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5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개관을 한지 보름이 지났다. 여러 매체에서 이를 두고 외계에서 온 우주선이란 감탄과 이 건물에 대한 바람, 찬사 혹은 비평을 쏟아 놓는 중이다. 또한 서울디자인재단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이 건물의 비전, 미래가치에 대해 홍보를 하면서 연간 360억원의 운영 경비를 시민의 참여와 관심으로 헤쳐 나갈 자세를 보이고 있다. 착공 때부터 참 말도 많고, 걱정도 많았지만 문을 열었으니 같이 키워가야 한다는 글들도 많이 보인다. 일단 이 건축물에 대한 평가를 요약해본다.
글 ㅣ 조현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실험적 형태에 기술, 산업적 부가가치까지
첫째, 이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디디피)가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물이고, 플리츠커 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기에 큰 기쁨과 창조적 영감을 선사한다는 시각이 대세이다. 건물은 정말로 신기하고 놀랍다. 바깥의 위용부터, 내부의 그 넓은 공간에 기둥이 하나도 없고, 어떤 부분에도 각이 없으며, 이음과 끊음의 경계가 안 보인다. 게다가 온통 백색으로 마감된 내부와 은색 판넬의 도도함으로만 이루어진 외관이 주는 ‘이질적 아름다움’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건물이 주는 매력은 ‘신기한 새로움’이며, 이는 도시에서 무감각한 생활,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경탄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것이라는 수식, 세계 최고 건축가의 유명세에 대한 우쭐함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 제일, 세계 최고, 누구나 아는 것을 소유함으로써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이 심리는 중독 비슷한 문화적 열등감이고, 한국의 근현대사가 배태하고 키워온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부분이기에, 왈가왈부하기에는 너무나 그 연원이 깊다. 하지만 이 천재적인 외양이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는 가에 대한 공방은 몇 년간 지속된 논란이며 문을 연 지금에도 끊임없이 논란 중이다.
두 번째, 기술적인 차원의 자랑이다. 이 건축물에는 판넬이 4만5133장이 사용됐는데, 그 모양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고 한다. 이 정도면 하나의 공예품이다. 기계로 일일이 깎아 낸 유일무이한 건축자재 판넬들, 그것이 모여서 세계 하나 밖에 없는 최대의 건물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공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다 만들어 내고 조합을 해서 건축가가 한국의 기술을 칭찬했다고 홍보한다. 이는 좀 어이없는 일이다. 다른 분야는 둘째 치고, 한국의 건축기술은 이미 최상이라는 평가가 공공연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랍 부호국들에서 짓는 다양한 건축물의 시공과 감독을 주관하는 것인 한국의 기업들이니, 이런 찬사가 매스컴에 부각되는 이유는 생경한 느낌을 준다. 이는 반대로 자하 하디드의 말을 인용하지 말고 당연히 건축술을 수출하는 종주국에서 이정도 못하냐 하는 자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셋째 이 건물이 갖는 지역 선순환의 역할이다. 이 지역이 패션 산업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 건물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글들이 많이 눈에 띄고, 이 건물 용도에 대한 공청회에서도 패션 산업에 대한 부양책이 거의 70%이상 등장했다. 이런 이유로 동대문 패션산업, 서울 운동장의 스포츠가 결합되어 개관 전에 스포츠 디자인전이 열리고, 여기에 디자이너들이 운동선수들의 경기복을 디자인하여 제시하는 코너도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이 산업을 선도하고,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 디자인 허브로서의 역할을 해달라는 바람도 많이 보인다,
이렇게 디디피는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기술까지 우세한 것을 입증하였고, 그 쓰임새에 있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올릴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그 가능성을 믿고, 그 향방을 지켜보기도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는 건물의 외관과 앞으로의 바람의 문제이고, 이것을 운영해 나가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다. 여기서는 이런 운영의 한 단면을 개관식 퍼포먼스와 상점 구성, 디자인 박물관내의 간송 전시를 중심으로 잠깐 살펴보자.
