 입시미술을 준비할 때. 그때부터 관심 있게 봤다.
Jungle : 어떤 부분이 관심을 끌었나?
혜민_ 가장 큰 요소는 삼성이 학교의 모체라는 것이었다. 학생들도 진짜 열심히 한다고 들었고. 미국이나 영국, 예를 들어 파슨스 같은 학교와 연계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후에 그 학교로 편입도 할 수 있다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해신_ 아는 언니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쉽게 말해 디자인 베이스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 곳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하고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유학을 했다. 이후에도 미국에서 좋은 회사를 구해서 일하고 있고. 지인으로부터 얘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SADI를 품게 된 것 같다.
Jungle : 석사과정의 첫 학기는 어떻게 보냈나?
지연_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에서 함께 공부했다. 그 곳은 아트와 디자인을 함께 가르치기 때문에 상당히 자유분방하다.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려하게 되는 상업적인 부분보다는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철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Jungle : 얼마 전에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인터뷰했었다. 아쉬운 점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비해 스스로의 철학이 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업을 하면서 각자마다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플러스 알파의 요인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신_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혼자서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그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대안들이 나온다. 그래도 너무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눈 앞에 놓인 것들 것 많이 관찰하며 계속적으로 키워드를 빼낸다.
민지_ 평소에 노트를 많이 하는 편이다. 사용자로서 제품을 사용할 때 불편했던 것들이나 발전시키면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아이폰을 샀다. 3주 간 아이폰을 쓰면서 불편했던 점, 배드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점들을 메모해보았다. 그런 요소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또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일부러 하나를 더 만들어서 동시에 두 개를 진행한다. 그러면 두 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시각을 새롭게 만드는 역할 같은 것을 하는 것 같다.
Jungle : 부지런한 것 같다.
혜민_ 제품 디자이너로서 나의 가치관 중 하나는 세상에 굿디자인은 많지만 퍼펙트한 디자인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이유는 점점 더 사람에게 맞춰진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이고. 개선될 수 있는 방향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제품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 같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무의식을 일부러 의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Jungle : 난 모든 디자인에 잘 적응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될 수 없나 보다(웃음).
혜민_ 예를 들어 비디오를 작동시키며 능숙치 않을 때는 보통 자기 탓을 한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디자이너가 리모콘을 잘못 만든 거다.
Jungle : 불편함을 간과하지 않는?
혜민_ 그게 본질이다.
지연_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습관적으로 책을 읽을 때 좋아하는 문구를 눈 여겨 본다. 그런 습관들이 디자인할 때 무의식적으로 적용된다. 책을 많이 보고 미술관 가서 그림도 많이 보고… 영국에서도 많이 보러 다녔다.
Jungle : SADI에서 가장 도움되거나 인상적인 커리큘럼이 있다면 무엇인가?
혜민_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편입했다. 그 전에 공부했던 디자인은 그다지 이론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았는데 이 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전에 특화된 커리큘럼이었다.
지연_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SADI에서는 내가 안으로 쌓아둔 것들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알려주었다.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3학년 때 인턴을 나갔는데 SADI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민지_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했고 유학 가서는 사진, 유화,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예술적인 기초를 배웠다. 파리에서 디자인학교에 진학해서는 실용적인 커리큘럼을 많이 배운 편이다. SADI 석사과정 첫 학기 때 영국에서 한 수업은 디자이너로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을 심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나중에는 이 이론이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넓은 베이스를 심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모르고 지나갔던 것을 다 짚어볼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나중에 다시 못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신_ 학부 때는 디자이너니까 조금 더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깊게 공부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Jungle : 영국에서 생활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지연_ 영국이 우리나라랑 달랐던 점이 시야에 뭔가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넓다. 그 곳의 숲이 변하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곳의 학교는 토, 일은 아예 건물 문을 열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열리지도 않은 건물 앞에 서서 서로 해온 것들을 보여주고 그랬던 것이 기억난다. 열정에 휩싸였던 시간들. 그곳 친구들이 우리에게 한국 걸들은 정말 씩씩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해신_ 기숙사가 너무 재미 있었다. 난 원래 혼자 사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숙사가 체질이더라. 그 곳에서 홍콩이랑 말레이시아에서 온 친구들이랑 친해졌다. 밤이면 무비나잇이라고 함께 영화 보는 시간도 가지고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에도 분장하고 함께 게임하고 그랬던 것이 너무 즐거웠다. 바쁜 가운데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언어나 문화가 다르면 통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
혜민_ 길거리를 지나다가 5, 60대 정도 되는 아저씨랑 10대 청년이랑 싸우는 걸 봤다. 그게 인상적이었다.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나의 인생에 비춰 봤을 때는 어른이라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이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더라.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었다.
민지_ 교수님 중에 클라이브 교수님라는 분이 계셨다. 중후하시고 말씀도 느릿느릿하고 진지한 분이다. 한 학기 동안 두 번인가 세 번인가 프로젝트 발표를 했는데 끝나면 꼭 술을 사주셨다. ‘Let’s talk, Let’s Party.’ 이렇게 쑥스러워 하시면서 학생들을 모으신다. 함께 술을 마시면서 발표 때는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Jungle : 앞으로 어떤 디자인들을 하고 싶은지?
지연_ 사람들의 미래 생활에 관심이 많다. 현재 만들어 낼 수 있는 제품보다는 앞으로의 트렌드나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디자인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해신_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편리한 것만 찾는 것 같다. 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디자인보다는 사람을 활기차게 만드는 제품이나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싶다.
혜민_ 평생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에는 제품의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그 솔루션을 늘 제품으로 한정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문제점을 제품을 넘어 무형의 어떤 것으로 확장시키는,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민지_ 문화와 항상 링크가 되어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파리에서 했던 졸업작품 역시 특정 문화공간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이었다. 디자이너로서 문화를 리드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