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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세계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 02

2008-04-15

럭셔리한 캐주얼. 이 말은 언뜻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디젤(Diesel)의 의류에는 이런 고정 관념이 통하지 않는다. 디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윌버트 다스(Wilbert Das)는 196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아른헴 예술 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in Arnhem)에 입학해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고, 졸업하고 곧바로 디젤에 입사했다. 처음엔 남성복, 액세서리, 가죽 제품과 아동복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디젤 전체의 디자인을 총괄하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3년에 윌버트 다스는 디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패션과 액세서리는 물론 광고와 매장, 쇼룸의 디자인, 각종 이벤트와 패션쇼의 콘셉트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사실 윌버트 다스라는 이름은 디젤 CEO 렌조 로소의 스타성에 가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다채로우면서도 조화로운 디젤 문화는 윌버트 다스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그는 언제나 개성을 넘어선 팀워크를 강조했다. 재능 있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ITS(International Talent Support) 프로그램, 건물의 빈 벽을 예술적으로 꾸미게 하는 디젤 월(Diesel Wall) 프로젝트, 신인 음악가 발굴 프로젝트인 디젤 U 뮤직(Diesel U Music) 등 젊고 재능 있는 디자이너에게 기회를 주는 디젤의 활동 뒤에는 전 세계를 돌며 영감을 얻고 항상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어두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팀의 디렉터 윌버트 다스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윌버트 다스가 디젤에 입사한 것은 1988년이다. 패션계 또한 이합 집산이 심한 업계다. 그렇기 때문에 렌조 로소와 윌버트 다스 콤비처럼 2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함께 일하며 비전을 공유하는 일은 각별한 사례이다.
그가 크리에이티브를 얻는 비결 중 하나는 ‘영감 여행’이다. 직원들에게 세계를 여행하며 영감을 느끼도록 권장하는 회사는 많지만, 비용 때문에 지원을 망설이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디젤에서 모든 디자인 팀은 각 그룹별로 자신들이 영감 여행을 갈 곳과 그곳에 대한 사전 리서치 등 상세한 계획을 사전에 제출하며, 말 그대로 영감을 받기 위해 전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윌버트 다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글/ 정영호 기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가 스페인에 첫 의상실을 연 것이 1918년이었고, 파리에 매장을 처음 연 것이 1937년이었으니 명품 브랜드로는 샤넬에 버금가는 연륜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웅가로나 지방시, 앙드레 꾸레쥬(Andre Courrege)와 같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들도 일개 젊은이로 패션을 담금질했던 곳이 발렌시아가였으니 전통으로 따진다면야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1972년 세상을 떠나고 발렌시아가는 이름만 남게 된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Nicholas
Ghesquiere)가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된 것은 1997년부터였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장 폴 고티에의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뫼비우스띠같이 몸을 빙빙 감싸는 의상으로 데뷔하여 패션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디자이너였다. 그가 발렌시아가에 자리를 잡자마자 니콜 키드먼이나 케이트 모스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쇼에 예약을 하는 등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 바람에 발렌시아가의 인기도 한층 높아졌다고 한다. 그의 지휘 아래 발렌시아가는 한층 젊고 발랄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전통적인 발렌시아가의 풍성하면서도 단순한 실루엣의 옷은 짧게 나누어진 면들로 이루어진 심플한 스타일로 바뀌었으며, 풍성한 색상들도 차분한 무채색의 톤으로 바뀌었다.
특히 2008년 시즌에 선보인, 둥근 어깨를 강조한 패션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면서 그의 조형적 역량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그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디자이너로 1순위에 거론되고 있다.
글/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중에서 독일인을 찾기란 참 어렵다. 역시 독일은 자동차나 기계 같은 하드코어 쪽이 맞는 것일까? 그나마 질 샌더(Jill Sander)라도 없었다면 독일의 패션계는 황량한 찬 바람만 불고 있었을 것이다. 섬유공학을 전공하고 패션기자를 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역시 독일인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순한 형태를 추구하는 디자이너이다.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가장 적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란 그녀의 패션 철학은 1차 대전 후 바우하우스에서 울려 퍼졌던 슬로건이랑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패션을 관통하고 있는 장식성을 질 샌더에게는 단 한 올도 찾을 수 없다. 덕분에 그녀의 패션을 이루고 있는 부드러운 원단은 마치 자동차 외피처럼 견고하고 각이 잡혀 있다. 이처럼 확실하게 군기(?)잡힌 천의 일사불란함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갈함은 질 샌더 패션이 지닌 경쟁력의 핵심이다.
2005년 여름부터는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질 샌더를 이끌고 있다. 그의 이력도 질 샌더 못지않게 범상치 않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가구, 인테리어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독학으로 공부하여 패션 디자인계에 입문했다고 하는데, 그런 경력 때문인지 주차장이나 길거리, 다리 위에서 패션쇼를 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질 샌더에서 선보인 그의 미니멀하고 각 잡힌 디자인들은 질 샌더보다 오히려 더 질 샌더스러웠다는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테이션에 그치진 않았다. 과감한 색상과 단순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구조의 옷은 질 샌더의 경건함에 젊고 활발한 느낌을 더해 전반적으로 질 샌더의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는 브랜드가 바라는 바였다. 브랜드 질 샌더는 특유의 심플하고 절제된 라인에 라프 시몬의 아름답고 과감한 구조를 더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글/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이세이 미야케 (Issey Miyake).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백가쟁명하는 파리 한복판에서 근 40년 동안 일본식 옷을 눈도 깜짝 않고 밀어붙여온 사나이다. 그랬던 그가 1990년대 말 직원이었던 다이 후지와라 (Dai Fujiwara)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임하고 홀연 은퇴를 선언해버린다. 지난 10여 년간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지칠 만도 했다.
후지와라를 선장으로 한 이세이 미야케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내부 승진을 통해 수석 디자이너가 발탁된 관계로 2000년대에도 무리 없이 리듬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면 후지와라를 무시하는 꼴이 될 것이다.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색이 조금 차분해졌고, 자유분방했던 실험성도 일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이세이 미야케의 천재적인 실험성에 매료되었던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다이 후지와라의 능력 부족은 아닌 듯하다. 자기만의 개성이나 아이디어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결국 다이 후지와라의 문제라면 그가 이세이 미야케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누가 이세이 미야케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글/ 최경원(디자인실험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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