공예적, 전통적 콘셉트의 개관 퍼포먼스
디디피의 개막행사는 식장을 꽉 메운 인사들 속에서 약 사십 분간 진행되었다. 행사장의 벽면에는 ‘꿈꾸자 Dream, 만들자 Design, 즐기자 Play’로 만든 DDP 영문 슬로건이 보이고, “애물 단지가 아닌 보물단지 디디피로 만들자”는 시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다. 그 후 디디피가 지어지는 과정의 영상을 상영 후 축하 퍼포먼스가 있었다. 올림픽 개막식이 주최국의 문화적 역량과 축적된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행사든 퍼포먼스는 개관 주체의 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지닌 운영 방향을 추측케 하는 가늠자로 여겨질 수 있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어린아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등장했다. 그리고 아리랑 연주를 하는 동안 조명을 밝힌 무대 한 편에서 할머니가 재봉틀을 돌리며 옷을 짓고 있는 장면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그 뒤의 벽에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붓글씨가 종서로 쓰여 지는 대형 디지털 영상이 흘러간다. 잠시 후에 천사의 날개를 단 소녀가 등장하여 할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할머니는 “옷을 짓는다는 것은 마음을 담는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는 지어진 두루마기 옷에 대해 감탄을 한 후 할머니와 같이 퇴장을 한다.
공연은 그 자체가 디자인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상징과 기표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것이며 그 해석은 당연히 사회적 맥락에서 진행될 수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세대 간의 교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재봉틀’은 동대문의 장소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리랑은 우리의 공통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옛 가락이며, 두루마기, 붓글씨 캘리그라피 역시 우리의 전통적인 기표이다. 이렇게 근대 이전의 전통적 사회가 형성한 기표들과 여기에 서구의 기표인 천사의 조합, 그리고 근대적 산업, 동대문의 징표인 재봉틀, 할머니의 마음을 담는다는 표현이 이 공연의 구성물이다. 여기에는 전통과 근대의 산업, 서구의 기표가 있다. 또한 ‘만드는 행위’에 대한 감상적 해석이 드러난다. 마음을 담는다는 대사는 지극히 자의적이며 공예적인 바람, 이상적인 선언, 효능 없는 언설일 뿐이다. 옷에 마음을 담을지, 현대인의 욕망과 새로운 형상성에 대한 열망을 담을지 디자인 주체, 디자인 산업, 디자인 시장, 심지어 소비자에게 가서 물어보아도 대답은 자명하다. 이 문장을 “디자인에 마음을 담는다”는 환유로 바꾸더라고, 디자인에 대한 혼란한 의식이 보인다. 디자인은 한 카테고리로 만들어 이야기할 수 없는 각자의 디자인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인은 현대 디자인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보여주기 욕망에 기반 한 행위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움직이는 기호이다. 이러한 분야의 디자인에서는 (정성어린) 마음을 담기보다는 개개인들이 선택할 자유가 있는 옷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유쾌한 놀이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휠씬 설득력 있는 디자인하는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건물을 지을 때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들을 고려하여, 그 공간성을 존중하는 디자이너의 마음이 담겨야 한다. 이러한 차이가 각각의 디자인 분야가 지닌 차별성이며 디자인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우리가 디디피에 대해 그 새로움에 감탄하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디자인에서 자하 하디드의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천재성이 만들어낸 초지역적인 화술의 디자인일 뿐. 그 지역의 역사, 장소성, 그 곳을 사용할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하는 마음 즉, 배려가 안 보여서 그 공간에 대해 전격적인 찬성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공연은 공공디자인 어떤 분야를 가든 빠지지 않는 전통에 대한 강박증과 부채의식, 산업적 부가가치에 대한 집착, 서구기표에 대한 맹목적 사용에 사라진 미덕에 대한 감상이 혼합되어 표출된 기획이다. 부언하자면, 외국인이 지어준 전위적인 건축물에서 우리의 문화적 재산과 역량은 전통과 근대에 있음을 희미하게 제시하면서 끝난 공연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 전통, 산업, 장소, 마음 이 모든 것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동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한낱 수구적이며 감성적인 위안 밖에 안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평가는 퍼포먼스의 마지막 차례에서 좀 더 확실해 지는 것 같았다. 여러 분야의 유명인사가 무대로 올라와 다 같이오픈한 커다란 선물 박스, 디디피를 상징하는 듯한 그 디지털 선물 박스가 열릴 때 잠깐 기대했었다. 무언가 보여주겠지, 한국의 디자인의 현재, 미래, 무엇이든 보여지겠지. 하지만 그 박스는 열어도 그냥 깜깜한 박스였으며, 그 선물 박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단지 디지털 리본이 풀어져 버린 것으로 박스는 열린 것이고, 공연행사는 막을 내렸다. 열려지긴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
간송 컬렉션이 디자인이라니?
