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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우리를 감싸고 있는 현대 하이테크 섬유-하이테크 섬유와 직물을 이용한 산업디자인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 2017-12-28

 


 

오늘날 스위스에서는 첨단 기능성 직물의 제조 및 수출입이 이 나라 총 직물 시장의 절반을 차지고 있을 만큼 막강한 주도산업이라고 한다. 첨단 테크 직물이 스위스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스위스 상크트 갈렌 직물박물관은 ‘신소재(Neue Stoff - New Stuff)’ 전을 기획하고 스위스의 여러 첨단 섬유산업과 디자인 기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점검해 보면서 과학기술로 디자인될 첨단 섬유 제조업은 계속 성장할 유망 미래 산업임을 제시한다. 

 

‘직물’하면 우선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입는 패션과 인테리어 장식에 쓰이는 옷감과 천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은 직물은 우리 일상 주변에서 예상치 못한 사물과 환경 속에서 훨씬 널리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추운 겨울철 얇으면서도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성 보온 섬유나 디지털 모바일 기기의 부품이나 소재로 사용되는 스마트 섬유 등의 일상 소비재에서만 아니라 오늘날 보건용 의학용품, 건강상품, 자동차, 건축, 에너지 발전에 현대 사회는 여러 첨단 직물과 테크 섬유가 사용되지 않는 곳에 없을 정도가 되었다.

 

스위스 상크트 갈렌 직물 박물관과 소재 아카이브에서 2018년 4월 2일까지 열리는 ‘신소재(Neue Stoff - New Stuff)’ 전시회 광경. 섬유와 직물 소재를 건축자재로 응용한 소재 기술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건축물과 인테리어 디자인 아이템의 기상천외한 조형미와 초경량 시공 기법이 가능해졌다. Photo: Jürg Zürcher.

스위스 상크트 갈렌 직물 박물관과 소재 아카이브에서 2018년 4월 2일까지 열리는 ‘신소재(Neue Stoff - New Stuff)’ 전시회 광경. 섬유와 직물 소재를 건축자재로 응용한 소재 기술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건축물과 인테리어 디자인 아이템의 기상천외한 조형미와 초경량 시공 기법이 가능해졌다. Photo: Jürg Zürcher.

 

 

인류 태곳적부터 천연 동식물에서 추출하고 가공하여 외부로부터 인간의 몸을 감싸서 보호 기능과 미적 기능을 해온 직물은 오늘날 다목적 일상 소재로 자리 잡았다. 인류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연의 섭리에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 놀라운 기능을 하는 소재로 발달했다. 오늘날 물리와 역학을 비웃으며 기상천외하고 절묘하게 디자인된 건축과 인테리어용 오브제들의 다수는 첨단 기능성 섬유의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요즘 건축과 디자인에 내구성을 주기 위해 널리 쓰이고 있는 콘크리트 보강 직물(concrete-reinforced textile)은 13 밀리미터 두께의 얇고 투명한 연약한 거즈 천에 불과한 듯해 보이지만 내구강도는 콘크리트에 버금갈 만큼 견고하다. 본래 영국에서 19세기에 토목공사와 건물 건설용으로 처음 아이디어가 컨셉화되었으나 지금은 스위스의 첨단 섬유 제조 업체 라인 탈러 피르마(Rheintaler Firma) 같은 전문 업체가 생산하여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이 사진 맨 앞에 보이는 청색의 접을 수 있는 보트는 스위스의 첨단 섬유 제조업체 피르마 클레퍼(Firma Klepper)의 제품. 폈다 접었다 할 수 있어 운반이 쉽도록 디자인된 이 보트의 몸체의 골조 위에 이 업체가 개발한 특수 직물을 입혀 제작했다. Photo: Jürg Zürcher.

