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 2017-08-29
퍼렐 윌리엄스, 크리스 브라운, 사만다 론슨, 솔자 보이, 지드래곤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비주얼 아티스트 미나 권의 작품을 탐냈다. 실제로 그들 한 명, 한 명과 함께 작업한 미나 권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유명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예술 영역을 확대했다. 이번에는 스트리트 브랜드 ‘그래피커스’와 CJ E&M의 미디어커머스 브랜드 ‘마이씨티’와 협업했다. 힙합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힙합 컨셉트의 협업은 유달리 쉽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려하게 작업했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신사(이하 무) 당신은 누구인가?
미나 권(이하 권) 창작을 굉장히 즐기고 사랑하는 아티스트, 미나 권이다.
무 정말이지 당신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소위 ‘창작의 고뇌’와는 거리가 먼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권 창작하는 행위 자체가 정말 좋다. 그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든. 그래서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시작이랄 것도 없다”고 얘기한다. 희미한 기억만 있는 어린 나이부터 당연하게 스케치북을 손에 들고 살아왔으니까.
무 이토록 창작을 사랑하는 당신과 그동안 함께 수차례 협업을 진행한 스트릿 브랜드 ‘그래피커스’의 소개로 이번엔 CJ E&M의 미디어커머스 브랜드 ‘마이씨티’와 삼자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전반적인 컨셉트가 궁금하다.
권 이 프로젝트의 초반에 여러 차례 '그래피커스', '마이씨티'와 함께 미팅을 진행하면서 'Welcome to My City'라는 테마를 선정했다. 이 테마를 베이스로, 그동안 함께 작업해 온 스트리트 무드의 패션 브랜드인 '그래피커스'의 시그니처 핏과 아트워크에 대한 의견을 수용했고, Mnet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등을 통해 힙합과 스트리트 컬쳐를 트랜드로 만든 CJ E&M의 미디어 커머스 브랜드 '마이씨티'의 패션 전문 MD의 의견도 반영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힙합 씬을 대표하는 'City'인 뉴욕, 마이애미, 그리고 엘에이의 힙합, 스트리트 바이브를 그려낸 아트워크다.
무 각 도시들의 바이브를 어떻게 옷에 녹여낸 건지 궁금하다. ‘바이브’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기준이 모호하잖아?.
권 그냥 어렵지 않게, 직관적으로 해당 도시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떠오르는 것들을 담았다. 뉴욕, 마이애미, 엘에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도시들이기도 해서 쉽게 나왔다.
무 미나 권의 뉴욕은 어떤 모습인가?
권 ‘뉴욕’을 생각하면 자유의 여신상, I♥NY티셔츠, 그리고 ’Dead-Ass’라는 슬랭이 떠오른다. 여담이지만, ‘Dead-Ass’는 특히 뉴욕에서 많이 쓰는 유행어인데 ‘진짜 좋아’, ‘대박’ 같은 뜻이다. 뉴욕 출신 교포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지금 뉴욕에서 대세라고 하더라. 어쨌든, 그런 요소들과 아이디어가 합쳐져서 아트워크가 완성된다. 이를테면 ‘Dead-Ass’라는 텍스트와 I♥NY라는 텍스트를 결합한달지, 자유의 여신상이 래퍼처럼 가사를 적은 노트와 마이크를 들고 있달지. 모두 내가 느낀 대로 그린 것이지만, 사람들도 재미있게 생각하고 공감할 거라 믿는다.
무 미나 권의 마이에미는?
권 마이애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다. 파티와 사우스 비치 그리고 가끔 그곳에 출몰하는 샤크가 떠오른다. 파티, 해변, 상어 모두 힙합적으로 표현하기 좋은 요소들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생동감 있는 색들로 표현해냈다.
무 미나 권의 엘에이는?
권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피프티 센트, 에미넴 등이 계승하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 바로 LA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힙합을 사랑하는 나에게 LA는 두말할 것 없이 ‘힙합’ 그 자체다. 그래서 LA 버전에는 특히 힙합 무드를 많이 녹여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표 힙합 매거진 ‘XXL’의 커버를 패러디한 아트워크를 티셔츠에 담는 식으로. 이 이미지의 모델은 개구리 인형 ‘커밋’이고, 배경은 내가 직접 LA에서 찍은 다운타운 사진이다. 그리고 커밋이 투팍처럼 반다나를 머리에 쓰고 있는 이미지의 아트 워크도 있다. LA 버전은 힙합으로 시작해서 힙합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 무형의 것인 자기 생각을 유형의 것으로 표현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이 느낀 것들을 아트워크로 연결 짓는 과정에서의 영감들은 주로 어디서 얻나?