공연을 보고는 디자인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박물관을 하나 만들었네. 디자인계가 십여년 전부터 필요하다고 주장한 그 박물관이 드디어!’ 했다. 웅크린 생명체의 장기 같은 그 디자인 둘레길은 물론, 새롭기는 했지만 지루하고도 멀었다. 그 공간은 데카르트가 오로지 생각하는 나만이 진실임을 알았다고 외쳤을 때 서 있었을 법한 공간이었으며, 느낌도, 물성도, 역사도, 흔적도, 혼동도 다 거부하는 절대적으로 흰 백색 공간이었다. 그리고 자하 하디드의 실험과 도전, 건축적 야망과 자아가 충만해져 차 일렁이는 공간이었다. 일본의 원로 건축집단이 왜 그녀의 2020년 도쿄 올림픽 돔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창문도 없고, 색채도 없으며, 어떤 교감도 거부하는 이 건물은 그 건물에 대한 순간의 기쁨, 경이로움, 감탄 이외에 어떤 교류도 교감도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올라간 그 둘레길 끝머리 디자인 박물관에는 디자인이 없었다. 그곳에 간송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게다가 그 기간도 3년이나 지속된다고 하는 설명이 따라 붙었다. 디자인 박물관이라고 타이틀을 붙이고 간송의 소장품이라니. 그 소장품이 아무리 시민들의 목마름을 채워준다고 해도 왜 디자인 박물관에서 전시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사물에는 제자리가 있고, 그 제자리를 찾았을 때 사물은 빛을 발한다. 간송 전형필의 소장품은 전통적 공예품이며 기물들이다. 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상식적으로 박물관이나 아니면 공예 전시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DDP 한 자리를 상설로 꾸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안내를 했던 디자인재단 측은 간송의 컬렉션이 한국 디자인의 원형이고, 그것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영감과 아이디어를 받기에 이 컬렉션도 디자인이라는 설명을 했다. 아마도 이 정도의 논리가 이런 기획을 한 근본적인 동인일 것이다. 하지만 개국 이래 처음 디자인 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인 공간에 전통 공예품을 3년이나 전시하기로 한 그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상식의 부족 때문에 오는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디자인 박물관을 개관한다고 찾아갔더니, 삼년동안 빅토리아 왕조 때의 유물을 전시한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디자인은 당대가 공유한 기술과 미감, 공학과 재료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고유한 분야로서 통상적으로 전통사회를 지나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환경 창조의 모든 면을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디자인은 전통 사회와는 분리되는 어떤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당대의 기술과 문화감수성, 그리고 미적 감각의 공유가 결과물에 스며들어 있을 때 디자인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디자인에 가치를 주는 것은 그것이 아름다움과 기능을 바탕으로 하면서 창조와 새로움의 기쁨을 주고 이것이 산업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즉 디자인은 그 자체가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분야이며 여기에 미와 기능이 들어가면서 미래적 가치, 물질문명을 창조해 나가는 분야이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새로운 재료, 새로운 조형성, 새로운 콘셉트의 자하 하디드 건축물에 열광을 하는 것이고, 가장 혁신적인 건축디자이너로서 자하 하디드의 명예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디디피 개관전 배너 역시 허황된 디자인이다. 고려 청자와 훈민정음 해례본의 이미지가 개관 전 배너로 온 지하철과 건물 주변에 도배되어 전시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디자인계로서는 근대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디자인 박물관을 수여 받은 기회인 셈이다. 십여년 전 출범한 예술의전당의 한가람 디자인미술관 역시 디자인과 미술을 혼용한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출범을 하더니만. 이번에는 이름을 달고도 이름에 맞는 어떤 면모도 보이지 못하고 디자인 박물관을 내준 형국이다. 이쯤에서 디자인 행정가들. 디자인 전시 기획자들의 인식과 그 비전, 방향에 대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이 앞으로 디디피를 운영해야 하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요즘 같은 속도의 시대에 3년간 디자인 박물관에서 ‘간송’전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소장품을 구하지 못했으면 디자인 박물관 이름을 치우고 간송관으로 재편해 3년을 채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디자인 박물관이 3년간 유명무실, 표리부동, 명실상부 등의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출범하는 것은 디자인계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 되었건, 앞으로 디자인 박물관은 채워질 것이다. 이 내용이 개막식 퍼포먼스가 보여준 혼란스러운 한국 디자인에 대한 해석이 아니기를 바란다. 후대의 디자이너들이나 대중들에게 한국 디자인 아니면 다른 어떤 나라의 디자인 컬렉션을 보여주더라도 디자인의 축적된 힘과 미래적 비전을 제시할 개념과 움직임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를 것 없는, 살림터의 디자인 숍
