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6
처음엔 단순히 땅콩을 닮은 귀여운 크레용인 줄 알았다. 그다음엔 인체에 해롭지 않은 좋은 크레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다. 그 매력은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삶은 여러 순간들로 연결돼 있다. 보고 느끼고 움직이는 수많은 순간은 쉼 없이 이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는 틈이 존재한다.
땅콩프레스는 이런 틈에서 시작됐다.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소소한 이곳에서 보석같이 반짝이는 것을 찾아낸다. 땅콩프레스는 ‘엉뚱하지만 다른 시각’을 찾아 놀이와 아트의 요소로 보여준다. 몇 가지 주제로 그 특별함을 선보이고자 하는 땅콩프레스의 첫 번째 이야기는 드로잉이었다.
땅콩프레스를 만든 황세희 디자이너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땅콩프레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황세희입니다. 땅콩프레스는 블록 크레용을 생산하고 판매하게 되면서 시작된 브랜드예요. 넓게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개념을 함께 가지고 있어요.
일상에는 여러 가지의 틈이 있는 것 같아요. 순간과 순간 사이의 틈, 공간과 공간 사이의 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 무심코 흘려보내는 이런 틈 사이에 사소하지만 조금은 다른 시각을 끄집어 내고 싶었고, 구체적으로 놀이 혹은 시각적인 요소, 구체화된 형태로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것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책’이라는 큰 틀을 이용하고, 챕터별로 몇 가지의 주제를 정해 결국에는 연속되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주제를 저의 어린 시절부터의 관심사이자,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어린 시절의 여러 함축적인 의미의 행위인 그림 그리기의 ‘그림’으로 정했고, 그것의 도구인 ‘크레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chapter1에서는 크레용을 포함한 그림도구(미술용품)에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제품, 영상, 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그것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어요.
어떻게 땅콩프레스를 만들게 되셨나요?
저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대학 당시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쪽 일을 하던 디자이너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각적인 영역보다는 ‘물성’이 느껴지거나 어떤 ‘형태’에 대한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브랜딩’에 대한 관심도 컸고요.
당시 대학원에서 UX, UI 분야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듣게 된 ‘생활용품 디자인’이라는 교양수업에서 드로잉 팽이를 만들게 되었고, 그것과 연계해서 집에서 만들어본 블록크레용을 실제로 판매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로 이어지게 됐어요.
지금까지 출시된 땅콩프레스 제품들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우선 블록크레용을 자그마한 슬립 형태의 상자에 담은 ‘포켓크레용_블록’ 시리즈와 같은 종류의 블록크레용을 하나의 비닐팩에 담아 포장의 단가를 최대한 줄인 ‘팩크레용_블록’ 시리즈가 있고, 땅콩 형태의 천연콩 왁스로 만든 ‘구버크레용’이 있어요. 또 팽이와 드로잉북의 기능을 하나로 합쳐 직접 그린 그림을 끼워 돌리며 즐길 수 있는 드로잉 팽이, ‘쿠킹’을 주제로 디자인한 드로잉북 시리즈와 컬러링북 시리즈, 이런 그림도구들을 담을 수 있는 크레용 백(패브릭 가방) 등 그림도구에 관련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제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제품 혹은 도구의 기능을 합치면 또 다른 흥미로운 도구가 되는 것 같아요. 블록과 크레용의 기능을 합치니 여러 가지의 색을 동시에 칠할 수 있는 또 다른 크레용이 될 수 있었고, 팽이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능과 종이(도화지)의 기능을 합치니 그림이 돌아가면서 또 다른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장난감이 될 수 있었어요. 또 세울 수 있는 구버크레용은 도미노로서 또 다른 놀이의 기능을 하는 놀이도구가 될 수 있었죠.
또 하나는 소재에 관한 거예요. 사람은 결국 환경에 속해 있고 브랜드 또한 그 환경을 조금 덜 헤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 같아요. 자그마한 드로잉 노트인 ‘커피노트’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제품 중 하나인데, 버려지는 커피컵을 재생해 만든 종이를 표지로 사용해 세 가지 종류의 커피시리즈로 재탄생 시킨 노트예요. 구버크레용에 사용된 천연콩 왁스나 천연염색의 크레용 백 등도 소재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제품들이죠. 미약하기는 하나 이러한 방향의 제품들을 하나씩 늘려나갈 예정이에요.
블록 제품의 다양한 패키지 디자인이 인상적이에요. 어떻게 디자인되나요?
제품의 내용물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제품의 패키지 또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용물과 연관되거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래픽을 입히고 있는데, 예를 들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색상을 담은 ‘포켓크레용_블록_시즌’에는 각각의 시즌에 해당되는 그래픽으로, ‘포켓크레용_블록_자동차’의 경우는 패키지 자체를 하나의 놀이도구로 활용하고자 자동차 형태의 그래픽으로 입혔어요.
얼마 전 협업으로 진행했던 ‘포켓크레용_블록_벚꽃’의 경우 벚꽃 크레용의 색상에 맞춰 벚꽃의 그래픽으로 입히는 등 각각의 주제에 맞는 그래픽을 심플한 형태이되 어느 정도 주목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적인 부분을 활성화해 디자인 스튜디오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쿠킹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신 것 같은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요리’를 주제로 제품 및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고자 하는 거예요. 네 가지의 요리를 주제로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엮고 요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시점에서의 그래픽으로 표현한 ‘컬러링북’, 이것과 연계된 ‘포켓크레용_블록_쿠킹’, 또 연관 디자인으로 구성된 드로잉북 시리즈, 엽서, 포스터, 가방 등이 있어요. 네 가지 주제의 영상 또한 제작했습니다.
기존에 출시한 커피시리즈 노트들도 크게는 ‘음식(식)’에 해당하는 제품인데, 생각해보면 ‘음식’ 혹은 ‘요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주제가 되는 것 같아요.
쿠킹프로젝트는 언제 출시되나요?
처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선보였고, 일부 제품들은 미술관, 편집숍 등 몇몇 곳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홈페이지에는 5월 중순쯤 정식으로 출시 예정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당분간은 그림도구에 계속 집중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그것을 콘텐츠화 하는데 집중할 것 같아요. 작은 덩치이지만 좀 더 단단한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땅콩프레스(www.ddangkong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