권 다른 것보다 힙합 음악을 들으면 영감이 샘솟는다. 힙합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도 가사에서 자극이나 착상을 얻는다.
무 최근에는 어떤 힙합 음악이 당신에게 영감을 줬나?
권 현재 힙합씬에서 주목받고 있는 뮤지션 중 한 명인‘Playboi Carti’의 ‘Magnolia’라는 곡이다. 가사와 비디오가 재미있어서 좋더라. 그 곡의 초반부에 “In New York I Milly Rock”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Milly Rock’은 다름 아닌 춤의 이름이다. 그것을 인지하고 뮤직비디오를 보면 가사와 어우러지는 춤과 패션이 ‘아트 워크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무 이번 '그래피커스' & '마이씨티'와 함께 만든 작품도 힙합 음악의 영감을 받았겠지?
권 물론이다. 그래피커스와 마이씨티와의 작업은 ‘힙합’이 메인 테마이기 때문에 더더욱 힙합 음악을 많이 듣고 가사도 많이 찾아봤다. 특히 New York 버전 티셔츠 중에 ‘Welcome to Newyork City’라는 워딩이 쓰여진 티셔츠는 뉴욕 출신 Jay-Z가 참여한 ‘Welcome to Newyork City’라는 곡의 가사를 인용한 것이다. 이 가사로 이번 아트워크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무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만, 무신사 회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아이템을 두 가지만 뽑는다면 어떤 걸 뽑겠나?
권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도 골라보자면 우선 ‘달러 아미 긴팔 티셔츠($_SIGN_ARMY_LONG SLEEVES)’를 추천하고 싶다. 실제로 매출 TOP3 안에 드는 제품이다. 그리고 사견이지만, 이번 컬렉션을 가장 직관적으로 대표하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힙합의 중요 주제인 ‘MONEY’를 대변하는 달러 사인 하나로만 디자인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시그니처 모델 같은 느낌으로 이해해주면 되겠다. 그다음으로는 ‘달러 사인 라이닝 트레이닝 세트(($_SIGN_LINING_TRAINING SET)’를 뽑겠다. 범용적인 디자인이다. 어떤 디자인의 옷은 너무 남성적이거나 혹은 여성적인데 이건 그렇지 않고 누가 입어도 부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샘플을 봤는데 그냥 예쁘더라. 보기에 예쁘면 그걸로 된 거 아냐?(웃음)
무 이번 ‘그래피커스’ & ‘마이씨티’와 함께 만든 ‘Welcome to My City’ 컬렉션을 어떤 사람이 입었으면 좋겠나?
권 옷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있는 사람. 패션에 관심도 많고, 좋아하고 그리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입어줘야 따라 입고 싶어지잖아.(웃음)
무 그러려면 이 옷들만이 가진 장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탁월한 디자인 외에도 자랑할 장점이 있나?
권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함께 한 그래피커스와 마이씨티 담당자들을 통해 기본 원단에 직접 여러 번 염색을 하고, 수차례 테스트 과정을 거쳐서 최대한 그래픽 아트워크에 적합한 컬러를 찾아내려 노력했다고 들었다. 나 역시 프로젝트 담당자들과 함께 핏 자체부터 무척 신경을 썼는데, 후드티셔츠 같은 경우에는 더 힙합 느낌을 낼 수 있도록 미디움, 라지 두 사이즈만 제작했다. 요즘 씬에서 각광받는 드롭 숄더 형태로 소매 길이를 늘려 스트리트 씬에 맞는 핏을 찾고자 노력했고, 힙합 무드가 특징인 나의 아트 워크가 잘 어우러지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자부한다.
무 미나 권의 개인적인 얘기도 궁금하다. 당신은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하잖아. 지디, 하하&스컬같은 아티스트들부터 다양한 브랜드까지. 밀려 들어오는 컬래버레이션 제안들 중 선택 기준이 있나?
