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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디자인 이야기

2013-08-16


올가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을 앞두고, 과천관의 대대적인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사진, 공예, 미디어, 건축 전용 전시장에 생긴 데 이어 디자인 상설 전시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내년 2월 23일까지 진행될 <디자인, 또 다른 언어> 展은 디자인 상설 전시장의 시작을 알리면서도, 동시대 디자인과 호흡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에는 고만기, 김영나, 김한규, 김희원, 박원민, 이은재, 이정민, 이제석, 잭슨홍, 최정유 등 디자인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젊은 디자이너들이 어떤 언어로 소통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에디터 | 정은주( 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최근 디자인을 비롯한 예술분야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슈는 영역과 장르에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10명의 작가들은 이러한 문법을 따르면서도, 독창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산업 디자인과 금속 공예를 전공한 고만기 작가는 2009년부터 금속과 기계와의 접점에서 발견된 금속 디자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에 제작한 ‘로킷’은 슈퍼마켓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카트에 유닛들을 장착해,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것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여기에 무거운 축전지나 모터가 아닌 충전식 핸드드릴만 있으면, 이것을 동력으로 저속 주행, 고속 주행, 후진까지 가능하다. 기존의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창작이 가진 숙명과도 같다. ‘로킷’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유쾌한 발상의 전환을 이룬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는 일련의 종이 규격 사이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Table A' 시리즈를 발표했다. A4, A3, A2, A1, A0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표준화된 종이 규격을 물성을 가진 테이블로 제작한 것이다. A 시리즈는 거의 모든 서류와 인쇄물의 형태를 만들어왔다. 1mm의 오차라도 발생한다면,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물질이 되고 만다. 완벽한 규격과 절차에서 시작되었지만,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된 다양한 컬러와 임의적인 다리 프레임 등을 통한 변주는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박원민 작가는 ‘희미한 연작’을 통해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다면, 그에 맞는 작업 방식은 항상 새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번 작품은 레진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테이블, 책장, 의자 등을 디자인한 것이었다. 색 만들기부터 시작해 작업 과정이 전체적으로 까다로운 편이지만, 레진을 통해 기존의 가구 디자인에서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형태는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흰색, 회색, 남색 등의 컬러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한 편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과 디자인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잭슨 홍의 ‘슬래쉬 체어’는 비스듬한 선 모양의 문장기호인 슬래쉬에 착안해 의자의 전체적인 구조를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의자를 제작할 때는 안락함과 편리함 등의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데, 잭슨 홍은 이와는 반대로 1.6mm 두께의 얇은 강판을 절곡하고 교차함으로써 예리함과 서늘함을 전달하려 했다. ‘슬래쉬 체어’는 분명 직접 사용할 수도 있고,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지만 그 전에 익숙한 디자인의 관념을 깨버렸다는 점에서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상과 만나는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내에 디자인 상설 전시장을 열기 전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전체 디자인 소장품이 10점 내외였으며, 디자인 전문 큐레이터가 부재한 상황에서 전시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자인 전시의 필요성은 미술관 내, 외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기에, 구병준 큐레이터와의 협력을 통해 첫 전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 디자인 상설 전시관 운영과 함께 전문 학예 인력의 충원과 연구 등이 좀 더 활발히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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