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우 | 2018-02-19
북유럽의 자전거 문화는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 스웨덴을 비롯한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자전거 활용도와 그 문화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안정화되어 있으며,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옆에서 지켜본 이들의 흥미로운 자전거 문화를 들여다 보기로 한다.
과거와 다르게 우리나라도 이제 ‘자전거’라는 운송수단을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즐기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위한 인프라의 구축, 자전거 도로, 자전거 대여 시스템 등이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로에 자전거를 끌고 나가기엔 여전히 불편해 보이고, 자동차, 버스 등과 함께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를 볼 때면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필자가 이곳 스웨덴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바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자전거를 좋아하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자전거란 생활의 일부분일 정도로 중요하고 또 일상적인 운송수단이다.
가장 손쉽게 자전거의 대중화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지역 곳곳에 설치된 자전거 주차장 혹은 보관소다. 이곳에 가면 정말 엄청난 수의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자전거 주차장의 모습은 북유럽의 자전거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진이 전체 보관소의 극히 일부분만 보여주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수의 자전거가 들어서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차역이나 시내 주요 골목에는 거대한 자전거 보관소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직접 수리하고 손질해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한다. 한마디로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이들에게 자전거란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처럼 익숙하다. 이는 다시 말해 그만큼 자전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된 큰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먼저 이곳 북유럽 국가들, 특히 스웨덴과 덴마크는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가파른 언덕이나 산이 없으므로 목적지가 어디든 자전거를 끌고 나가기에 부담이 없다. 완만한 평지가 도시 전체로 이어지므로 언덕길을 마주할 때의 스트레스가 적은 것이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자전거 도로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자동차와 자전거 도로, 보행자 도로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심지어 자전거 전용 횡단보도와 신호등, 타이어 공기주입기도 모두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고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자전거 라이딩을 할 수 있다.
자전거 대여시스템과 이를 위한 인프라도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 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여행자나 방문객들도 원하는 기간 동안 쉽게 자전거를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으므로 누구나 사용하는데 있어서 부담이 없다. 이 때문에 여름철이 되면 자전거로 북유럽을 투어하는 여행객들을 자주 보게 된다. 기차나 지하철에도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칸이 별도로 있을 정도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전거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도로에서 달리는 자전거는 보행자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도로의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를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사회 인식들이 자전거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와 문화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파생하기도 한다. 필자의 주변 지인 중에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가정이 꽤 된다. 모두 자전거를 일상의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다운타운까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리면 오히려 자가운전이나 대중교통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그만큼 자전거 도로가 세밀하고 치밀하게 잘 설계되어 있다. 직장이나 학교까지의 거리가 조금 멀다면 ‘전동 자전거(electric bike)’를 보유하고 있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면 ‘카고 바이크(Cargo bike)’를 활용한다. 이처럼 상황과 목적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도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차량을 보유하지 않은 이들이 때로 장거리 여행이나 출장으로 자동차가 필요할 때는 ‘썬플릿트(Sunfleet)‘ 등의 자동차 렌트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는 기존 렌트카와는 달리 시간, 분 단위로 자동차를 대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자전거만을 보유한 가족들에게 인기가 높다. 물론 북유럽답게 자전거의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기본적으로 안전하고 오래 탈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다 보니 대부분의 자전거는 기본 이상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고, 가격이 높은 편이다.
수리비도 만만치 않기에 대부분 자전거를 스스로 관리하고 유지한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에 가면 자전거에 관련된 전문 코너가 별도로 있고 아이템들도 전문가 수준으로 다양하다. 북유럽의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는 수많은 자전거 디자인과 퀄리티 높은 액세서리 용품들도 눈을 즐겁게 해준다(자전거 디자인에 대한 부분은 별도로 다음 연재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이렇듯 자전거의 보급률이 절대적으로 높은 이곳을 들여다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의 어르신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60대 혹은 70대 이상인 분들 중 허리가 굽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전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평생을 해온 ‘자전거 타기’와의 연관성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정말 이곳 사람들은 1년 내내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가 와도, 추운 겨울에도, 바람이 불어도 변함없이 페달을 밟는다. 또 정말 잘 탄다(어린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건강을 위한 스포츠의 개념이 아니라, 늘 일상화되어 있는 그리고 모두가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일상의 패턴이 자연스럽게 ’건강’이라는 선물을 덤으로 안겨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필자도 자전거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스포츠임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곳에 와서 눈으로 보고서야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건강한 삶을 디자인하는 나라
그렇다. 필자가 보아온 이곳 사람들의 삶은 건강하다. 단순히 아프지 않고 병이 없음을 떠나서 이들은 ‘건강한 삶(wellbeing for life)’을 살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여유로운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실현하고 있는 이들의 일상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자전거’라는 운송수단, 아니 오히려 문화에 가까운 이 현상이 이들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하나의 중요한 ‘촉매제(Catalyst)’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필자도 아침 출근길에 이 자전거 부대(?)에 합류할 때면 묘한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환경을 위해 그리고 건강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 하고 있다는 대견함 같은 것일지도.
삶이 건강하다는 것, 눈빛이 건강함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이 건강한 삶을 만들어 주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운동(exercise)’이다. 이는 단순히 몸의 건강만을 위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운동을 통해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건강한 삶이 지속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이 요소가 이곳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의 한 부분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건강한 삶은 과연 스스로가 이루어 낼 수 있는 단순한 개인 과제일까? 단순히 내가 열심히 운동하고, 식습관을 조절하고, 무리하지 않고 살면 건강한 삶을 이룰 수 있을까? 적어도 필자의 눈엔 이곳 북유럽 국가들이 이 질문에 조금 다르게 접근하는 것 같다.
바로 이러한 과제를 알게 모르게 정부 차원에서 돕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인프라의 구축과 시스템, 그리고 환경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들의 과제를 더 이상 개인만의 것이 아닌 국가의 과제로 이끌어내는 것에 핵심이 있다. 실제로 이들은 어떠한 결정이 지구의 환경을 위하고 개인 삶의 풍요로움을 위한 길인지 늘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본다.
유사한 사례로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의 전기 자동차 보급률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질적인 혜택 즉, 정부 보조금, 세금 감면, 전기 충전소의 인프라 구축 등이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특히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한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전기차 구매 전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의 미래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영리함을 보이고 있다. 자국의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는 석유 사용을 장려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이들은 보다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들의 후손을 생각하고 미래의 깨끗한 환경을 위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 같은 결정에 적극적으로 따르고 실천에 참여한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이론이다. ‘모두를 위한 올바른 결정을 함께하고, 모두가 이를 잘 실천한다’. 단순하게 표현된 한 문장이지만,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렇듯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후대에 그 삶을 이어준다는 것은 더 이상 혼자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과제는 아닌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의 일상을 돌아보기를 원한다. 미세먼지, 대기오염 등 환경의 피폐함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그 걱정은 우리의 후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포함한) 을 위해 어떠한 일들을 실천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지금이다. 이번 연재에서 다룬 자전거 타기를 비롯해 분리수거, 대중교통 이용, 재활용 실천 등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변화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이러한 사소한 결정들은 개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 그리고 후대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선택’들이다. 이 선택의 결과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드시 나타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