디디피는 회의장인 알림터와 전시장인 배움터, 디자인 가게들이 입점하는 살림터로 구성돼 있다. 살림터에는 아직 다 입점이 끝나지 않았고 개관일에는 임시 부스에 입점한 상점들이 소품을 팔고 있었다. 이들 역시 처음 디디피의 인상과 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 가게들도 강남 지역과 온라인 마켓에 난립하는 수입 편집숍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소품들, 생활용품들로 구성된 듯했다. 살림터는 일종의 생활용품 전시장이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 진정한 생활의 취향이 있는지 없는지는 좀 깊이 살펴보아야 할 일이지만, 개인이 각자의 취향과 기호대로 가구며 소품을 선택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관례로 고착되어 버렸다. 몇 년 전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스타일로 승부하라’는 광고 카피를 걸고 아파트를 분양했을 정도로 스타일은 현재 뜨거운 화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분양을 받자마자 시행되는 리모델링 열풍이다. 한국의 아파트 내부는, 아파트 시공사가 부착해 놓은 부엌가구며 벽지를 다 걷어 내고 리모델링하는 풍조로 정착이 되었다. 오히려 고치지 않은 아파트를 찾는 것이 힘이 들 정도로 아파트는 각 가구의 취향의 전쟁터이다. 그러니 이러한 취향과 기호를 충족시키는 소품과 디자인 용품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쳐서 인터넷이며 여성지 전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고, 일상용품 편집 매장이 강남의 가로수길을 위시하여, 디자인 스팟이라는 통칭 하에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디디피에 디자인 팬시 용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며, 단지 건물의 임대료를 생각한 미봉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영경비를 생각하다 보니 이런 숍을 입점시켜야 하는 생계논리가 또 여기서도 벌어지는가? 그렇다면 노점상 단속의 명분은 어디로 가야 하는 의문이 또 든다. 이 정도의 일반적인 팬시 용품을 보여주는 장소로 디디피가 앞으로 역할을 하려나 하는 걱정 때문에 이 새롭고 낯선 건물 속에 담긴 저 외국 소품 상점들이 오히려 구시대적으로까지 보인다. 그리고 이 상점들이 디디피 개관 일주일 후에 오픈한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그대로 진출해있는 것을 보았을 때, 디디피에 대한 실망감은 배가되었다.
이렇게 오프닝 퍼포먼스, 입점 내용, 개관기념전을 통해 본 디디피의 인상은 우리의 디자인 현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조감도도 보여주지 못한 채 아방가르드한 건물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많은 질타와 반대 속에서 출범했고, 초기 공사비의 몇 배를 넘는 시공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충당하면서 지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하려는 듯 미디어에서는 세계적인 건축가 그녀의 한마디가 대한민국의 기술을 인정해주는 듯 리포트 되고 있다.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한류가 뜨겁고, 스포츠, 드라마와 광고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한국의 힘을 인정하는 이때, 디디피의 홍보 방식이나 개막 행사는 디자인계의 미숙함과 나약함을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한국의 디자인계는 아직도 어리고, 어린가? 여전히 그들, 서구인들의 칭찬을 받고, 그들의 감수성을 찬탄하여 수입하고, 선진 문화를 들여와야 하는 존재들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실이 어찌 되었건, 디디피는 이미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그 건물 자체를 구경하기 위한 관광 계획이 줄을 잇는다. 그 건설과정이며 조형성의 결과는 비평과 연구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건물의 운영은 디자인계와 디자인재단의 역할이다. 무엇으로 이 건물의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 이곳에서 진정한 디자인 허브의 힘이 창출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세계 디자인 트렌드에 걸맞고, 한국의 위상이 보여지는 기획으로 귀결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