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07
디자이너 은병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한국 최초의 디자인컨설팅회사 212 Inc을 설립하고 19년간 350여 개가 넘는 히트 디자인을 제작한 산업디자이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공예 브랜드인 '비움(VIUM)'을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구적인 제품 디자이너에서 한국 전통의 디자인 회사로의 전향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움은 우리의 우수한 문화유산 속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생활용품 브랜드이다. 말 그대로 '비우다' 라는 우리말에서 착안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에서 우리의 전통미를 살린 '비움'이라는 전통생활용품브랜드를 만들기까지 결코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비움'이란 브랜드에 수십억 원을 쏟아 붓고도 큰 수익을 내지 못해, 이대로라면 브랜드 이름대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고유의 전통을 기능성과 실용미를 재해석하여 현대 제품에 적용한다면,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고 힘든 고비를 넘어 또 한번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비움은 1997년부터 동서양의 문화를 재해석한 디자인 철학과 컨셉을 정립하고, 인간문화재, 명장들과 함께 실제적인 디자인 적용과 시제품 제작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총 100여 가지의 자체 브랜드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취재|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누구에게나 시작은 비슷하지만, 얼마나 큰 꿈을 가지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많이 변화해 간다.
은병수 디자이너 또한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회사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디자인전문 회사를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고, 입사 1년 반 만에 어렵게 유학 길에 올랐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자신에게 좀 더 투자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다시 회사에 돌아가는 길 대신에, 작은 디자인 회사를 만들었다. 한국에 들고 온 것은 미래에 대한 부푼 꿈과 단돈 25달러가 전부였지만 열정만은 누구도 그를 따라오지 못했다.
은병수 디자이너는 매형이 운영하던 회사에 반쪽자리 사무실을 얻어 후배들과 작은 회사를 만들었다. 기반도 제대로 닦이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를 만드는 것은 무모하리만치 힘든 일이었지만 말이다.
디자인을 돈 주고 한다는 생각이 없던 1989년, 그는 디자인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를 알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브로셔를 만들었고, 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해야만 했다. 대접받기는커녕 말 그대로 영업사원과 다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어떤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웅진 코웨이에서 새로운 제품 출시를 위해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들은 소식으로 먼저 디자인 프로포즈를 냈다. 그게 회사가 만들어진지 2년째 되던 해에 있었던 일이다. 제품 디자인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디자인이 나오고 양산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걸려야 시중에 유통될 수 있다.
회사가 만들어진지 3년째 되던 해에 그 디자인이 시장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히트를 하였고, 그제서야 212디자인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 성공 사례가 생기자, 다른 기업으로부터 디자인 의뢰가 줄을 이었다.
힘든 시작이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고 은병수 디자이너는 회고한다.
▶ 212 디자인의 대표 프로젝트 소개
212 디자인에 이어 시작한 비움은 우리의 전통적인 유, 무형 문화를 재해석하여 현대화한 작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동양과 서양의 조화, 공예와 디자인의 접목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개념과 디자인은 은병수와 안혜진, Marc Cuneot 등 여러 명의 스텝 디자이너 그리고 외부의 이나미(바프스튜디오)등이 맡았으며, 제작은 무형문화재(이형만, 서태랑 선생 외)와 공방, 중소 공장 등이 진행하였다.
2001년도 1차로 발표된 작업은 결과는 목기, 나전, 섬유, 도자기, 죽, 돌, 종이류의 130여점이며, 2차로 2003년도에 4가지 테마의 장신구류가 선을 보였다.
1,2차의 작업은 가능한 자연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진행되었으며, 제작상 질적 수준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포장 방법 또한 전통 보자기의 개념을 도입하여 소량 다품종의 다양성을 적절히 소화하고 있다.
자신의 아픈 곳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의 아팠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아니 아팠던 과거가 아니라 값진 경험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런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비움'이 다시 도약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Scent of woods Wood Products_목기제품군
Story of Design_금속제품군
Story of making_죽제품군
Story of Design_전각제품군
첫 번째 값진 경험
1993년에 열린 대전엑스포에서 212디자인은 전기스쿠터부터 태양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그의 표현으로 그곳의 바퀴 달린 것은 모조리 디자인을 했단다.
