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아트 | 리뷰

디자이너를 위한 과정과 크리틱의 향연

김영학(yhkim@jungle.co.kr), 나태양(tyna@jungle.co.kr) | 2015-08-19


전문가에게 면대면으로 디자인을 배우고 조언을 듣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멘티로 참여해 전문가인 멘토로부터 디자인에 대해 심층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바로 디자인학교에서 처음 시도한 디자인캠프다. 디자인정글에서는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디자인캠프를 취재, 2회에 걸쳐 정리했다.

에디터 | 김영학(yhkim@jungle.co.kr), 나태양(tyna@jungle.co.kr)
 


과정 중심의 커리큘럼, 디자인캠프 문을 열다

증가하고 있는 디자인 수요에 비해 전문 교과과정, 즉 대학의 커리큘럼을 거치지 않고서는 디자인을 배울 곳은 마땅치 않다.

사설 학원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이해나 과정보다 디자인 관련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데 열중하는 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문을 연 곳이 바로 디자인학교 (www.designerschool.net))다. 디자인학교는 디자인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착한 가격에 높은 수준의 강의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작년 4월에 개강했다.

디자인학교를 설립한 스튜디오 루시다 옵서버 이우녕 대표(디렉터),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이지원 교수, 경향신문 윤여경 아트디렉터는 “디자인은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디자인학교는 온라인 강의를 주요한 모델로 삼고 있으나 강사와 디자이너와의 소통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과정 중심의 사고방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창작 과정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멘토와 열정 넘치는 차세대 디자이너간의 지속적인 교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학교가 디자인캠프를 개최한 근본적인 이유다.

디자인캠프 1기(이하 디자인캠프)는 8월 14일(금)을 시작으로 19일(수)까지 장장 6일 동안 국내 디자인 업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4그룹의 멘토들로부터 다양한 과정 중심의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디자인캠프는 크게 4개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SK플래닛 한명수 CD & Daylight 이준형 브랜딩 디렉터의 ‘잉여’,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성재혁 교수의 ‘스타일 연습’,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크리스 로 교수의 ‘Made+thought’,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 피플의 ‘반복과 확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4 그룹의 멘토들은 자신의 커리큘럼을 신청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듯 과제를 진행하며 발전시켜 나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한편 저녁 7시부터는 파워특강이 열렸다. 파워특강은 ‘드라마의 제왕’ 이병훈 PD, ‘한글지킴이’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한재준 학회장, ‘배달의 봉진’ 우아한형제 김봉진 대표, ‘대화의 날개’ 안그라픽스 안상수 전 대표 등이 매일 한 명씩 디자인에 대해 강연하는 프로그램이다.  


크리스 로 교수, 직관을 배우는 'Made+Thought'

첫날, 디자인정글은 크리스 로 교수의 커리큘럼에 주목했다.
크리스 로 교수는 멘티들에게 커리큘럼에 대해 “최근 디자인은 로직(Logic) 측면을 강조하는 분위기이지만, 디자이너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직관”이라며, “우리는 이번 디자인캠프에서 ‘직관’에 대해 체험해 보도록 하자”고 설명했다.

“디자인이 점차 이성적이고 명확한 소통을 추구하면서, 디자이너들이 주관적이고 모호하며 감정적인 반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성향은 디자이너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는 디자인캠프에서 생각보다 느낌을 따르는 직관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오는 즐거움을 멘티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크리스 로 교수는 캠프기간 동안 직관을 이해하기 위해 멘티들에게 직관적 타이포그래피와 직관적 형태 만들기를 진행했다.

크리스 로 교수의 과제는 ‘&’라는 문자를 폼보드를 이용해 3차원으로 표현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스터 제작, 영상제작 등 단계적으로 과제를 수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 로 교수의 주문은 간단했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 지 먼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손의 느낌대로 소재의 특성을 활용해 과정 속에서 결과물을 도출하라는 크리스 로 교수의 미션에 멘티들은 작업대에서 폼보드를 자르고 붙이며 하나하나 형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폼보드를 이용해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고, 직선적이고 평면적인 폼보드의 형태를 곡선으로 변형시켜 설치물을 만드는 멘티 등 각기 개성과 느낌을 표현해 나아갔다. 또한 첫날 만든 작품을 6일 동안 포스터 제작, 무빙 이미지(Moving Image)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멘티들은 오로지 직관에 의지해 과제에 참여하게 된다.

크리스 로 교수는 열심히 과제를 수행 중인 멘티들에게 1대1로 면담과 작품에 대한 견해, 작품 방향성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 일정이 마무리될 즈음, 크리스 로 교수는 멘티들과 함께 모든 작품들을 일일이 마주하며 작품이 지닌 특성과 느낌을 함께 나누었다.


