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2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인 스토리가 객관적인 조건을 뜻하는 스펙보다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가는 장소에서도 스토리를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테마 공원도 장소에 스토리를 부여해 만든 것들이다. 굳이 이런 테마 파크 외에도 스토리를 통해서 장소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일은 허다하다.
글 | 박희정(광진구청 도시디자인과)( nari@gwanjin.go.kr)
스토리텔링을 통해 효과적인 도시마케팅 수립 가능
자치단체들이 경관계획을 수립하고 디자인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도시경관과 지역이미지를 바꾸는데 노력하는 것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쾌적한 환경만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지역을 알림으로써 관광객이 모여 경제효과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와 도시들도 이와 같이 도시마케팅에 노력하고 있으며 ‘I♥NY’ 같은 브랜드를 만들려고 한다. 브랜드이미지 제고와 효율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스토리텔링을 들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감성마케팅의 일환으로, 2003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들은 소비자들에게 상류사회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구매욕를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구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통해 제품이나 브랜드에 친밀감과 유대감을 가지도록 해준다. 이제 이야기는 제품을 떠나 사회전반에 다양하게 확산되어 공공의 영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스토리텔링이란 용어는 단어 그대로 이야기(story)+나누기(telling)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야기 나누기(story-telling)는 이야기를 지닌 모든 서사 장르를 의미한다. 스토리텔링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 이야기가 담화로 변하는 과정’이다. 원래 스토리텔링은 문학 용어로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을 말하는 것’으로 사건과 사물에 대한 물리적 속성이나 사실에 대한 보도(report)가 아닌 사물이나 인물이 가져다주는 개인적 의미로서의 이야기를 지어서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도시의 경관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데 도시 가로 이미지 자체는 시각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도시경관디자인의 최종목표는 물리적 형태가 아닌 마음속의 이미지에 의해 결정되며 도시의 물리적 형태와 심리적 이미지는 서로 영향을 받으며 순환, 반복하게 되는데 여기에 매력적인 이야기가 끼어들면서 심리적 이미지가 향상된다.
소설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지역을 변화시켜
중국의 ‘중뎬’지방은 스토리텔링으로 지역자체가 바뀐 사례이다. 미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1933년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는 가상의 지상낙원인 ‘샹그릴라(Shangrila)’가 나온다. 암울한 경제 공항의 시기 많은 사람들이 샹그릴라를 찾아 히말라야로 떠났다. 중국 윈난성 정부는 1997년 9월 기자회견을 열어 중뎬을 샹그릴라로 공식 개명했다. 이 후 이 지역의 관광객은 년 2만명에서 150만명으로 늘면서 전기도 안들어오고 병원도 학교도 없던 시골마을은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중국정부는 소설 속의 나오는 ‘사원’, ‘설산’, ‘초원’을 히말라야 주변 풍경에 대입시켜 ‘샹그릴라’라는 브랜드와 소설 속 이야기를 도입한 것이다. 2005년 샹그릴라현 주변의 티베트와 쓰촨, 윈난 3성은 2015년까지 샹그릴라를 공동개발하기로 해 국가 지원으로 끼니를 때우던 마을을 진짜 지상낙원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소설가가 쓴 소설에 나오는 지상낙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지만 어쨌든 중국의 민속•지리•언어학자들까지 가세하여 논문을 통해 입증하고 2003년 유네스코에서 샹그릴라를 세계자연유산을 지정했다고 하니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지역이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샹그릴라’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을까 싶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스토리와 장소를 접합시키는 사례 늘어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명소를 만들어가는 작은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우리구 화양동에는 수령 700년으로 생육이 양호하고 수령이 높아 서울시 기념물 2호인 느티나무가 있으나 공무원들과 가까이 있는 지역주민들이나 알 뿐 사실 화양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다. 이곳을 건국대 학생들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명소 만들기로 제안했다.(우리구와 건국대가 관학협력사업으로 추진한 ‘공공디자인 리서치’의 내용 중 하나로 우수사례에 채택되어 구청장 표창을 받음)
화양동 느티나무가 있던 곳은 태조 이성계가 군사용 및 파발용 말을 기르던 곳으로 살곶이 목장이라고 불렸으며 화양정을 지어 말들이 뛰어 노는 것을 감상했던 곳이다. 1457년 단종이 유배를 가면서 하루를 묵었으며 1882년 임오군란 때는 명성황후가 변복을 하고 남을 피해 장호원으로 갈 때 잠시 쉬어갔던 장소로서 뒷날 명성황후가 환궁하자 사람들이 정말 화양정이 되었다고 감격하였다고 한다. 일련의 이야기들에서 화양동 느티나무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지켜주고, 소망하는 등의 키워드를 도출하여 느티나무를 브랜드화하여 BI를 개발하고 소원의 돌, 소망의 우체통, 의료봉사, 어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안했다. 큰 나무 아래 소원을 빌듯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느티나무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예을 들면 이용자가 소원을 올리면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의료봉사를 느티나무 아래에서 하여 녹지공간을 활용, 치유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안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마케팅에 접목하여 실행방안까지 제안하여 명소화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장소에 매력적인 콘셉트를 부여한다. 지금은 초경쟁시대, 디지털시대로서 디지털이라는 차가운 이미지에 반해 따뜻한 이미지를 얻고픈 현대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 기법은 따뜻함을 주며 사람들은 물리적 가치보다 이미지(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좋은 도시경관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다. 간판에서 주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곧 가게에서 파는 상품의 이미지가 된다.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간판인지에 따라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잡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