원래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열정을 다해 일을 했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다 보니 그것을 구현 할 방법이 없었다. 그 당시 자동차 양산을 할 수 있었던 곳은 대우, 기아, 현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나 있던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에서도 그를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의욕이 앞섰고, 일에 애착이 컸던 만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일산에 작은 자동차 모형 공장을 차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조그마한 회사에 노사가 있을 정도로 공장장과 종업원들간의 갈등이 컸고, 3년 만에 그 동안 벌었던 것을 모두 잃고 문을 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은병수 디자이너가 겪었던 첫 번째 고비였다.
두 번째 값진 경험
항상 기업체의 의뢰를 받아 일을 하다 보니, 디자인이 100% 반영되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기업과 소비자와의 합의점을 찾아가며 깎이고, 수정되면서 수많은 디자인의 변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94년 어느 날 회사로 팩스 한 장이 날아들었다.
영국 디자인 박물관에서 아시아 특별전을 하는데 212의 대표 디자인 제품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막상 고르려다 보니 맘에 드는 작업물이 없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설계력이 부족하다 보니, 외부 디자인을 비슷하게 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디테일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시발점으로 보다 독창적인 디자인을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1995년부터 우리나라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민예품을 찾아 다니며 근 2년간 공부를 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조사한 내용을 활용해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러다가 IMF가 찾아왔다.
많은 회사들이 힘이 들었듯이 212 디자인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여서 사옥을 팔고, 거꾸로 그 곳 지하실에 세를 들어가 일을 할 정도로 고된 날이 계속 되었다. 바로 그것이 은병수 디자이너가 겪었던 두 번째 고비였다.
하지만, 일이 없고 시간이 많아지자, 예전에 하고 싶었지만 일이 바빠 미처 하지 못했던 한국 전통 디자인을 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비움이다.
세 번째의 값진 경험
비움은 우리의 전통적인 유, 무형 문화를 재해석하여 현대화한 작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공예와 디자인을 접목하여 새로운 영역의 확장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9년부터 3년간 준비했던 내용을 2001년 8월에 미국의 뉴욕 매장에서 처음 런칭을 했다. 이는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를 지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움의 이러한 화려한 외출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곧이어 911테러가 발생하고 말았다. 원래는 상관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필요도 없었던 사건이었지만, 하필이면 매장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뉴욕 매장을 접을 수 없었다. 1,2년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을 내다보고 비움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때까지 계속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동안 그곳에서 적자를 냈다. 그것이 은병수 디자이너의 세 번째 고비였다.
또 다른 새로운 시작
누구나 살아가면서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그는 실패라는 말을 결코 쓰지 않는다. 원래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끝내고 비움은 이제 한국 전통 브랜드로써 날개를 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1997년부터 동서양의 문화를 재해석한 디자인 철학과 컨셉을 5년에 걸쳐 정립하고, 총 1000여 가지의 자체 브랜드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현재, 뉴욕과 일본, 한국에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2006년에는 보다 대중화된 브랜드로 한국 주요 매장에서 비움의 상품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비움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고유 문화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열정에서 비움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꿈은 언제나 노력하는 자의 것이니 말이다.
Jungle : 원래 성격이 어떤지..
예전의 나는 목표를 정하면 어떻게든 이루려고 노력을 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최근 4~5년간 비움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 한국적인 넉넉한 정서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걱정을 하기보다, 일이 정당하다면 된다고 믿는 편이다.
이 일 또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유학을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에게 있었던 전 재산은 모두 50불이 전부였다. 한국을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귀여운 꼬마에게 25불짜리 과자를 선물했고, 한국에는 왔을 때는 내 주머니에 25불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비웠을 때, 넉넉한 가슴을 가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Jungle : 한국에서 비움의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데..
지금 현재는 수공예품으로 주문에 의해서만 제품을 만들고 있다. 주로 기업체에서 외국인 손님 선물용으로 나가고 있다.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상품으로 한국에서보다는 외국에 먼저 알리는 것에 힘썼다. 해외 유명 전시에 많이 선을 보였고 앞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보다 대중화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아시아 10개국을 돌며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진행할 적합한 외주 업체를 찾고 있다. 옻칠하면 베트남을 손에 꼽듯이 보다 완성도 높은 한국 전통 공예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2차 상품 출시는 내년 하반기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Jungle : 지금도 힘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낫다. 212는 디자인만 관여를 하고, 비움은 행정적인 것들이 발생이 안되도록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과 기획 전반에 관해서만 진행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행도 자주 다니고, 보다 한국적이고 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컨디션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작년에도 파리에서 초청전시를 매장 오브제에서 작게 전시를 했고, 올해는 12월 달에 뮌헨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다.
