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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그가 갈 길은 디자인적인 통섭

2009-09-15


디자인에 내재된 본질적 가치는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간환경디자인학회가 담론의 장을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홍경 초대 회장을 만나서, 디자이너로서 사명감을 일깨우게 만드는 공공디자인에 대해 들어보았다.

에디터ㅣ 이안나(anlee@jungle.co.kr), 사진ㅣ 스튜디오salt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국회의사당 한 켠에서 한국의 공공디자인을 고민하는 학회가 시작됐다. 한국공공디자인학회의 밑거름이 된 자리였다. 자비를 내가면서 공공디자인을 공부하려는 회원들은 국회의원, 교수, 디자이너 등 층위가 다양했지만 목적은 한결같았다.

선진국과 디자인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었다. 공공의 선을 추구하자는 학재를 펼쳤던 당시 한국공공디자인학회 신홍경 부회장은 지난 1월부터 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 초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신 회장을 만나 쌓인 질문을 털어 놓았고, 그는 하나씩 주워 담듯 대답해주었다.


공공디자인이 귓가에 들리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우선 한국공공디자인학회가 있는데도
맥락이 비슷한 공간환경디자인학회가 신설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 차이점이 궁금했습니다.


의의는 중요하지요.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 서있는 디자인의 현실은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반등의 기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적인 모색이지요. 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는 통섭적 기반 구축과 유연한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학회가 말하는 통섭은 무얼 뜻하는 것인지

통섭은 한자로 풀면 어려운 단어입니다. 비슷한 말로 융합이 있는데요. 서울대학교 최재천 교수님이 말하는 통섭은 수평적인 학문을 의미합니다. 20세기는 학문 간의 장벽이 컸습니다. 학문의 분화가 원인이었지요.

도시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공공디자인의 측면에서 통섭은 매우 중요하네요

21세기 사회에서 살아가는 거주자들의 생활양식은 무엇이며, 사람들이 자기 집이 아닌 공공의 공간에서 체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통섭을 떠오르게 합니다. 전기, 도로망, 건축 등 분야별로 전문가는 있지만 도시 안에 담기 위해서는 모든 시설이 소통해야 합니다.

학회에서 담론을 나누다 보면 선진국의 공공디자인이 거론되기 마련입니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천 년의 시간이 담긴 공공디자인을 보셨을 텐데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건물들의 고도를 제한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반경 30km에서 교회 종탑이 보이도록 건물의 높이를 정한 것이지요. 지붕이 있는 4~5층 건물 정도되는 높이지요. 100년이 넘은 건물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중심지에는 광장이 있어서 현실과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체코의 프라하 중심지에서 본 유태인 묘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1400년대에 만든 비석이 그대로 보존된 묘지는 역사의 보고이기도 했습니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서서히 침식됐기 때문에 크기가 모두 제각각인 것이 인상적이지요. 한국에서는 돌덩어리 하나도 침식되지 못하고, 세월의 때가 묻은 것들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대로 한국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학회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앙상블입니다. 문제를 바로 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책임 있는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학회의 뜻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디자이너로서 공공시설물이 점점 커지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광장문화를 발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장은 희로애락을 담는 그릇입니다. 낮밤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을 시민에게 열어놓는다면 간판이 클 필요가 없지요. 큰 광장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광장을 만들어 작게 무리 지어 모이는 것을 뜻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거리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공공디자인이 잘못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꼬집을 점은 없으신가요

국회에서 3만원씩 내고 뜻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대담을 나누었던 공공디자인 학회는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누구보다 한국의 디자인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기에 공공디자인이 정착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지요. 그 후 지자체에게 공공디자인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고 각종 캠페인도 벌였습니다. 서울시 오세훈 시장님이 디자인총괄본부를 신설하면서 체계가 잡힌 초기 학회의 공공디자인 강령은 ‘비우자’ 였습니다. 지하철 캐노피, 간판 등을 축소시켜서 간단하게 만들자는 의도였지요.

하지만 지자체마다 엠블렘을 만들고 각기 다른 가로등에 버스 쉘터까지 경쟁적으로 만들면서 공공디자인이 과잉화 되었습니다. 미술용어로 ‘키치’적이고, 조악해 보이는 시설물이 거리를 가득 매웠습니다. 전시행정도 원인이지만 입찰제도나 디자이너가 지불하는 비용 등이 저가로 책정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국가가 발주하는 모든 프로젝트에는 베스트가 참여하기 힘듭니다. 무색 무취한 작품이 일반적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요.

지금은 서서히 일류라고 부를 수 있는 디자이너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후학들에게 우수한 선례를 보여주면서 공공디자인 수준을 끌어 올리려는 의도지요. 건물은 낡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낡음이 멋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지금 가장 해야 할 일입니다.

상반기 하반기로 나뉘는 학회의 사업계획은

7월 18일 일본 도시디자인학회와 MOU 협정을 맺고 공동활동을 약속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시장 품평회에 진출한 국내 산업체 지원을 계획 중입니다. 일본의 공공디자인은 이제 마무리 수준으로 지금은 유지 보수하는 단계입니다. 배울 게 있다면 적극 수용해서 한국의 공공디자인을 문화이자 생활로 정착시키려고 합니다. 해외 학회 탐방과 워크숍, 학술지 발간 등 학회에서 진행할 사안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 회장님은 공공디자인의 반경 안에서 사셨습니다.
공공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알리던 5년 전에 비해서는 눈에 띄게 성장한 지금 감회가 어떠신가요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깃발을 든다’라는 말인데요. 지금은 제가 학회의 깃발을 들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임을 잘 압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흔들다 보면 학회의 내실이 다져진다고 믿는 까닭에 열정적으로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 사회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의 영속성을 얻어야 가능해집니다. 돌이켜보니 공공디자인 안에서 숨쉬면서 살고 있었군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계속해서 공공디자인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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