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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패션, 그로테스크의 시작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 2015-06-18


혹자는 패션을 ‘발랄하고 상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패션은 멋있고 아름답거나, 황홀하거나 위트 있거나, 세련되거나... 이 모든 패션의 긍정적 아우라를 우리는 '시크'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패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하며 광범위하다.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현대의 패션을 살피다 보면 그저 '예쁘다', '멋있다'의 범주 이외에 '그로테스크'한 것을 추구하는 패션이 있다. 그로테스크는 15세기 말 고대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동굴과 흡사한 벽 모양의 괴이함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그로테스키(grotteschi)라는 일종의 괴기취미가 유행된 것을 뜻한다. 이후 일반적 예술에 있어서 그로테스크는 '환상적인 괴기성'을 가리키는 것이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괴기스러운 것, 흉측한 것,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199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행위예술가이자 여러 다른 방면의 예술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리 보워리(Leigh Bowery)는 말 그대로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작품활동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2012년 8월 서울 코리아나미술관에서 ‘마스커레이드(Masquerade)’전으로 선보이기도 했던 그의 작품들은 질서와 억압에 도전하며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으로의 변장이었다. 즉 자기 변형 퍼포먼스로써 사회가 강요한 질서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한 것이다. 어릿광대처럼 과장된 화장에 남녀를 뒤섞은 옷차림으로 클럽무대에 올랐던 그는 1980~90년대 런던과 뉴욕에서 전위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자기 내면의 다양한 타자(他者)를 드러낸 그의 퍼포먼스는 이후 동시대 가수 보이 조지(Boy George), 엽기적인 소재를 다양하게 이용해온 예술가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그리고 5년 전(벌써 5년이 흘렀다!) 타계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로테스크는 고딕문학과 데카당 문화의 영향과 함께 다양한 예술 방면에서도 그 모습을 계속해서 이어오던 반미적(反美的)인 표현이다. 또한 21세기 그로테스크는 독립된 예술 경향으로서 영화, 문학, 회화, 퍼포먼스 등에서 이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가장 크게 열리는 4대 패션 컬렉션(밀라노, 파리, 런던, 뉴욕)을 보다 보면, 다수의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그로테스크한 디자인들을 접하게 되곤 한다. 그들은 하이-패션계에서 활동하는 패션의 선구자적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물론 많은 디자이너들이 상업적인 효과나 이슈로 떠올라 유명세를 얻기 위해 이미 계산된 작품들을 출품 하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단지 예쁘거나 멋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패션이 아닌 더럽고 추하며 엽기적이고 기괴한 작품들을 제작하여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어쨌거나! 이런 현상들을 종합해 볼 때 패션에서 드러나는 그로테스크함 역시 타 문화, 예술과 함께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현대의 그로테스크한 예술의 정착 현상은 혹시 바로 우리의 오늘날의 모습이 '그로테스크'를 닮아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혹시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니 조금 다르게 느껴본다면? 그로테스크한 예술의 정착 현상에 대해 좀 가볍고 쉽게 생각해보자. 이따금 우리들은 반대되는 성질 혹은 감정들을 한꺼번에 체험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너무 매운데 속이 후련하다거나, 너무 뜨거운데 시원하다거나, 공포영화 등이 무서운데 보고 싶다거나, 징그럽고 더러운데 관찰하고 싶다거나, 아픈데 긁고 싶다거나 하는 상반되고 이중적인 기분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로테스크에 관한 연구와 문화와 예술에 대한 평론 및 정의 등이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로테스크한 취미의 시작 역시 그런 비슷한 인간의 다양한 감성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르게 찾아온 더위와 함께 이번 주말 밤엔 그로테스크한 의상과 영상이 가득한 다분히 캠프적인 컬트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를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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