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 2018-05-28
[스토리X디자인 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본유적으로 남과 소통하고 싶어하고 그 과정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감정을 교류한다. 이 소통과 교류 활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접촉을 도와서 크고 작은 인간집단과 조직(organization)을 형성하여 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다. 태곳적 인간에게 주변에 천적과 맹수는 있는지, 어디에 가면 위험하며, 어디에 가면 먹을거리가 있는지 정보를 나누는 일은 생과 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생존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사피엔스(Sapience: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와 〈호모 데우스(Homo Deus)〉를 쓴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간 호모 사이엔스(Homo Sapiens)가 지구상 생물계를 지배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로 인간이 협력(cooperation) 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든다. 일단 생면부지의 무수한 개인들이 종교, 민족과 국가, 돈 등과 같은 이념적 목표나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면 정해진 기치와 목표를 향해 일사분란히 조직을 짜고 달성하는 협동적 습성이 바로 그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기술과 함께 진화한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초기의 인류는 입에서 입으로 옛날이야기, 경험, 기억을 말하고 듣고 전달했다. 소통은 모든 생물체라면 공통적으로 하는 생존 행위이지만 유독 인간은 지구상 그 어떤 생물체보다 세련된 언어를 사용한다. 유독 인간은 목 뼈 안에 설골(舌骨, tongue bone)이라는 해부학적 구조를 갖고 있어서 목에서 소리를 내어 말(speech) 하는 음성 소통(vocal communication)을 한다. 이렇게 인류는 일찍이 대략 기원전 5십 만년 전경 아프리카 원인 시대부터 목소리를 이용한 음성언어를 쓰기 시작했을 것이라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기호, 문화, 그림으로 표현된 시각 이미지를 기록하는 문자문화가 탄생했을 즈음인 기원전 3천 년 경,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갖가지 정보와 지식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기호가 문자언어로 이용되었다. 추상화된 형상이나 기호는 일부 소수의 식자들 사이에서만 이해되는 동안, 강력한 부족 지도자들은 수많은 피지배 대중을 다스리기 위해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했다. 글을 못 읽는 일반 대중에게 시각적 이미지는 강력하고 효율적 메시지 전달과 소통 수단이었고, 여기에 신화, 성서, 설화, 민담 같은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즉,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인류 보편적 습성에 호소한 설득법이었다.
누구나 익히 듣고 아는 신화나 설화의 줄거리, 주인공 캐릭터, 행적 이야기를 빌어서 구체적 시각물로 보여주는 방식이 스토리텔링의 핵심 기법이다. 예컨대 공공 광장에 세워진 기념비, 누구나 시장에서 주고받는 동전, 얇은 금속판에 이미지를 두드려 만들어 넣은 카르튜슈 장식 경판, 휴대용 장신구 메달 등이 대표적이다. 일상에서 늘 접하는 디자인 사물을 통해 메시지를 각인시킨 그 같은 시각적 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행동 강령을 각인시키고 윤리의식을 강화시켜서 질서를 유지하게 해주는 효과적인 사회규제 수단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국제무역과 진귀한 직물 가공 기술을 타고 고대 신화나 영웅 이야기를 묘사한 벽걸이용 융단과 자수 공예가 보는 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메시지 매체로써 유행했다.
유럽에서 15세기 구텐베르크 활자와 대량 인쇄 기술이 개발된 이후로 문자 언어의 전파가 빨라지기 시작해서, 17~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산업화, 20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동안 인간과 인간 사이 메시지 전달과 수신 방식도 변화를 거쳤다. 대량 인쇄술이 보편화된 이후 종이 인쇄된 신문이 정보를 얻기 원하는 대중에게 저렴하고 대중적인 정보 전달 매체 역할을 했다. 20세기 이후 특히 전자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대중의 경제생활이 점차 윤택해진 이후로는 AM/FM 라디오, 흑백에 이어 컬러텔레비전, 영화관 시네마가 대중매체로 보편화됐다. 전기를 이용한 이 신기술 정보 상자들을 통해서 대중 청취자들은 정보를 얻고 송신자는 여론을 평정했다. 통신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한 오늘날 21세기에는 인터넷과 개인용 이동기기가 대중문화 소통 매체 역할을 한다.