성재혁 교수와 함께 하는 스타일 연습, 로지컬 연습

불과 2일 차에 접어들었을 뿐인데 눈에 띄게 일사불란해졌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및 자리 배치로 다소 어수선했던 현장의 인원들은 프로그램 시작과 동시에 본격적인 프로젝트 작업에 들어갔다. 성재혁 멘토와 15인의 멘티는 전날 제출한 과제들을 놓고 오전부터 크리틱을 벌이고 있었다. 성 멘토의 커리큘럼 주제는 ‘스타일 연습’. 프랑스 문학의 거장 레몽 크노의 작품 〈문체 연습〉(Exercises in Style, 1947)에서 제목을 빌려 왔다.

흔히 생각하듯 의미는 고정된 대상이고, 형식은 의미를 담는 그릇일 뿐일까? 〈문체 연습〉은 레몽 크노의 유작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문체 연습〉에서 레몽 크노는 하나의 내러티브에 99가지의 형식을 적용한다. ‘주인공이 ‘S 버스’에서 두 시간 동안 겪는 해프닝’이라는 단순한 스토리는 서정시, 타이포, 분석,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 등 각기 다른 형식을 입고 반복 변주된다.

실상 의미는 형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표현 양식에 시각적 요소가 결부된다면 더욱 그렇다.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제작되는 디자인에서 스타일은 메시지 전달의 매개체로 역할 한다. 개별 아티스트의 다양성은 장르라는 가지 안에서 또 한 번 스타일을 세분화시킨다.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이 과업일지언정, 디자이너의 스타일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근본적인 색깔처럼 결과물에 묻어나게 마련이다.

‘스타일 연습’은 디자이너를 위한 스타일 훈련 프로젝트다. 성재혁 멘토는 디자이너라면 응당 자신만의 스타일을 인지해야 한다는 기조 하에 제법 까다로운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캠프 첫날, 멘티 3~4명으로 꾸려진 총 4개 팀은 무작위로 키워드를 추첨했다. 각 팀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두 개, 명사 두 개를 조합하여 하나의 문장을 지어낸 후, 해당 문장에서 연상되는 음악 장르에 적합한 시각적 콘텐츠를 포스터로 구현하게 된다. 개별 팀원은 자율적으로 미션을 해석할 수 있지만, 익일에는 자신의 작업물을 넘기고 다른 팀의 미션을 이어받아 자신의 음악 장르와 스타일을 덧씌워야 한다. 이 같은 릴레이 과정을 나흘간 반복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인당 4장, 총 60개의 포스터가 완성될 것이다. 캠프 마지막 날엔 60장을 한꺼번에 전시한다.

‘스타일 연습’의 분위기는 전날 살펴봤던 크리스 로 팀과는 사뭇 달랐다. 크리스 로 멘토가 ‘직관’을 강조했다면, 성 멘토의 수업은 ‘로직(logic)’에 무게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성재혁 멘토는 대개 반목과 불통으로 묘사되곤 하는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관계에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성 멘토에 의하면 클라이언트는 ‘설득’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이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감각적이거나 감성적인 태도로만 디자인에 접근한다면 클라이언트와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비전문가의 의도를 전문적인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직무라면, 디자이너는 당위성을 바탕으로 목적을 잘 달성하였음을 클라이언트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신호등의 멈춤 신호는 왜 빨간색인가? 예를 들면, 몸을 다쳐서 보니 붉은 피가 흘러나오더라.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빨강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색으로 굳어졌을 수 있다. 비상구 표지는 왜 녹색인가? 녹색은 빨강의 보색이다. 화재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라는 기능성을 기반으로 선택된 것이다. 이렇듯 디자인에는 직관과 감성뿐만 아니라 논리, 상징, 과학도 있다. 디자이너가 그저 ‘내 눈에 보기 좋아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면 얼마나 많은 클라이언트가 동의할까? 그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면 그만이 아닌가?”

 

성 멘토는 디자인의 스타일과 내용은 자의적이기보다 합리적으로 관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호학적인 관점이 돋보이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미지 기호학을 깊이 있게 다루기에 6일 과정은 턱없이 짧다.

이에 성 멘토는 새로운 방향에서 디자인에 접근하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나가는 데 커리큘럼의 주안점을 둔다. 스타일 연습’의 멘티들은 주어진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대신, 기존의 시각체계라는 소스에 시각적인 재작업을 가하게 된다. 변주와 자기화 과정을 통해 로직을 훈련하고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성 멘토는 멘티들의 작품을 돌아보며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멘티들은 노트북을 들고 자문을 구하러 오기도 하고, 멘토의 조언을 묵묵히 노트에 받아 적어 내려가기도 했다. 때로는 성 멘토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해보지만, 성 멘토의 통찰력을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매일 한 장의 포스터를 완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언어, 음악, 디자인 간의 인터랙션을 성취해야 하는 ‘스타일 연습’의 커리큘럼은 빡빡해 보여도 의외로 큰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성 멘토가 중간중간 “완성도에 집착하지 마라. 러프해도 상관 없다”고 상기시키는 덕분인 듯했다.

facebook twitter

#전시 #문화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