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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88 서울올림픽 그래픽 매뉴얼을 Fax하다.

2018-01-24


 

 

30년이 지난 88 서울올림픽 그래픽 매뉴얼을 복각한 이들이 있다. 기업이나 IOC가 아닌 이제 발걸음을 뗀 신진 디자이너 듀오 팩스(Fax)가 그 주인공이다. 

4kg에 육박하는〈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그래픽 아이덴티티 스탠다드 매뉴얼〉 안에는 선배디자이너들이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낸 88 서울올림픽의 디자인이 복각되어 있다. 

“왜! 만들었냐?”고 물었다. 거창한 이유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무도 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맞다. 왜 그동안 반드시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 

“왜! 이름이 팩스냐?”고 물었다. 큰 뜻 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프라이탁 가방에 팩스라고 쓰여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단순 명료하다. 

그래, 책을 만든 이유도, 스튜디오 이름을 지은 이유도 간단하다. 

이게 팩스다.

 

팩스(Fax) 디자이너 듀오 (좌)이재훈 (우)이성은

팩스(Fax) 디자이너 듀오 (좌)이재훈 (우)이성은


 

#시작

팩스는 같은 회사 동료였던 이재훈과 이성은이 의기투합해 만든 곳이다. 둘은 공통분모도 많았고 늘 앞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나눴다. 

수만가지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누적되었고, 한국에서 체계적인 디자인이 도입된 88 서울올림픽으로 다다랐다. 

아이디어를 낸 이성은 디자이너는 그래픽을 전공했기에 엠블럼은 누구의 디자인인지, 마스코트 디자인은 누구가 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재훈 디자이너는 사실 알지 못했다. 

아차 싶었다. 해외에는 큰 행사가 끝나도 주도한 디자이너의 이름이 널지 알려지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2015년에 킥스타터에 있었던 나사의 그래픽매뉴얼 북 재발간 프로젝트처럼 국내에도 과거의 유산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래픽디자인 서적을 만들고 싶었다. 

“서울올림픽과 과거의 디자인 그 자체로 좋은 동기였어요” 

그렇게 팩스는 만들어졌고, 88 서울올림픽 디자인 매뉴얼 복각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그래픽 아이덴티티 스탠다드 매뉴얼〉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그래픽 아이덴티티 스탠다드 매뉴얼〉


 

#난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문체부에서 진행한 공공누리 정책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국가에서 공공의 자산을 지정해 등급별로 라이선스를 풀어 사업화할 수 있게 해 놓은 제도로 거기에 서울올림픽 포스터 등 당시 그래픽디자인과 관련된 소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공공누리 정책 1번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있었어요. 가능성이 있어 보였어요”

그렇게 문체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IOC 허락없이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모든 저작권은 IOC에 귀속되는 것이었다. 큰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시 손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들을 찾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미 알려진 데이터들도 각기 다른 정보로 나와 있었다. 

특히 2년 전에 공개된 올림픽 헤리티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진행한 캐나다의 한 에이전시에서 서울올림픽의 휘장에서 발견된 오류를 수정했다는 내용이 온라인 저널 ‘브랜드 뉴(Brand New)’에 올라왔다. 

그 당시 그려졌던 휘장에 오류가 있어 자신들이 수정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팩스가 확인한 원본 매뉴얼에는 오류가 없었다. 이런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싶었다.

“저희가 만들고자 한 디지털 자료는 오류를 바로잡고, 원본 매뉴얼의 다양한 규정을 참고하여 올바르게 복각하는 것이었어요. 또 우리의 소중한 디자인 유산을 모두가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그들은 원본을 찾는 것보다 저작권을 가진 IOC의 허락을 맡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무모한 도전이었고 답답한 시작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오류를 다 잡고자 한 그들의 기획력과 진정성 있는 노력이 IOC의 문을 열게 했고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먼저 편집보다는 스캔해온 다양한 매뉴얼과 문서들을 확인하고, 필요한 그래픽 디자인 소스들을 선별하여 벡터로 복각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당시 휘장이나 마스코트, 픽토그램에 그리드가 있었지만, 인쇄과정에서 오차가 생겼는지 매뉴얼별로 생김새가 달라 작업 중간중간 계속 비교해가며 수정을 거듭했어요. 온갖 매뉴얼과 문서들에 있는 규정을 옮겨 담으며 구성을 몇 번이나 갈아엎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공식 보고서와 세부적인 규정에 대한 문서를 밤새 찾아 발췌해가며 책을 완성해갔다.