예전에는 대규모로 많은 돈을 들여서 움직였다면, 지금은 1년에 한나라씩 템포를 늦춰서 일에 퀄리티를 높이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Jungle : 한국 디자인의 매력에 대해 말해달라.
일단은 가장 단순하게 말을 하면 아름답다. 그것을 재현을 못하고 자연스럽게 못 만들어서 그렇지 모티브가 너무나 아름답고 모든 제품에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것을 모두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런 모티브를 활용해 가지고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다.
한국적인 것을 알고 처음 도입을 했던 것이 ‘백세주’ 였다. 너무나 성공을 했던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가전 제품의 경우에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접목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Jungle : 앞으로 한국적인 것을 제품 디자인에 가미할 생각이 있는가?
현재 준비 중이다. ‘바프’와 함께 1년째 우리나라 각 지역에 퍼져 있는 문화 자원을 찾아 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첨단 벽걸이 TV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멋있는데 별 감흥이 없다.
과거에 솔루션은 TV에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삼성에서 TV 케이스를 옻칠을 했다. 그건 솔루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장식일 뿐이니 말이다.
일이 잘 풀린다면, 내년 중반쯤에는 우리 전통적인 색깔이 묻어나 있는 하이테크 제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Jungle : 일 중독 증세가 있다고 말을 하는데?
우리는 해가 떨어지면 일을 하지 않는다. 주 5일 근무한지가 벌써 10년이 넘는다. 중소기업으로는 가장 오랫동안 진행을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가 안정적인 구조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날마다 머리 속에 있는 내용을 반복할 수 없지 않은가.
맨 처음 주 5일 근무제를 할 때 클라이언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동응답기에 ‘매주 토요일은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을 위해 영혼의 충전을 하는 날입니다. 월요일에 전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남겨두었던 기억이 난다.
Jungle : 생활신조가 있다면..
늘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는 항상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너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행동하되, 꿈꾸고 생각하는 것들은 친구들과 나누고 힘을 합치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번에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전시를 맡았는데, 이것은 우연히 내 생각을 친구와 나누었던 것이 알려져 진행하고 된 것이다.
1년 반이 넘게 10개국이 넘는 아시아 국가들을 탐방하면서 서양인들이 아시아문화를 무시하는 성향에 대해 많은 반감을 느꼈다. 실제로 돌아본 아시아 국가들에는 대단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움이 처음 뉴욕에 런칭 할 때, ‘Hidden Travel of Korea’라는 기사가 크게 났다. 그 기억이 나 이번 전시 제목은 ‘Hidden Treasure’ 이라고 붙였다. 현재, 아시아 10개국에서는 이번 전시를 위해 물건이 오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고 노력하는 것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무모한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Jungle : 디자이너로써 몇 점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뒤를 되돌아 봤을 때, 디자이너로써 부끄럽게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100점 만점에 70점을 주고 싶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것이 350개 정도 되는데, 그 중에 맘에 드는 것이 50~60개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디자인 점수가 훨씬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디자인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고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욕심을 포함해서 말이다.
비즈니스적으로는 낙제지만, 디자이너로써는 그렇게 나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Jungle : 교육자로써 강단에 설 생각은 있는가?
가르치는 것은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지인들의 부탁에 의해 가끔씩 강연을 하지만 결국 나도 만족을 잘 못 느끼고, 만족을 못 느끼는 일을 매주 가서 해야 한다는 것이 힘이 들다.
가르치는 것보다는 디자인을 통해 한국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 더 보람된 일일 것 같다. 우리나라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는데 열정을 쏟고 싶다.
그리고 디자인 환경 개선을 위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수도 많고, 재능이 많은 반면 재미있게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대접받는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Jungle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15년 정도만 비움과 함께 일을 하고, 다른 전공을 배워볼까 생각한다. 인생은 60부터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꼭 학교에 간다던가 그런 것보다는 보다는 내셔녈 지오그라피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발굴 현장 같은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곳을 따라 다니면서 작은 소도시를 여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