콘텐츠, 콘텐츠, 콘텐츠
의사 전달 행위에서 가장 핵심적인 알맹이는 역시 콘텐츠, 즉 메시지의 내용이다. 글이 적힌 편지 속에는 편지를 보내는 자가 받는 자에게 하고 싶은 정보나 감정이 담겨 있다. 귀한 자식을 향한 애정에 대한 부모사랑의 정표로써 장난감을 사주고, 세상에서 둘도 없이 소중한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서 귀한 담배를 선물하고, 사무치는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기 위해서 사모하는 연인에게 향수병을 - 태곳적부터 인간은 이렇게 귀한 물건이나 희귀 사치품(장난감, 담배, 향수 등)을 주고받는 ‘선물 교환(gift-exchange)’ 관습을 행사했다. 소통(communication)의 목적은 남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이득을 얻는 것이지만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의사가 잘못 전달되거나 오해되어 소통 장애와 혼선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칫 수수께끼 같을 수 있는 선물에 담긴 숨은 의미를 해석하여 메시지를 파악하는 능력은 선물을 받는 자에 달렸다.
아름답고 장황하게 포장되었거나 아무나 열수 없도록 꽁꽁 닫힌 선물함(函) 속에는 보내는 자가 받는 자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귀중한 보물이나 값진 물품이 들어있다. 선물에 새겨진 이미지는 종종 주고받는 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과거 서구 역사 속에서, 기독교 교권이 강했던 중세 시대에는 성경 속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나 교훈적인 에피소드를, 인문주의 사상이 지배했던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화 속 일화를 빌어서 의사를 전달했다.
음성 대화 → 문자와 기호 메시징 소통
19세기 사람들은 급한 소식을 전달해야 할 때 전보(telegraph)를 쳤다. 20세기 과학기술과 통신술이 발전하자 전화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대중 통신 수단이 되었다. ‘따르릉’하고 두 번 전화벨이 울리면 전화 수화기를 받아드는 것이 예의였으며 웬만한 사람이라면 중요한 번호 10개는 외우고 다닐 정도로 전화는 사업과 비즈니스와 사적 인간관계 유지에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어느덧 요즘 일상에서 유무선 전화를 사용하는 인구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 대신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이나 인스턴트 문자 메시징 앱으로 용건을 주고받는다. 점점 많은 현대인들은 실시간 전화통화를 기피하는 대신,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같은 비음성·비동시(non-vocal/asynchronous) 소통을 하는 편을 택한다.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eue Zürcher Zeitung)〉의 2017년 11월 24일 자 ‘우리는 왜 전화를 두려워하는가?’라는 기사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전화 음성을 통해 비언어적 신호(얼굴 표정, 호흡, 목소리 톤, 말 속도나 끊김 등)이 상대방에게 노출당할까 봐 내심 꺼린다고 분석한다.
점점 현대인들은 비언어적(non-verbal) 의사소통으로 급속히 옮아가는 추세다. 전화통화 대신 현대판 인터넷 전보 치기가 더 인기 있다. 인터넷과 무선 테크놀로지는 우리 마음 깊이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소심함을 감출 수 있게 해준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는 감정을 내비치는 비언어적 신호를 제거하고 용건을 전달하기 때문에 사용자로 하여금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 나아가서 요즘엔 텍스트를 일일이 쳐 넣어야 하는 문자 메시징조차도 점점 줄어들고 그 대신 이모티콘, 이모지, 기호를 이용한 이미지 메시징이 널리 사용되는 추세다.
미국의 전기공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E. Shannon)의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에 따르면, 정보의 내용은 예측하지 못한 것, 즉 ‘새로운 소식’을 의미하며, 인간의 소뇌(cerebellum)는 새로운 정보를 재빨리 수신·포착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개구리의 눈은 고정적인 환경은 백안시하고 움직이는 자극에만 반응하도록 되어 있는데, 외부의 과잉 자극과 정보의 홍수 속에 놓인 요즘 인간의 뇌도 그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새로운 외부 자극을 받지 못하는 자극 결핍 상태가 되면 아주 사소한 자극에 과민반응하게 되는 ‘나방 효과(moth effect)’에 빠지기도 한다.
정보는 그토록 인간에게 오묘하고 매력적인 대상이고,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얻고 교류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인간’을 위해서 소통의 매개 역할을 했던 통신 디자인의 발달사를 고찰해 보는 특별 전시회 ‘소통의 상자(Beziehungskiste)’가 독일 하노버의 아우구스트 케스트너(August Kestner)에서 8월 19일까지 열린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