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0
다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 에디터는 이번 명절 유독 생각이 많았다. 명절을 맞이하기 전부터 ‘결심’ 같은 것도 했다. 이제 달라지겠노라고. 착한 며느리이고자 하는 그 생각부터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을 한 번쯤은 갖게 하는 명절은 시댁이 있는 여자들에겐 그다지 반갑지 않은 연중행사다. 꼭 명절뿐이겠느냐마는 명절을 쇠며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며느라기’의 심정을 말이다.
이번 명절, 스스로 다짐을 하며 큰 변화의 첫 발을 뗀 건 다 이 ‘며느라기’ 덕분이다. 그래서 뭐가 좀 달라졌느냐고? 답은 ‘Yes!’다. 마음가짐이 달라졌으니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지만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뿌듯했다.
대한민국의 며느리라면 그냥 스쳐 지나가지 못했을 웹툰 ‘며느라기’는 지난해 5월부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연재를 시작, 페이스북 팔로워 수가 23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3그램〉과 〈스트리트 페인터〉를 선보인 수신지 작가의 웹툰이다. 어쩜 그리도 기혼여성이 느끼는 감정들을 속속들이 잘 표현했는지, 한 컷 한 컷 모든 장면에서 물개박수를 치게 만든다.
무언가 불편하지만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글과 그림으로 조곤조곤 풀어놓는 것이 포인트다. 그게 어쩜 그리도 사이다인지, 속이 다 시원하다. SNS로만 만나던 ‘며느라기’가 1월 11일 완결,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제목 ‘며느라기’는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를 뜻하는 말이다. 갓 결혼한 주인공 ‘민사린’도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스스로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자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 것뿐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맞닥뜨리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꼭 며느리가 아니어도 여자라면 크게 동요된다. ‘며느라기’에는 며느리의 이야기 말고도 어릴 때부터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온 우리의 삶 전체가 담겨있다. 어린 조카의 눈에도 양복을 빼입은 남자 어른들의 모습과 팔이 여러 개 달린 할머니, 전에 둘러싸인 민사린의 모습은 구분된다.
작가는 ‘며느라기’가 독자들의 댓글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했다. 며느라기 페이스북에선 실제로 수많은 공감의 댓글을 볼 수 있다. 그중에는 남성들의 공감과 응원 댓글도 볼 수 있다.
‘며느라기’는 2017년 10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심플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며느라기’ 그림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출시됐다.
단행본 〈며느라기〉는 민사린닷컴에서 1월에 굿즈와 함께 사전 주문이 완료됐고 현재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예약 구매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오는 3월 만날 수 있다.
‘며느라기’가 책으로 나온다 해도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안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거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할 거다. 그래도 그들보다 이 책을 격정적으로 반기는 딸들, 며느리들이 훨씬 많다. 미처 본인의 처지를 깨닫지 못했던 이 땅의 여성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이 책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참 고맙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수신지(www.min4rin.com, www.facebook.com/min4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