 

 


#논란

이 프로젝트가 처음 기획과 다르게 국가나 기업 지원 사업에 수차례 탈락하면서 제작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미 그들이 사업 자금으로 마련한 퇴직금도 한계를 보였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계획에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다. 또 비슷한 사례를 들며 IOC가 우려를 표명했다.

더 물러설 곳이 없던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고 다행히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디자인계의 질타였다. ‘디지털 데이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작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 원작자의 작업을 상의도 없이 가져다 쓰는거 아냐? 상업적인 목적으로 올림픽의 헤리티지를 가져다 쓴다’ 등 많은 논란이 이어졌다.

그들은 제작 단계에 원작자를 찾아가기보다 완성된 결과물을 가지고 찾아가고 싶었다고 한다. 책을 통해 자신들의 진정성을 알리고 오류가 있다면 본격적인 제작 전에 수정해서 책을 완성하고 싶었다. 

 


 

 “최종적으로 사용된 내용을 비교 대조하여 원작을 유추해 나갔습니다. 당시 매뉴얼 북과 관계자 가이드 북, 각종 신문과 서류를 모두 훑어 가면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날짜까지 체크해 오류를 최소화했습니다. 저희가 고친 것은 ‘읍니다’를 ‘습니다’로 고친 것뿐입니다. 

또 88 서울올림픽에는 많은 선배디자이너가 참여하셨습니다. 하지만 기존에는 서울올림픽위원회라고만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엠블럼 디자이너 양승춘 / 픽토그램 디자이너 황부용/마스코트 디자이너 김현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익을 바라고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게 아닙니다. 제작비와 IOC에 지출해야 하는 로열티를 제외하면 전혀 남지 않습니다.”

 


 

논란이 있고 난 후 원작자나 선배 디자이너들을 만나 오해를 풀었지만, 책은 초기 기획이었던 3권에서 1권으로 마무리 되었다.

“IOC에 더는 경제적인 이유로 진행을 할 수 없다고만 의사전달을 했어요. 논란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라 한계가 왔어요.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나지만, 추후에 누구라도  IOC의 허락을 받거나 국가나 단체에서 대신 사용권한을 취득하면 그동안 힘들게 디지털 작업해 놓은 그래픽 소스가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프로젝트88: 현시대 디자이너가 바라본 88올림픽〉

〈프로젝트88: 현시대 디자이너가 바라본 88올림픽〉


 

#다시, 시작

우여곡절 속에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그래픽 아이덴티티 스탠다드 매뉴얼〉 발간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팩스는 이제 시작이다. 

그 처음으로 서울올림픽 그래픽 매뉴얼 북을 제작하면서 기획한 〈프로젝트88: 현시대 디자이너가 바라본 88올림픽〉을 출간했다. 현 시대를 사는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서울올림픽에 대한 그래픽 작품집으로 IOC의 규제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작업한 작업물이다.

“팩스는 브랜드 컨설팅 디자이너 듀오에요. 경험을 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거에요. 현재는 기업에서 아웃소싱 받은 일을 하고 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뢰 받아 준비 중입니다. 

또 저희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팩스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UX 디자이너, 니팅 아티스트 등 멤버가 다양합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88 서울올림픽 그래픽 매뉴얼 복각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디자인을 만들어갈 팩스.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한다.

 

88 서울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 두번째는 프로파간다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팩스(www.f-a-x.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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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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