이 사진 맨 앞에 보이는 청색의 접을 수 있는 보트는 스위스의 첨단 섬유 제조업체 피르마 클레퍼(Firma Klepper)의 제품. 폈다 접었다 할 수 있어 운반이 쉽도록 디자인된 이 보트의 몸체의 골조 위에 이 업체가 개발한 특수 직물을 입혀 제작했다. Photo: Jürg Zürcher.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고하며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가 일상화되어 현대인의 일상 활동이 나날이 노마드화, 스피드화, 하이브리드화되고 있는 요즘, 첨단 신직물과 섬유에 대한 수요는 과거 그 언제보다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직물 소재는 다른 재료에 비해서 가볍고 질기며 사용성 면에서 융통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제조공정이 쉽기 때문에 현대적 라이프스타일 상품 개발에 매우 유용한 제품 소재가 되어 준다. 다양한 소재를 적절한 비율로 조합해 제조공정을 가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첨단 섬유와 직물로 생산이 가능할 수 있다고 섬유 과학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첨단 섬유의 제1차적 요건은 뭐니 뭐니 해도 기능성(functionality)이다. 첨단 기능성 섬유는 이미 19세기부터 인류 건축과 토목 공학의 발전에 눈부신 기여를 했었다. 알프스의 미봉 스위스 마터호른 등반을 일반인에게도 가능하게 해준 등산열차와 케이블카용 케이블선, 제펠린 비행선에 쓰인 일명 ‘제펠린 로프’, 스카이다이버용 낙하산 밧줄에서 인공위성용 전자기 밧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엔지니어링의 업적은 기능성 섬유 덕분에 가능했다. 오늘날 항공 우주과학 분야에서 채용되고 있는 우주선용 안전벨트는 기존 폴리에스터에서 훨씬 가벼운 자일론(Zylon) 소재로 교체한 후로 매 우주 항해 당 1백2십5만 달러를 절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일론 첨단 섬유를 다양하게 응 용한 기능성 직물은 현재 코르텍스 휨벨린(Cortex Hümberlin AG) 사가 생산하고 있다.

 

1940년대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디자인된 벨로렉스 소형 자동차는 가볍고 연료 효율적인 대중적 자가용 승용차를 보급하기 위하여 무거운 금속 대신 비닐 소재의 합성섬유 소재 바디를 채택했다. 벨로렉스는 오늘날 빈티지 자동차 컬렉터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골동 자동차가 되었다. Photo: Jürg Zürcher.

1940년대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디자인된 벨로렉스 소형 자동차는 가볍고 연료 효율적인 대중적 자가용 승용차를 보급하기 위하여 무거운 금속 대신 비닐 소재의 합성섬유 소재 바디를 채택했다. 벨로렉스는 오늘날 빈티지 자동차 컬렉터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골동 자동차가 되었다. Photo: Jürg Zürcher.

 

 

항공업계가 제펠린 비행선을 위한 제펠린 로프를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면, 자동차 업계에서는 1940년대 말엽에 등장한 벨로렉스(Velorex) 체코산 자동차를 손꼽는다. 바퀴 3개가 달린 이 작은 몸통을 가진 벨로렉스의 바디는 비닐 소재의 합성섬유를 당기고 늘려서 주형으로 찍어 만든 것이다. 유사한 예로, 1950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옛 동독에서 제조된 트라반트(Trabant) 자동차도 가볍고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금속판 차체 대신 면과 합성수지를 섞은 신 플라스틱 소재를 바디로 써서 자동차 제조업계에 소재 혁신을 일으킨 중요한 자동차 디자인사의 한 이정표로 꼽힌다. 현재 생산 중인 BMW 301i 모델 자동차의 차체도 언뜻 보면 금속 소재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실은 탄소섬유를 가공한 플라스틱에 가까우며, 이 차 실내의 비콤프(Bcomp)라 불리는 신개발 섬유는 스위스에서 개발된 천연원료가 기반된 복합 강화섬유다.

 

(왼쪽) 경찰, 소방관, 군인을 극도의 열, 화학 오염, 폭발물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개발된 첨단 직물 제복과 보호복. (오른쪽) 특수 첨단 섬유와 직물은 인간 신체의 외과적 보형 보철물로서만이 아니라 인공 내장기관으로 널리 활용될 날이 곧 올 것으로 보인다. Photo: Jürg Zürcher.

