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2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 한 편은 있다.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영화 ‘타이타닉’의 팸플릿은 아직 서랍 속 한쪽에 보관되어 있다. 극 중 잭이 바다로 가라 앉을 때 나도 같이 깊은 심연에 빠지는 듯 통곡했던 기억이 난다. 이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지만 영화를 추억할 수 있는 건 극장에 비치된 팸플릿뿐이었다. 이렇듯 예전에는 영화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법이 팸플릿과 포스터에 불과했다면 요즘은 다양한 굿즈가 영화개봉과 맞춰 선보이고 있으며, 잘 만든 굿즈는 영화를 흥행으로 이끌기도 한다.
얼마 전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재개봉하면서 수입, 배급사인 안다미로필름에서는 비디오테이프를 굿즈로 선보였다.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바로 다운로드가 가능한 현재, 찾아보기도 힘든 비디오테이프라니…
이 재미있는 작업을 기획한 안다미로필름을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안다미로필름은 어떤 회사인가요?
2014년부터 영화를 수입, 배급해 온 파릇파릇한 영화 수입사입니다. 지금까지 예술 영화, 상업 영화, 애니메이션 등 저희가 좋아하는 영화를 개봉해 왔어요.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분에게는 히치콕 특별전, 짐 자무쉬 특별전, 데이빗 린치 특별전 같은 거장 감독 특별전을 주관하는 회사로 기억되고 있어요.
Q. 굿즈를 기획할 때 가장 초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작품과 잘 어울려야 해요. 작품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이미지나 아이템을 활용하는 편입니다. 또 관객분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굿즈를 증정하는 스페셜 패키지 상영 때마다 좌석이 매진되는 걸 보며 굿즈의 힘을 새삼 느껴요.
Q. 〈원더풀 라이프〉는 어떤 영화인가요? 이 영화의 굿즈로 비디오테이프를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기억에 관한 영화예요. 망자는 천국으로 가는 중간역 림보에서 7일간 머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해요. 선택한 기억은 림보의 직원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고 이를 본 망자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면 그 기억만을 안고 비로소 천국으로 가게 된다는 특이한 설정의 영화예요.
영화에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합니다. 망자의 삶은 1년에 하나씩 비디오테이프로 녹화되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비디오테이프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인생에 남은 기억과 기록,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영화 속 아이템이 비디오테이프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홍보하는 굿즈로 비디오테이프를 선택했어요. 또 비디오테이프란 것이 우리 모두의 기억 어딘가에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제작을 결정하는 데 큰 요소였죠.
Q. 비디오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반대도 있었을 것 같아요.
반대는 없었어요. 비디오 플레이어를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됐지만, 비디오테이프라고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기억, 추억이 있지 않나요? 아마 대부분은 좋은 기억일 거예요. 관객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기억을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수입한 〈원더풀 라이프〉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영화들은 그 시절 비디오로 계속 돌려보던 추억이 있는 영화예요. 극장에서 관람 후 ‘예전 그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도 의미가 있지만, 비디오 화질로 관람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는 분들에게도 비디오를 소장한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을 것 같았고요.
Q. 비디오테이프는 어느 회사에서 디자인했나요?
〈원더풀 라이프〉의 포스터 디자인을 맡은 ‘프로파간다’에서 디자인했어요. 추억 속 비디오테이프의 느낌은 살리되 촌스럽지 않게, 영화와 잘 어울리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Q. 제작과정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회사에서 직접 제작했습니다. 대표님이 우연히 집에서 비디오플레이어를 찾으셨어요. 버린 줄 알았는데 아버지께서 보관하고 계셨던 거죠. 회사 직원들은 비디오플레이어 사용법을 몰라서 대표님이 직접 테이프를 녹화해요. 비디오테이프용 케이스를 따로 구매한 후 출력한 슬립을 넣고, 공테이프를 사서 영화를 녹화하고 라벨을 붙여 만들어요. 모두 수작업이에요. 예전 비디오 제작 회사처럼 동시에 여러 편을 녹화할 수가 없어서 하나씩 녹화하느라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어요. 지금도 대표님의 하루는 비디오 녹화로 시작해서 비디오 녹화로 끝나고 있답니다(웃음).
Q. 지금까지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영화 굿즈가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2015년 10월에 〈빽 투 더 퓨쳐〉 재개봉 기념으로 만들었던 굿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영화에 등장했던 사진, 신문기사 등의 소품을 거의 똑같이 만들었고 이를 검은 봉투에 담아 관객분들께 드렸어요. 이 덕분인지 영화도 순식간에 매진이 됐어요. 그때도 디자인사가 프로파간다였습니다.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실장님이 〈빽 투 더 퓨처〉의 열혈 덕후라 소장 중인 아이템이 많았고, 이를 참고로 제작에 큰 도움을 주셨어요.
Q. 제작 중이거나 예정인 영화 굿즈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앞으로 저희가 개봉하는 영화에는 꾸준히 굿즈를 만들어서 관객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특히 비디오테이프는 다른 영화 굿즈로도 제작할 의향이 있어요. 작년에 이미 개봉했지만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비디오테이프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지 내부에서 논의 중이에요.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안다미로필름(facebook.com/andamirofil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