권 브랜드와의 컬레버레이션은 브랜드의 느낌을 봤을 때 나와 어울리겠다 싶으면 하는 편이다. 그래서 기존에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던 '그래피커스'의 제안으로 ‘마이씨티’와의 작업도 흔쾌히 수락했다. 테마 자체가 힙합이니까 기꺼이 함께 했고, 작업도 쉽게 나왔다.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기준도 없다. 그냥… 친하면 한다!(웃음)
무 그렇다면 미나 권은 작업을 할 때 예술성이 먼저인가 상업성이 먼저인가?
권 나 혼자 내 작업을 할 때는 무조건 예술성이 먼저다. 내 작업을 보는 사람들이 그저 ‘기분 좋다, 재미 있다’고 느끼면 그만이다. 하지만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좀 다르다. 나만의 작업이 아니라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회사’와 함께 하는 거잖아. 그래서 100퍼센트 내 마음대로 작업할 수는 없고, 브랜드의 요구나 의견도 수렴하면서 작업 한다. 사람들이 ‘트렌디하다. 그래서 갖고 싶다’고 느낄 수 있도록.
무 그럼에도 당신은 예술가니까,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 중에도 작품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녹여내야 하잖아. 어떤 방법들로 컬래버레이션 아트워크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나?
권 큰 그림은 브랜드와 상의하되, 디테일에 나의 시그니처나 생각들을 넣는다. 예를 들어서 평소에 쓰고 싶었던 단어들을 써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한다거나, 핫핑크와 민트를 함께 쓰는 ‘팬시한 컬러링’으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사담이지만,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 아트 워크는 컬러풀하고 색감이 좋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 좋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색 잘 썼다’고 생각하게 하는 게 나의 목표이기도 하거든.
무 SNS에도 없는, 개인 소장한 아트 워크 중에 무신사 회원에게만 자랑 하고 싶은 것이 있나?
권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직접 색칠한 반스 올드스쿨 스니커즈. 내가 가진 작은 소품 하나라도 똑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직접 리폼했다. 나에게 아트 워크는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친구들에게도 직접 커스텀한 것들을 선물해준다. 지드래곤 에게도 오래전에 해줬지. 다들 좋아해 줘서 기쁘다.
무 이렇게 재주 많은 미나 권을 가장 먼저 알아본 캐스팅 디렉터가 누군가?
권 2013년쯤, 나의 그림을 본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브랜드 ‘BBC’의 블로그에 내 그림을 소개하며 ‘한국에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다. 매우 신선한 아트 워크다.’라는 코멘트를 했다. 퍼렐은 내 인생의 롤모델이자 스승 같은 존재다. 그에게서 얻은 영감으로 만든 아트 워크들을 다시 그가 보고 만족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 길로 바로 미국으로 갔고 행복하게 작업했다.
무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먼저 당신을 알아봤다니. 외국인에게도 통하는 작업을 하나 보다.
권 나의 예전 아트 워크 중에 힙합 룩을 입고 있는 심슨, 드래곤볼 등의 캐릭터 그림들이 있었다. 그때 그 그림을 보고 흑인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고, 신선하다고 얘기해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요즘은 그런 무드의 아트 워크를 하지 않는다. 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때 시작했는데, 지금은 다들 너무 많이 하거든. 내가 그랬잖아.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고. 어쨌든 지금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의 아트 디렉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위에서 언급한 예전 내 아트 워크들을 누가 봐도 똑같다 싶을 정도로 그리더라. 그런데 나는 손 쓸 수 없다. 그 사람이 먼저 그 컨텐츠를 다량으로 상업화했거든. 이렇게 지적 재산권이 모호한 경우에는 누가 먼저, 더 많이 상업화하느냐가 결국 소유권을 결정한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무 생각이 많은 미나 권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당신의 행보가 궁금하다.
권 내년에는 개인전을 할 계획이다. 사정이 있어서 2년 정도 개인 작업을 거의 못했다. 그리고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계속 진행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작업실을 넓힐 예정이다. 이번에는 오픈형 스튜디오를 차려서 친구들도 더 많이 놀러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무 진짜 마지막 질문인데, 조금 더 대중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나?
권 물론 그렇게 되고 싶다. 하지만 내 작품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 게 먼저다. “미나 권 작품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져”라는 얘기를 듣는 것. 그리고 부끄러운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 우선이다.