(왼쪽) 경찰, 소방관, 군인을 극도의 열, 화학 오염, 폭발물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개발된 첨단 직물 제복과 보호복. (오른쪽) 특수 첨단 섬유와 직물은 인간 신체의 외과적 보형 보철물로서만이 아니라 인공 내장기관으로 널리 활용될 날이 곧 올 것으로 보인다. Photo: Jürg Zürcher.

 

 

그런가 하면 첨단 합성섬유는 인류의 안전과 보건에도 큰 기여를 했다. 마 소재로 만든 소방용 양동이, 열, 화염, 냉기, 총칼 등 무기의 공격 등 생명에 극한 외부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는 방화·방수·방열복, 구조용 밧줄 등은 재난 시 구급활동을 효율화하고 인명구조에 현격한 도움을 주었다. 의료용 첨단 직물은 상처 부위를 처치하는데 사용하는 드레싱용 직물, 근육경화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냉각 재킷, 팰럴림픽에서 신기록 경신을 거듭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신체 보철물 등 외부적 치료용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체 삽입용 내장기 - 예컨대 인공 뼈, 스텐트, 심장, 간, 자궁 등 - 의 생산에도 활용되고 있어서 인공 장기가 타인이 기증한 천연 장기를 완전히 대체할 날은 그다지 머지않은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신 섬유 개발에는 여러 기술적 전문성을 갖춘 타 산업분야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주시대와 첨단 기술 지향적 21세기형 산업일수록 과거 전통과 기술적 노하우를 신 기술과학에 응용하여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착상하곤 한다. 그러한 사례로, 전통 자수 직물을 생산해 오던 스위스 업체 포르스터 로너(Forster Rohner AG) 사는 스위스 기술혁신위원회(CTI)와 여러 테크 연구소와의 연구 협력을 거쳐서 전도성 있는 전자 실과 LED를 융합한 자수 직물을 개발해 웨어러블 산업에 박차를 가했다.

 

(왼쪽) BMW 301i 3 모델은 탄소 합성섬유로 차체와 실내장식을 하여 차체 무게를 현격하게 줄였다. (오른쪽) 스위스의 포르스터 로러 직물 혁신사가 LED 조명을 섬유와 함께 직조한 첨단 섬유다. Photo: Jürg Zürcher.

(왼쪽) BMW 301i 3 모델은 탄소 합성섬유로 차체와 실내장식을 하여 차체 무게를 현격하게 줄였다. (오른쪽) 스위스의 포르스터 로러 직물 혁신사가 LED 조명을 섬유와 함께 직조한 첨단 섬유다. Photo: Jürg Zürcher.

 

 

‘하이테크 지향적 섬유 및 직물 혁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직물’에 대한 인습적 개념과 정의를 과감하게 깨고 재고해야만 가능하다’고 상크트 갈렌 직물 박물관의 미하엘라 하이헬 (Michaela Reichel) 관장은 강조한다. 예컨대 초미세 철사 줄을 엮고 짜서 만든 그물 철망 또한 사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직물’이 될 수 있다는 소재에 대한 개념적 전환이 있어야만 여러 산업분야와 소재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신 섬유 개발을 할 영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첨단 섬유가 자연 섬유 보다 기능적으로 우수한 이유는 생산의 용이성이다. 천연 섬유는 직조 과정에서 실을 늘이고 짜는데 길이의 한계가 있지만 인조 섬유는 끊임없이 무한 길이로 실을 짜낼 수 있어서 용도에 따라 모양새를 디자인하고 가공하기 쉽다는 장점을 잘 활용하는 것이 다용도 신 섬유와 직물 디자인 혁신의 열쇠다. 직물 디자인은 과거 직물의 역사와 기술 전통과 하이테크라는 신구(新舊)의 합리적인 결합을 요하는 첨단과학 분야다. ‘신소재 (Neue Stoff - New Stuff)’ 전(2018년 4월 2일까지)은 손에 잡히지 않는 섬광과도 같은 디지털 만사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디자이너들에게 다시 한 번 산업디자인은 손에 잡히고 인간의 신체와 상호작용하는 ‘사물’임을 환기시켜 주는 전시회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사진제공_ Textilmuseum St.G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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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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