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4
많은 사람들이 국내 만화 시장은 199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TV용 만화 역시 80∼90년대의 '까치',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이후 히트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최근 다양한 장르와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 만화 속에서 점차 인정받고 있다. 또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예전과 변함 없이 어린이들이 만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서울애니시네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이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는 한마당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즐거운 만화 세상이 펼쳐지는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로 9번째로 맞는 SICAF는 전시회와 애니메이션 영화제, 만화애니메이션 산업마켓 등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사실, 6일 밖에 되지 않았던 이번 행사는 1년이 넘는 긴 준비기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전시기간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살펴볼 수 있는 뜻 깊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
지금 이 시간, SICAF에서 보여주었던 이색적이고 특별한 시간들을 이 곳에 모두 풀어놓을 테니 말이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한국을 찾아온 애니메이션들과 한국의 만화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뜻 깊은 현장을 다녀왔다.
정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2005년 열렸던 SICAF는 마니아는 물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전시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였다. 주제별로 7개의 ZONE으로 나누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전시가 되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다.
광복 60주년과 만화 애니메이션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역사 인식의 계기가 된 '메인테마 ZONE'과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스페셜 ZONE', 해외 만화 애니메이션의 동향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글로벌 ZONE'을 비롯하여 만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워크샵 ZONE',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인큐베이터 ZONE', 작년 SICAF AWARD 대상 수상자인 이두호 특별전 등이 열리는 '어워드 ZONE' 등은 각각의 주제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관객들과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전시회 살펴보기>전시회>
>>유럽만화 속 多색느낌전
만화 그림이 쉽게 그려지고 복사된다는 우리의 편견을 파괴하듯 회화적 기법으로 만들어진 만화는 예술가로서의 재능과 작가로서의 철학을 느끼게 한다. '유럽만화 속 多색 느낌' 전시는 4가지의 각기 다른 표현기법을 사용한 유럽작가 4인을 소개하면서, 만화란 결코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달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이야기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 잠재 만화 실험실 우바뽀
잠재 만화 실험실(Ouvroir de Bande dessinee Potentielle)의 약자 우바뽀는 ‘만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1992년 이론가와 작가들이 모여 만든 소규모 단체를 지칭한다. 우바뽀의 만화는 어떤 의미에서 동양문학의 칠언절구를 닮았다. 9가지 원리를 정하고 이 안에서 그림과 말을 결합해 주어진 제약의 테두리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림체는 비교적 단순한 흑백 펜화가 대부분이지만, 만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을 깨는 형식과 신선한 발상은 실험적일 수 밖에 없다.
>> 해방의 역사, 만화의 소리전
광복 60주년 기념전시의 하나인 '해방의 역사, 만화의 소리전'은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 현대사와 만화매체와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과 강점은 필연적으로 그에 대항하는 만화를 낳았다. 현대적 의미의 '만화책'이라는 미디어가 없던 시절, 주로 신문만화를 통해 일반에 소개되었다.
이번 전시는 '만화매체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다'라는 시각에 입각, 이러한 흐름을 만화로 담아내고 있다.
>> 바지저고리 속에 담긴 민족혼- 이두호 특별전
30대 이상의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에 그의 만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969년
<소년 중앙>
에 '투명인간'으로 데뷔한 이래, '머털도사','덩더꿍','객주','임꺽정','파행'등으로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두호 선생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였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만화 전시에서 보아오던 작가의 연대기적 접근이나 작품의 나열, 해설 위주의 평면적인 전시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전시로 평가받고 있다.
소년>
짧은 기간 속에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SICAF.
지금 애니메이션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그 답이 궁금하다면 SICAF 2005가 해답을 전해줄 것이다. 획기적인 영상이 충격을 던져주는 크리스 랜드레스의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작
<라이언>
을 비롯해, 일본 곤조 스튜디오의 TV 시리즈까지 최근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2005년 SICAF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기호에 맞는 작품을 고를 수 있도록 메가박스와 서울애니시네마 두 곳에서 상영하였다. 애니메이션 전용 상영관으로 거듭난 서울애니시네마에서는 매니아를 위한 평소에 접하기 힘든 독특한 소재와 실험적 성격의 작품들을 상영하였고, 메가박스에서는 가족관객들을 배려한 대중적인 작품들은 물론 애니메이션의 장르가 가지는 무한대의 매력과 가능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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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2D와 3D를 결합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약 2년 반의 제작기간 동안 80여명이 넘는 인원이 제작에 참가하였고, 모든 작업이 유럽에서 이루어졌다.
르나르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남의 음식을 슬쩍하는 좀도둑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원칙과 영리함으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중세를 배경으로 야비한 귀족과, 힘은 세지만 어리석은 늑대를 골탕 먹이는 르나르의 유쾌한 모험을 그렸다.
국내 장편으로 이탈리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인 카툰온더베이 본선에 오르는 등, 흥행에서뿐만 아니라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뽀로로와 친구들은 독감에 걸려 꼼짝도 못하게 된 산타의 심부름을 하게 된다. 이들이 산타의 사절단이 되어 사탕과자나라 ‘쿠키캐슬’에 토핑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이루어지는 유쾌한 대소동을 그렸다.
2002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와 같은 단편들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된 마코토 감독이 2년에 걸쳐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두 권력으로 나뉘어 통치되었다. 혼슈와 다른 남부 섬을 미국이 점령하였는데, 이당시 어린 소년 '후지사와 히로키'와 '시라카와 타쿠야'가 계속 잠만 자는 수수께끼의 병에 걸린 '사유리'를 동경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혼슈의 미스터리한 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탑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언젠가 비행기를 만들고자 결심하지만, 사유리가 사라지면서 계획이 무산되고 마는데...
외딴 섬에서 할머니가 열심히 나무를 기르고 있다. 나무엔 열매가 달리는데 그 속엔 아기가 있다. 할머니는 오직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길 바라며 모진 비바람도 이겨낸다.
그날도 할머니는 비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아기열매를 열심히 가꾸고 있는데, 어디선가 황새가 나타나 할머니를 위협하는데..
SICAF는 매년 알찬 기획과 운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8월 16일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폐막식에서는 SICAF 2005를 정리하는 시상식인 'SICAF ANIMATED FILM FESTIVAL AWARD'가 진행되었다. 장편, 단편 및 학생, TV & 커미션드, 인터넷으로 세분화하여 상업성과 작품성, 대중성과 전문성을 종합하여 선정된 수상작들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창작 활동에 격려와 활기를 불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5부문 846편의 작품 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16편의 수상작들이 상영되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즐거운 축제, 그 축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많이들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짧은 기간동안 진행된 이유로 스쳐 지나가버린 행사라고 기억되진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행사를 통하지 않고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도 많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 왔던 애니메이션. 하지만, 이제 만화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번 행사는 우리가 살면서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만화, 애니메이션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르와 소재들도 함께 곁들여서 말이다.
우리나라 만화계가 아무리 하향세를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모인 관람객들을 보면 그 열정이 전혀 식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전진하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나라도 만화 종주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그날이 머지 않았다고 믿는다.
* http://www.sicaf.or.kr자세한 것을 원하시는 분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